과학의 발달이 사람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TV화면이 3D로 바뀌면서 연예인들의 얼굴이 매끄럽게 변화해가고 있다.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비춰지기때문이다. 거기에 완벽한 성형은 그들을 개성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어디 출신이냐?' '형제 자매같다.' 같은 성형외과에서 얼굴을 고치면 비슷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나는 당당하게 원빈과 맞섰다. 나의 무모함을 사람들은 꾸짖는다. 원빈의 외모관리와 광고기획사의 포토샵이 일조를 했다. 
 
 이러는 내가 나는 대견하다. 무모하더라도 덤비는 것이다. 강자와 싸워서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쪽팔리지는 않는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난 앞으로도 세상의 강자들하고만 싸울 것이다. 그들이 나와 대적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 계속 까불면 갸들도 승질나서 덤빈다. 이것이 나의 전법이다.


 아름다움의 어원은 '보기에 줄겁다.'이다. 회의문자에서 아름다울 '미'자는 염소'양'과 큰'대'자로 이루어져 있다. 배고픈던 시절 들판에 살찐 양을 보니 즐거웠다는 것에서 연유된 말이다. 생각해보라. 몇 일 굶주리고 살찐 양을 봤을때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첫사랑을 우연히 만난것 보다도 더 기뻤을 것이다. 보니 즐겁다. 비슷 비슷한 얼굴을 보면서 즐거울 리 만무하다. 때로는 누가 누군지 몰라서 짜증나기 일쑤다. 아름다움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나는 강의에서 자주 말한다. "순간성형은 다름아닌 표정이다."라고. 찡그린 얼굴, 어두운 얼굴, 침통한 얼굴, 짜증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가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예쁘게 보이는지 모른다. 순간적으로 사람이 달리보이고 보는 사람의 마음도 흡족하게 만든다. 물론 웃고 있는 자신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은 즐거운 것을 원한다. 25년전 사진가의 길을 택할 때 기준은 내가 일을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가 였다. 나는 사진가의 길을 과감하게 택했다. 사진 찍는 그 순간이 좋았기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고뇌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그 고뇌스러움이 즐거움을 극대화시킨 것 또한 사실이다. 인생은 희로애락 아닌가? 철학가들도 그 인간의 내면에 대해 심도있게 논한 것 또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항상 즐거우면 그 즐거움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긍정적인 내면은 사람의 외면 까지도 바꾸고 있는 것을 보고 흥미와 신비로움까지 느끼게 되었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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