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쏟아지는 책들을 보면 짜집기가 대부분이다. 책값이 아깝고 사기당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책은 다르다. 이근미라는 인고를 겪어낸 삶의 현장을 겸손하게 풀어낸 인생경영서이다. "프리랜서처럼 일하라."라는 제목 위에 조그만 글자로 직장에서 성공하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그러나 이런 진리와 같은 내용들이 어찌 직장에서만 필요하랴. 나처럼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로 개업을 한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살이되고 피가 되는 내용들이다. 

다섯개로 나뉜 목차만으로도 이 책의 진가를 익히 알 수 있다. 작은 내용까지도 그냥 격에 맞추기위한 가식적인 제목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목차의 제목만 읽고 실천해도 완전 성공으로 갈 수 있는 내용들로 꽉 차 있다. 사실 사람 노릇하는 것보다 힘든 것도 없다. 생면부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긍정의 결과를 낸다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인간이 고통을 받는 것은 지난 과거에 집착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쇼팬하우어는 말했다. 이근미에게 과거는 지혜의 산실이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삶이다. 실력이 있어도 사람관계가 약하면 안되고, 자신의 현재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는 자신의 가치를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사진가인 나에게 코닥이 망가지고, 니콘의 FM2신화가 그들에게 안일함을 안겨주어 끝내는 캐논의 아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오류를 겪는 것을 보면서 기업이든 개인이든 누구나 똑같은 시나리오인듯하다.

이근미작가의 삶은 안스러울 정도로 빡씨게 살아온 과정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남이 볼때는 안스럽지만 그 스스로는 그 과정이 행복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인터뷰를 하며 만난 사람들의 지혜를 훔쳤고, 그가 만난 클라이언트에게서 혹독함으로 단련 받았으며, 자신의 달란트를 감사할 줄 아는 지혜를 스스로에게서 받은 탁월한 사람이라고 글 속에 녹아 있다. 아마도 지금 이근미작가는 뭔가를 시도하는 에디슨의 실패를 갈구하고 있으리라. 삶의 방법을 터득한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이 책은 나의 책장 잘 보이는 곳에 인생 바이블처럼 고이 간직하는 책으로 간직하리라.

이 책에서 와 닿는 내용이 있어, 내가 얼마나 공감했는지 나의 사진에 글을 붙여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이근미 작가는 성공하는 사람의 기본으로 세가지를 들고 있다. 실력, 성실성, 인간성 뭐 이런식으로. 사실 하나라도 빠지면 성공은 물 건너간 거다. 


첫째로 실력을 들겠다. 사진 찍는 내가 나를 두고 실력 운운하는 것은 좀 거시기 하지만 사람도 아니고 개를 이렇게 찍었다는 것은 일단 인정해줘야 한다. 사람들이 욕할때,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개새끼!'다. 얼마나 말을 안들으면 그랬을까. 나는 이런 애들을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면 실력이 있는 거 아닌가? 국제전에 입선했던 개사진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걸 인정해서 나를 개작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럼 일단 첫째 통과.

그리고 성실성이다. 물론 여자들의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이게 통과될까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하루 이틀 찍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10년 넘게 찍어온 지속성이 있고, 사실 아는 사람 다 알지만 여자들의 승질머리가 보통들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만족시켰다. 얼마나 인고의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것도 공감해야 하는 문제 중의 하나다. 물론 운이 좋게도 내가 찍은 사람들은 인간성이 좋았다.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실력에 포함된다 이거지...

인간성, 그것은 관계의 미학이다.  얼마 전 나는 많은 모임을 접었다. 집중하기 위해서 였다. 집단지성 브랜드 네트워크, 40라운드에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사람들과 관계한다. 그렇다면 관계를 넘어 인간성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물론 성공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아니다. 그 과정을 즐기라고 많은 이들이 말했다. 나도 공감하는 말이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사실 따지고 보먄 성공이 어디 있을까? 그냥 현재를 즐기며 행복하면 되는거지. 아무튼 나는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자평한다. 이상 자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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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04.01 0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은 항상 인간에게 영감을 준다. 그것은 책은 쓴 사람이 숙고한 끝에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듯이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이 그렇다.

내가 강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가 있다. 강의가 사람을 바꾼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12년전 리더십 센터에서 김능원이라는 훌륭한 강사를 만나면서 나의 삶은 송두리채 바뀌고 말았다. 그 당시 'I brand'의 중요성을 공감하면서 부터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실행하기 시작했다.10년동안, 하루 3시간씩,  그러니깐 1만시간의 법칙이 통한 것이다. 아마도 하루 3시간이 아닌 24시간 통채로 였을 것이다. 사진가로서의 내 가치를 만들기위한 눈물겨운 삶이었다고나 할까...

좌절도 나에게는 트레이닝 기간으로 삼았다. 그런 시간의 단련 속에서 지금 나의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12년보다는 나은 지금의 상황말이다. 그간 전시와 강의와 학습을 통하여 나는 나를 단련시키며, 혹독한 삶의 현장에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강의장에서 목소리가 당당할 지도 모른다. 나의 강의를 듣고 힘을 얻어 단 한사람이라도 긍정적인 삶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 

아침 9시 강의라서 전날 도착했다. 담당자의 배려로 천안의 경찰교육원의 숙소에서 편안한 밤을 보냈다. 아침이 가벼웠다. 맑은 공기와 젊음이 꿈틀거리는 그곳에서 나는 경찰대학 졸업생들의 8주교육중 한 나절을 책임지기에 이르렀다. 젊음답게 자유로운  분위기와 똘망함이 눈이 비쳤다. 강의 중에 던진 질문들이 거침없이 답변으로 쏟아졌다. 사진으로 브레인 스토밍을 시도했고, 기대이상으로 소통이 되었다. 그런 것들이 강의의 재미이기도 하다.

오전 강의를 경찰 교육원에서 마치고, 안면도의 리솜으로 향했다. 숙소를 잡으니 운이 좋게도 넘실대는 바다의 기운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화려함 속의 고독'을 역설했다. 28평의 방안에서 혼자 놀기란 고독 그 이상의 갈등으로 밀려왔다. 시간은 흘러 서서히 바다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나는  그 다음날까지 소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식탁에 짐을 풀고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고독이나 재밋거리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바로 논리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참을 하고나니 이런 곳에서 책이라도 읽으며 사색이 잠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사람들의 역동성을 느끼며 작업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용한 곳에서의 공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두문 불출, 식사하는 것 빼고는 그냥 앉아서 열공했다. 이곳에서의 결실로 소논문이 완성되었으니 일거 양득.

안면도의 리솜에서 식약처(올해 식양청에서 승격)의 직원들 350명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힘'이라는 주제로 긍정적 생각에 대한 강의를 했다. 이날 썼던 pt이다. 방안에서 연구한 바다를 주제로 일장연설을 했다. 이것이 강의의 인트로였다. 저녁의 바다는 수줍은 듯 발그스레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 속삭였고, 아침의 점잖음은 어른처럼 다가와 가르침을 주었다. 대낯과 대낯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여주는 단조로운 권태는 또 다른 창작적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렇듯, 바다는 항상 변화하고 있었다. 어제 밀려왔던 바닷물이 오늘 다시 오지 않는다. 항상 바다는 다른 얼굴을 한다. 변화무쌍함을 읽었다. 난 강의에서 바다는 우리가 바라보는 유연함이 아닌 역동과 창작적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임을 전했다. 이것이 나의 강의 인트로의 의도였다.

이렇게 나는 2박 3일의 시간을 잔반도 없이 먹어치운 식단처럼 알찬 시간을 보내고 왔다. 이틀동안 500여명을 만났다. 그 사람들이 나의 강의를 통해서 즐거운 상상을 했기를 바란다. 그리고 긍정적 시각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동의가 일어났기를 바랄 뿐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던 중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리더십센터이 직원이었다. 그 이름으로 연상되는 김능원이란 강사분의 얼굴에서 나의 12년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세상과 그 속의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투철하게 살아가는 동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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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쉽게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광고의 카피나 장난스런 뻥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단서가 있을 뿐이지 어렵지는 않다. 그 단서는 지속성과 차별성이다. 이 두 단어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차별성에는 창의적 사고도 포함된다. 말장난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현실이다. 이 조건이 안된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들이 인정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취미생활로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유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주위사람들에게 인정을 강요하면 되기때문에 적당한 논리와 임팩만 가지고도 나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다. 

우리 가족들의 사진이다. 12년전부터 1년에 한번씩 지속적으로 찍었다. 내가 포토테라피스트라서 그런것은 아니다. 사진가로서 가족사진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서 인지시키고픈 갈망때문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덤으로 얻어진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다른 고객들의 가족사진과 더불어 전시회도 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들이 사진속에 담긴 사랑을 읽어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을 것이다. 스튜디오에 오는 고객들에게 그 사진은 가족사진의 소중함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 사진들이 직접 대면을 통해서 나를 대신해서 타인과 소통을 해준다.

어떤 사진가는 상암동의 월드컵 경기장의 공사과정을 엄청난 숫자의 사진으로 남겼다. 결국은 영국의 방송사에 거액으로 팔았다. 이런 것들은 지속성과 차별성의 결과라고 본다. 그 사진이 엄청난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것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차별성이고 몇 년을 자기집 옥상에서 찍어낸 것 또한 남들이 따를 수 없는 의지의 표상인 것이다. 

 

스마트 폰으로 눈이 소복히 쌓인 이른 아침에 헬스클럽에 가다가 찍은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봄이 오려는 아침에 햇살이 그 건물에 비춰지면서 찍은 것이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이것은 세상을 우리는 단순히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옷을 갈아입는 모습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찍어 놓은 아이디어가 담긴 창작품을 보고는 별거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생각을 미리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실행에 옮기지 못한 패자이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은 아무런 형상도 만날 수 없는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자만이 아침에 일어나는 새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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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03.20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이 쉽지 뭔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쉬운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될 수 있는 일이 이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리고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더욱 더 그러하다.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이 여기에 있다.

탁상공론, 이론과 실제의 차이, 뭐 이런 말들이 사람을 현장으로 내몰곤한다. 체험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몸속에 저장된다. 수백 수레의 서적을 탐독하였다한들 실전에서 생겨나는 경우의 수를 예견하진 못한다, 수영선수에게 이론을 가르치고 물에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 물속에 집어 넣어 스스로 물속에서 살아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게 나은 방법이 아닐까? 그게 바로 헤겔의 철학적 개념이다.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스튜디오에 취직하여 그들이 부딪히는 일은 하나 둘이 아니다. 인물사진을 예로 들면, 배운대로 찍었는데 고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물론 원칙대로 찍었지만 미적 감각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다른지라 당연히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학교에서 그것까지 다 배울 수 없는 것이 문제점이다.

이 사진은 전형적인 노출의 개념으로 보면 잘못된 사진이다. 노출 오버와 언더의 전형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감정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일지 예견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뒷모습이지만 몽환적이면서 뭔가 환희스런 느낌을 준다. 몸짓이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듯 노출 또한 강력한 언어임에 틀림없다. 이 사진은 포토테라피강의를 수강하는 김수영씨의 작품이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통해 그녀의 감정의 변화를 예견하곤 한다. 

미술, 사진,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들이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나 논리적 개념으로 풀어가면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악보를 연주하더라도 그 소리가 전부 똑같을 수 없다. 키워드를 던져주고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더라도 똑같은 그림은 평생을 그려도 얻지 못하는 원리와 같다. 사진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나는 노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노출을 측정하는 도구를 노출계라고 한다. 정확한 노출을 측정한다는 기계다. 그러나 빛이 비춰지는 어느 정도의 기준일 뿐이지 노출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 존시스템을 논하며 그것을 정확하게 찍어야  공감하던 과거,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몇십분 내지는 몇일을 기다리며 적당량의 노출을 기대하곤 했다. 그러나 디지털이 존시스템이나 노출에 대한 아우라를 무너뜨렸다. 

적정노출은 없다. 이유는 노출을 만드는 빛이 그 정도에 따라서 다른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밝은 사진은 기분이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어두운 느낌은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든다. 여기에서 밝은 노출은 노출계의 기준보다 노출이 오버된 것을 말하며 어두운 느낌은 그 정반대의 경우이다. 음식에는 누릉지처럼 바싹 태워야 제맛이고, 생선회처럼 날것으로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노출도 다양하게 자기에 입맛에 맞게 조절하여 찍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결론적으로 최상의 노출은 없다. 단지 의도한 노출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진이 소통하는 도구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야한 얘기하나 하자. 노출이라고 하면 여자의 비키니를 떠올릴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무조건 노출해야 섹시한가? 홀딱 벗어도 감이 안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긴치마에 옆이 살짝 트인 것이 더 야하지 않은가? 


(사진의 노출은 빵을 굽는 것과 같다.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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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항상 철학가들은 고민했다. 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권태의 시작이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 상황을 달라지곤한다. 이런 사진 찍기는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럴 땐 촬영하는 사람도 흥겹다. 이렇게 점잖은 사람들이 망가지면 더욱 재미난다. 사진찍기가 즐겁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니 결혼한 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부부의 결혼사진을 찍었던 장본인이 바로 나다. 사진작가 백승휴란 이야기다. 그 당시 야외촬영이 시작되던 시절, 아립다운 신부와 멋진 신랑을 데리고 간 곳은 광릉 수목원으로 야외촬영을 떠났다. 수줍은 미소의 신부, 당당한 목소리의 신랑. 나는 아이들의 돌사진을 비롯하여 모든 가족의 대소사의 사진의 전속사진사였다. 얼마나 정겨운, 아니 대단한 인연인가?

사진의 캐니지 컨셉을 하고 있는 아빠는 목사님이시다. 근엄한 자태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만큼은 가족모두가 웃을 일을 만들었다. 딸과 엄마는 뽀글이 파마머리, 아들과 아빠는 긴머리의 자태를 하고 서로의 모습에 웃느라 정신없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만큼 웃으며 살고 있는가? 동양의 정서를 말해주듯, 겸손한 표정을 하고 지낸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걸 알면서 우리는 무표정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을 액자에 담았다. 거실에 걸어놓고 서로의 모습을 보며 웃고 싶은가 보다. 사진속에 있는 얼굴들을 보는 순간 서로의 모습과 동일시하고자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닮아가고, 그런 일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게 세상사다. 이제 이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에 의해 웃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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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illusion), 헛것이 보일 때까지 찍어라. 곤지대왕

사람이 기력이 쇠하면 헛것이 보인다. 때로는 아이들의 장난처럼 눈동자의 밑 부분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두개의 상이 보인다. 이것을 환영(illusion)이라고 한다. 헛것을 만나러 여행을 떠났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나오는 '피뢰침'처럼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천연덕스러운 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사람의 눈으로 환영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한번 크게 놀라면 그와 비슷한 모양만 보더라도 그렇게 보인다. 이처럼 한두 번의 환영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과는 다르게 카메라는 그 광학적인 철저함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졸업여행을 환영을 만나러 떠났다. 때는 고대의 오사카. 만날 인물은 백제 게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이었다. 놀랍게도 그를 오사카의 아스카베신사에서 주민들이 모시고 있었다. 짧은 역사지식을 가지고 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열정적인 학생들과의 동행, 그리고 오사카 상업대학의 양형은 박사님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흔들림, 빛의 산란, 색깔의 변화에 의하여 환영을 만들 수 있다. 환영을 찍는다는 것은 경험하고 준비한 만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모사를 통해서. 카메라의 광학이 감성의 자유로움을 만났을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마치 레이어의 겸침 속에서 반투명이 갓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듯. 나는 곤지왕이라는 존재를 빛과 새로 형상화하고자했다. 오사카의 지명에서 보여지 듯 새 이름과 빛이 가진 절대자로서의 이미지로 그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사진이 가진 환영(illusion)을 그 방법과 의미에 대한 덧붙이고자 한다.시간과 공간이 초월되는 시점을 찍었다. 고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갈망이 빛을 중심으로 물체의 변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색감으로 통하여 이상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어느 공원에서 조용히 모이를 먹던 비둘기를 쫓아다니며 만들었던 영상이다. 흔들림을 통한 불확실이 만들어내는 형상이다. 곤지왕을 절대자로 표현하며, 빛이 가진 힘을 통하여 비둘기들의 이동을 빨려 들어가는 형상으로 표현했다.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되는 상황을 재현한 것이며, 곤지왕이 의미하는 빛과 새의 이미지를여 내가 환영으로서의 곤지왕을 만나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곤지대왕을 만나기 위해 신사로 향했다. 신사 앞의 포도밭 비닐하우스에서 강렬한 빛이 왕궁처럼 신성한 느낌을 표현했다. 햇빛 때문이 아니라 그 강렬한 기운이 눈을 뜰 수 없었다. 고개를 숙였다. 왕을 대하는 신하의 마음으로. 가까스로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대 낯인데도 하늘이 어두워지며 신사 안쪽으로 붉은 색깔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행들은 신성함 이전에 두려움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지난 뒤 우리는 참배를 하고 뒷산의 묘지로 향했다. 묘지 안쪽에선 푸른 기운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푸른색은 백제를 상징한다고 했다. 하늘도 같은 색깔을 하고 있었다. 그 영험함, 그 기운이 나에게 색깔로, 빛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위엄과 신비스러움으로 비춰졌다. 강력한 빛, 붉은색과 분위기는 신사의 위엄, 푸른 빛깔이 보여주는 절대자의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사람들은 길게 늘어진 동아줄을 잡아서 종을 쳤다. 자신이 왔음을 신에게 알리고, 자신의 고함을 들어 달라는 의식이었다. 구름이 해의 강렬한 빛으로 변하며 전달하고자하는 의도가 드러났다. 마당 한 가운데 큰 나무에 묶인 줄에 매달린 종이가 시선을 끌었다. 갑자기 종이에 뭔가가 적히기 시작했다. 푸른빛을 띠던 종이에 따스한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곤지대왕? 고대의 문자는 텍스트가 아니라 느낌이라는 비언어가 아니었을까? 색이 언어로 둔갑하며 따스한 미소가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빙그레 웃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사천왕사의 대문 앞에 만들어진 중들의 모형들 사이로 비춰지는 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샤워를 하듯 빛이 골고루 비춰지고 있었다. 사천왕사는 백성을 위한 절로 지어졌다했다. 건물은 백성이요, 나무는 왕이다. 최초에 지어질 무렵의 나무그림은 똑바로 하늘 향해 그 당당함이 보였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듯 북쪽을 향한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백성에 대한 배려였다. 빛과 몸짓으로 보여 지는 곤지대왕의 화영이 나에게 친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봤다.곤지왕, 그는 왕 이전에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분노, 배려, 사랑, 시기와 질투까지도 가졌던 인지상정의 모습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알 수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채 인사도 못한 채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은 말문을 닫아 버리게 했다. 블랙홀처럼 내 몸이 빛이 보이는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누구도 믿지 못할 여행에서 혼자 고이 간직할 경험을 글로라도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를 표할 따름이다.환영(illusion)이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뻥 같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을 남들이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이 진정 있고 우리가 그의 말을 못 듣는다고 생각한다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진 강의를 통하여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삶의 초석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일상에서 환영을 만난다. 거울 속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환영을 만난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안 든, 낯선 것들이 나타나곤 한다. 얼굴이 예뻐 보이도록 화장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환영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다. 환영은 일상에서 우리의 삶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자연의 제안이기도 하다.얼굴에서 긍정의 환영(illusion)을 자주 보는 사람은 얼굴이 예뻐지고 일상이 즐겁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는 사진 찍기에서 우선으로 삼아야할 덕목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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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01.12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가 안간다고 한다. 거기에는 두가지의 이유가 있다. 이런 사진찍기를 안해봤기에 이런 것들에 고민을 해보지 않아서 이고, 또 하나는 내가 잘 못한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나 혼자만의 리그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이 이런 생각들을 공유하고 같던 사람들의 생각은 나와 같았다. 일상적인 여행사 패키지와는 다른... 사뭇 다른.

 

신비의 바닷길, 무창포 솔잎 향기 팬션을 찾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여행, 아니 휴가란 게 그렇다. 잘 먹고 잘 놀다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끼리 떠나는 휴가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있어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2012년 여름휴가는 짧게 2박3일로 마무리를 지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18명의 대군이 모여서 왁자지껄하다가 왔다. 더욱 우리를 즐거움을 한 것은 런던 올림픽과 메달이 한 몫을 했다.

이 글을 통해 휴가 속에서 만났던 느낌과 사연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먼저 내가 머물렀던 팬션, 솔잎 팬션에 대한 이야기를 스토리형식으로 구성해 보았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뭔가 편안함을 주는 느낌을 접할 수 있었다. 아이의 발자욱을 통해 친절함이 표현되어 있었으며, 돌계단 사이에 삐집고 올라온 풀잎들은 자연 친화적인 주인의 기운을 엿볼 수 있었다. 아장 아장 걸어올라오는 아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알고보니 이집 주인은 40중반이었으며, 늦둥이 딸아이가 있었다. 물감놀이하다가 발자욱이 묻어난 것이라했다. 어느 예술가의 작품보다도 예술적?

이름은 솔잎향기였다. 팬션 뒤에 소나무가 있음을 의미하는 이름이었다. 솔잎의 그윽함을 가까이에서 맡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담담하면서도 정신을 맑게 하는 내음은 복잡한 도심의 고뇌를 금방이라도 씻어내 버린다. 바다가로 느엿거리며 넘어가는 태양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관을 밝혀주는 전등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철판에 구운 삼겹살이 쫀득거리며 그 육즙이 먹는 이를 유혹했다. 시골집에서 가지고 온 김장김치의 아득함과 버섯속에 담백함이 어울어져 막걸리가 춤을 추며 목구멍을 출렁였다. 사진 위쪽에 보이는 매력적인 손은 내 아내의 것이다. 며느리는 열심히 또 열심히 해야 점수를 따는 것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나도 처가집에 가면 설겆이도 한다. 말리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논길 너머 빛을 밝히는 솔잎팬션의  느낌은 다분히 전원적이다. 뒤쪽의 잘빠진 소나무가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억지하나 부리자. 모세의 기적을 형상화한 팬션의 구성이 눈길을 끈다. 두채를 다정하게 붙여놓으며 가운데는 갈라진 바닷물처럼 보인다. 최소한 내눈에는 보인다. 안보이면 상태 안 좋은 거다. 믿거나 말거나. 철마다 이곳에는 개구리, 귀뚜라미,맹꽁이 할것 없이 자연을 노래하는 친구들의 합창을 하겠지.

아니 아티스트의 손길. 이 집 큰딸은 고1 화가다. 중학교때부터 도대회에 나가면 최우수상을 힙쓸었다 한다. 수도가의 허접함을 예술가의 손길로 동심을 불어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다 남은 물감으로 돌맹이에 옷을 입힌 센스! 돌계단의 아이의 발자욱부터 수돋가까지 정서적으로 필이.  어린 시절 물가에서 물싸움하던 때가 그리워진다.

옆집의 텃밭이다. 서울생활 접고 내려온 부부가 일구고 있는 텃밭이다. 팔지는 않는다. 가족은 부부 딸랑 둘인지라 상추 뜯어먹기 버겁다. 한여름 상추가 커가는 것을 보면 무섭다. 이곳은 '허가난 서리'를 할 수 있는 곳이라 했다. 그냥 임자 없이 먼저 뜯어다 먹으면 끝이란 이야기다. 술판 벌어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면 해결된다. 그냥 씨뿌리고 따먹는 자연과의 계약관계,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아내가 분주하다. 축제의 시작이다. 대가족이 한꺼번에 모여서 저녁을 먹으려고 폼을 잡고 있다. 아이들이 먹어 재끼는 고기양이 만만찮다. 애들이 상전인지라 먹고 남아야 어른이 먹는다. 세상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먹는 것만으로도 뿌듯하신지 빙그레 바라보고만 계신다.

내부 사진을 찍어봤다. 나는 이곳에 빛의 풍성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밖에서 밀려오는 빛은 화난 파도를, 방에서 쏟아지는 빛은 한줄기 소나기로. 폭염주의보는 우리를 하루 종일 에어콘앞에 묶어놓았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은 방안에 집어 넣고 셔터를 눌러댔다.

 

방으로 들어가는 문과 이층에서 내려오는 빛은 풍성함으로. 이곳에 오는 자는 복을 받을 지니라. 이런 말이 팻말로 옮겨지지 않더라도, 서로가 말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느낄수 있는 분위기. 가족이 삶의 기본단위이며 보금자리가 집인고로 집안에 밝음은 사람의 마음까지 긍정성을 만들어준다. 새로 지은 집이라 향긋한 내음이 자는 동안에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마 솔잎향기?

휴가의 첫째는 먹거리에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곳, 예술가의 그것처럼 아낙의 손길이 스치고 지나가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챙겨줄 음식들이 향기를 내며 완성된다. 새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줄때 그 벌려진 입에 들어가는 것처럼 재잘거리며 먹느라 정신없다. 

집안에서 아이들이 놀곳은 이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쿠션이 들어간 장판위에 뒹굴고 뛰어다녀도 아랫층 어른들은 정겨운 음악소리로 들려온다. 어른이 그린 아이와 아이가 그린 아이는 달랐다. 동심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빠져있는 그림차이였다. 기대고 서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면 잘 어울어진 한 편의 동화가 완성될 것으로 느껴졌다.

심비의 바닷가, 모세의 기적이라는 무창포해수욕장이다. 가족들끼리 조용히 즐기다 가기에 안성맞춤인 이곳에서 아이들의 고함소리는 갈매기와 노니는 듯하다. 사촌들끼리 만드는 추억은 기억의 책장 속에 고이고이 간직될 것으로 믿는다.

3자의 입장에서 이번 휴가와 팬션 그리고 삶에 대한 스토리를 전개하자니 어색하기 그지없다. 비밀을 공개하자면 이 팬션은 여동생 내외가 주인이다. 그래서 이곳이 더욱 자유로웠는지 모르겠다. 바닷가에 소란스러움을 약간 비킨 논두렁 지나 뒷산의 경취를 즐기며 앉아 있는 팬션의 위치는 내가 좋아하는 그 느낌 그대로여서 더욱 이번 휴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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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피카소의 열정, 스티브 잡스의 갈구. 이것이 삶이다. 지속성이 그들에게 특별함을 부여했고, 삶과의 대화 속에서 찾아낸 놀이의 방식이었다. 화가에게 그림이 그렇듯, 사진가에게 렌즈 속 세상은 그의 경험과 욕구의 결실들이다. 정돈이란 혼돈 다음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박종숙은 외면에 비춰진 내적 아름다움을 찾아냈고, 박응태는 태초의 신비를 담은 임신부의 몸짓을 그렸으며, 남창희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목마름을 표현했다. 그들의 행위는 삶이자 놀이이다.
아기의 옹알거림, 아줌마들의 수다, 사진가의 셔터소리 또한 놀이이다. 사람들이 놀고 있다. 카메라 셔터소리의 음율에 맞춰 오감이 춤을 춘다. 우뇌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라 말을 하고 있다.

사진은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놀이의 도구일 뿐.

박응태
존재와 시간의 틀 속에서 미와 진리를 탐색하는 예술이 사진이다.
작가 박응태는 태초의 신비, 잉태의 환희, 여체의 미학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생명의 잉태라는 주제는 산모와 태아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하나로써 함께 존재하는 시간의 틀을 통해
유일한 공존의 시간이 미와 진리로써 표현되고 있기에 그의 사진에는 어머니의 자애와 아이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선들이 바람처럼 흐른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와 시간의 틀 속에서 미와 진리를 탐색하는 놀이를 즐기고 있다.
 
남창희
작가 남창희는 자연과 인간이 찰나 속에서 남기고 가는 흔적을 사진으로 재해석 하고 있다.
그의 사진에서의 흔적들은 순수한 사물로써가 아닌 때로는 터치감의 강약을 통해서,
때로는 사물의 가장 깊숙한 내면의 표현을 통해서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재해석을 통해 그의 사진에 담겨진 흔적들은 우리에게
"세상은 보이는 대로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 하다.
흔적을 통한 재해석의 놀이에 흠뻑 빠져있는 그의 작품에는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박종숙
작가 박종숙은 인상사진 전문가이다.
그의 사진은 외면의 생김을 통해 내면을 포착하고자 하는 인식적인상을 추구하는 인상학과 닮아 있다.
아니, 그의 사진은 사진의 인상학이란 표현이 옳을 듯 하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외모가 아닌 내면의 것을 표현하고자하는 의지때문이다. 
중년여성의 고뇌, 노년의 혼돈. 인간이 밟아야 하는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이며 사람들을 감싸고 있다.
누구나 겪는, 겪어야 하는 굴곡들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박작가의 인간에 대한 배려이다.

누구나 행위와 행위 속에서 적잖은 자극을 받으며 발전한다. 자극은 강할 수록 그 영향력이 커진다. 아픔을 겪고 난 후에 성숙을 맛보는 것처럼. 성공을 향한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을 맛보듯이, 시도는 또 다른 계획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는 인물사진컨텐츠 전문가과정의 멤버들이 기획과 디자인을 거쳐, 3인의 동문전이 되었다.

14기의 선배들의 전시가 15기 후배들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작품의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수준은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정을 통해서 자극되고 상생을 위한 긍정의 시너지가 발동된다. 사진은 작가의 내면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타인의 발전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주변인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할 다름이다.

열정을 가진 나이 든 제자, 박응태와 박종숙의 삶을 보았다. 그리고 겸손한 남창희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만나고자 하는 모습도 보았다. 도전하는 15기 정동운의 지혜와 고희경의 세련미가 정반합을 이뤄냈다. 5인의 도전은 다른 사진가들에게 자극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익숙한 일상에 벗어나 낯설은 세상,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나는 것은 사진가의 특권이다. 

보이는 세상에서 미소짓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에서 웃음짓는 우리는 행복한 거다. 두배의 세상을 만난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12년 8월 1일부터 30일까지. 강동경희대학병원 마음 갤러리에서 전시된다.
기획.정동운   디자인.고희경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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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그네다. 줄을 타고 즐거워하는 것. 꿈을 꾸고, 그 꿈이 이뤄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처럼 커진다는 말을 내꿈소에 함께 출연했던 did 마스터 송대표가 했다. 공감하는 말이고 익히 내는 경험했다. 꿈은 반듯이 이뤄진다는 것은 인생선배들을 통해서 들었으며 시크릿이란 책에서 그 의미를 공감할 수 있었다.

 

무대에 올랐다. 많은 사람앞에 선다는 것과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감을 갖게 된다. 마치 노래하는 듯한 포즈다. 음치이니 노래는 안 어울리고 사람들앞에서 강력한 설득력으로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거늘, 강의후 항상 아쉽다. 밥을 먹고 난 다음의 허전함? 아무튼.

세바시, 내꿈소 등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힘을 가지며, 그 꿈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타인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은 책임감이 더해지면서 더욱 강력하게 꿈에 근접하게 한다.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꿈의 유무가 눈빛에 나타나있다. 꿈은 없는 자는 눈빛이 흐리다. 그럼 나의 눈빛의 얼마만큼의 번뜩임이 있는가? 

내 꿈을 소리쳐라. 내꿈소를 진행하던 오종철대표는 긍정의 소유자이며 보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저절로 만들어주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8개월된 배뿔뚜기 아내가 뒤에서 조용히 후원하는 그는 언제나 긍정의 당당함을 가지고 있다. 그날도 그랬다. yes송을 시작으로 4인의 강연회를 멋지게 마쳤다. 첫방송에 객석을 가득메운 아우라는 서로에게 긍정의 힘을 보여주었다.

강의를 하다보면 객석의 분위기에 따라서 연사의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양질의 관객은 무대를 힘차게 만들며 강사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 날이 그랬다. 나는 도전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도전을 결과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에서 매력적인 것들을 얻게 된다는 것. 도전해 보시라. 

나는 강의가 끝나고 응원차 찾아왔던 제자 박병찬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꿈을 들어주며 그의 꿈을 응원했다. 릴레이처럼 서로에게 그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은 사람이 있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꿈은 생각에서 나오지만 그 생각은 자극과 도전에서 생겨난다. 성공은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력적인 것들을 만난다. 성공의 결과치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더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강의가 끝나고 출연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즉문즉답을 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받아든 티셔츠에 자신을 꿈을 적어놓고 소리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미래가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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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병찬 2012.08.03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에는 담담하다가 점점 그분위기에 빨려들어가는 짜릿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좋은 강연 감사드리고 앞으로 많은 노력하겠습니다.

영정사진이라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것은 싫다. 장수사진이라고 해야 맞다. 포토테라피스트라서가 아니라, 사진은 항상 보는 곳에 놓아두고 보면서 웃을 거리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으레 이런 말을 한다. "웃을 일이 있어야지" 왜 안 웃느냐고 물어보면 노인들이 정답처럼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는 과제가 부여된다. 웃을 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안 만들었으니 혼나도 싸다. 이 사진을 보라. 얼마나 정겨운 표정들인가? 사랑하는 이들의 포응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다.

 

몇 년 만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사를 탓하지 말라. 그것은 누가 찍어도 이정도는 찍는다. 그러나 좌측의 사진을 보고 즐거울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점잖은 것도 아니다. 뭔가 우울한 표정을 하고 누구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고 보는가?  만약, 영정사진으로 문상객들에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들도 진짜 슬플 것이다. 문상을 오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생은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인데 그래도 마무리는 즐겁자는 것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인연이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아마도 이분들과의 만남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된 만남이라고 본다.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시청한 부인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뤄진 결과물들이다. 원래 김일성같다는 남편이 촬영후, 처음으로 얼굴에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고, 즐겁게 사진을 찍은 적도 처음이라며 점심시간에 막걸리를 대접해주었다. 지금 이글은 한잔 술에 취해서 기분이 알딸딸한 상태에서 쓴 취중 블로깅임을 밝힌다. 칠십이 넘은 나이게 부부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은 노년을 즐겁게 하는 바른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퇴촌이 댁이라 했다. 그곳에 오면 산삼주을 사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고기를 사가지고 가서 그들의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자 한다. 그분의 어록이다. "인생 뭐 있나? 관계지. 막거리 마시며 즐겁게 사는거지." 그런데 그게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년의 즐거움이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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