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끼! 누구에게나 끼는 존재한다. 감추고 있을 뿐이다. 남자와는 다르다. 여자들은 멍석을 깔면 끼가 발동한다. 사실이다. 나는 체험하지 않은 건 말하지 않는다. 중년여성은 특히 그렇다. 화장한 여자에게 끼는 무엇일까? 날개를 다는 것이다. 화장하고 무대에 서면 신들린 듯 누구도 못말린다. 파티장을 달군 그녀들의 모습을 공개한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더라. 미녀들을 찍는 나, 행복한 사진가!


여자들 앞에서 누가 더 예쁘냐고 물으면 안된다. 다 자기를 최고로 안다. 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건 너무 쉽다. "너가 제일 예쁘다." 한 사람을 바로 왕따가 된다. 예쁘다고 말할 땐 단수를 쓰면 안된다. 복수를 쓰더라도 전체로 해야 한다. 중년이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여성들의 파티다. 개인 사진을 찍고 마지막에는 준비해온 가면을 쓴다. 가면 무도회, 와인 한잔을 마시고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웃음 소리엔 진정성이 느껴진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사진은 모두가 매력적임을 만방에 고하는 일이다.

이색 파티를 소개하지. 한참을 놀다가 작품사진 하나는 건지는.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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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이런 <질의와 응답>으로 세월 다 보낸다. 철학자나 우리나 멍때리기는 마찬가지다. 답은 놀때 잘 노는 거다. 남들 노는데 <이런 짓을 왜 하지?>라고 고민하는 건 <깨는 짓>이다. 송년회를 빙자해 한바탕 논다. 가면파티? 아니다. 의상 컨셉을 정하고 메이크업하고 노는 거다. 놀기만하면 거시기하니 사진을 찍는다. 서로 찍어주는 거다. 스스로에겐 자위를, 상대에겐 칭찬을. 모두는 up된다. 이렇게 파티는 무르익어간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나 고개를 쭈욱 뺀사람들. <찍을 거리>, <볼 거리>를 찾는 중이다. 변신의 디퍼런트. 특히 이런 파티에선 그렇다. 재미난 사실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예쁠 거란 거대한 기대>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이 아닌 변신의 상대를 찍느라 모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런 재미난 놀이도 없다.

화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거울에 나온 모습은 만족이다. 남기려는 것이다. 간직하며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내가 그날 제일 예뻤다는 자뻑의 증거물' 말이다. 화장할 땐 여자들이 눈을 감는다. 지금보다 더 괜찮을 기대와 상상 때문이다. 잠시후를 그리는 것이다. 그 가상이 화장 후 자신을 더 괜찮아 보이게 해준다. 말은 <자기가 나보다 더 예쁘다.>라는 영혼없는 멘트를 날리지만 자신이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남을 칭찬하지 않는다.

Highlight. 서로 매만져준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 과정 전에 한가지가 빠져있다. 개인 프로필 사진을 찍는 거다. 가면을 쓴 그들을 찍다가 깜짝 놀란다. 이유는 가면을 쓰니 화장한 얼굴보다 두꺼운 팔뚝이나 통통한(뚱뚱한 이란 말을 쓰면 싫어함) 종아리와 허벅지로 시선이 옮겨진다는 사실때문이다. 바로 가면을 벗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놀라운 일이다. 내 카메라에 들어온 그들은 예뻤다. 정말이다. 예쁜 이유는 그들의 자신감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찍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보이고, 보이는대로 찍힌다. 사진의 힘이다. 괜찮은 사진은 그들을 괜찮은 여자로 만든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여자들은 백마탄 왕자를 기다린다. <신데렐라 정도의 말도 안되는 꿈>도 꾼다. 그들에겐 위안이며 그나마 지금까지 버텨온 힘이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 착각이 지금의 그녀를 만든 힘이다. 착각은 괜찮은 일상의 필수조건이다. 본 모임에서 깨달음이 하나 있다. 화장을 하거든 가면을 벗어라. 화장하면 다 이쁘다. 처진 눈의 중년에게는 특히 그렇다. 눈썹을 붙이면 처진 눈이 올라가 10년은 젊어 보인다. 모든 것이 용서되는 찰나이다. 기분 업, 표정 업! 여기에 고상하게 와인 한잔이면 다른 세상이 된다. 백마탄 왕자와 블루스를 땡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끝은 이렇다. 참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다. 와인 잔을 들고 건배하던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고상하던 파티가 끝나자 세련된 식탁으론 배를 채울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마지막 사진이 인간의 원형을 보여준다. 웃고 떠들고, 사진 찍고 놀면 당연히 배고프다.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라면을 끓인다. <싸모님은 어딜가고 무수리>들이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괜찮은 삶이란 격식보다 소소함이 존재하는 이런 일상이 아닐까? 인생 뭐 있나.

그날 파티에 있었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나?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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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렇다. 이기적이다. 자기만을 위한다기보다는 자기를 위한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의 삶과 행위 자체들을 놓고 방어적 발언을 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자가 자신을 믿고 자기을 고집하고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주변사람들은 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말로써 작가들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시각 자체가 우리의 삶을 건조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제언하고 싶다. 비단 나의 일이 아니라 모든 창조는 자위적이며 그것이 허락했을 경우에 완성되어진다. 부정적인 시각은 작가를 반항적 취향으로 선회하고 만다.  

박병해작가다. 카메라 앞에선 사람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춰지고만다. 박병해 작가는 말이 없으나 장난스러운 구석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는 재미난 사람이다. 그의 상상력의 폭은 바로 실행력으로 변화되어 다양한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이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있다. 무엇을 상상했길래 이렇게 웃음을 못참고 '낄낄'거리는지는 시어머니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보더라도 이 사진 속에서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일상을 끄집어 낼 수 있다. 

그는 몇 번의 개인전을 열었던 경력자다. 풍경과 인물의 범주를 넘나들면서 그는 쾌속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 조용하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메라를 드는 순간 그는 질풍노도의 포즈로 셔터를 누른다.  사진으로 시작했고, 요즘은 동영상이 첨가되면서 자기표현이 자유로워졌다. 본 프로필은 물론 내가 촬영한 사진이다. 원래 이런 이미지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왕건이를 건진 것처럼 만족스런 이미지를 얻었다. 볼에 굵게 주름진 것은 그의 삶의 굴곡을 보여준다. 스스로가 그것을 부인하려해도 얼굴을 속이지는 못한다. 작가의 첫번째 요건 중에는 고뇌하는 삶이 있다. 그것이 없으며 그의 작품에서 끈적임이 표현되지 않는다. 얄팍함으로는 사람들을 유인할 수 없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 사람들을 모으는데는 선수다. 그는 화류계출신임에 틀림없다.

음악이 흐르고 현장감을 보여주는 동영상, 그리고 멋진 그만의 표현력이 피력된 작품들을 보노라면 이것이 바로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몇 분간 숨을 죽이고 그날의 현장으로 달음질쳐진다. 

박작가는 하늘을 다르게 보고 있다. 채도를 달리해서 이상세계를 구현해 놓았다. 타자의 몸짓 속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각기다른 몸짓들은 작가의 행위요, 요구사항인 것이다. 선명한 그림자는 하늘색깔을 선명함을 닮았다. 오늘 쪽에 타자를 찍고 있는 사람이나 세상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 4명이 세상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다. 또한 이방인을 개입시킴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대비된 행위를 통한 대비이다. 이 작품 속에는 대비와 대비를 통한 시선유도가 눈에 띤다.

대낯의 뻔함을 형태들의 엮임으로 화면을 구상하고 있다. 하늘은 인간의 발광하는 욕구의 꿈틀거림을 혼돈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너머와의 가로막을 쳐 놓은 돌무더기가 한 인간의 도전을 받고 있다. 가녀린 여성의 몸짓 속에 감정을 이입한 작가는 소심하며 자신의 내면과 동일시하고자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파도에 휩쓸려왔던 길가에 물기마져도 건조해 보이는 프레임은 메말라가는 삶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는 대비적인 요소구성을 통해 '가르치지 않고 가르치는' 기법을 들이대고 있다.

과거 화가들의 그림에는 자기애가 담긴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렸는가 하면 그림의 한구석에 붓을 든 자신을 그려넣은 흔적들이 보인다. 걸어가고 있는 백승휴의 사진이다. 타인이 나를 바라본 객관성이 나를 긍정하게 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아직도 주변의 어둠이 나 스스로의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과도한 비네팅으로 시선을 유도한 작가덕에 나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박병해 작가의 사진 속의 나는 누구인가를 반문하는 계기가 되어 신선한 경험이었다.

사진은 객관을 조장하는 장난꾸러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병해 작가의 사진에는 잔잔함속에 인간의 심리적 내용이 듬뿍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말을 하지 않는 동안 그는 생각중에 있다. 그것이 바로 그마의 몰입하는 방식이다.

포토테라피반의 학생들과 떠난 울릉도를 다시 한 번 회상토록 권해준 박병해 작가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는 역시 훌륭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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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11.20 22: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의 나는 작가가 표현하기를 나와 뒤에 보이는 바위는 내가 추구하는 포토테라피라 했다. 맞다. 아직도 가야할 일이 많고, 그것이 멀리 있지도 않음을 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을 향해서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2.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11.27 1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업시간에 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많은 생각의 융합과 교류가 있었다. 동영상이 갖는 허와 실에 대한 이야기. 이미지에 대한 판단이 음악에 따라서 달리 다가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작가의 의도가 의도한대로 타자에게 그대로 전파되는 것이 창작품의 의도가 될 수는 있느나 그래야하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않다. 의도자를 떠나 작품의 해석은 자유롭게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동영상속에 들어간 다양한 이미지들은 하나의 음악으로 퉁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일거란 의견에 대해서 나는 말했다. 답했다라는 말은 잘 못된 표현이다. 말한 것이 옳다. 나의 의지에 대한 표명일 뿐 타인의 의견을 통합해서는 안되기때문이었다. 작가는 동영상을 통하여 여행지에서의 다양한 감정들을 '울릉도 트위스트'란 리듬으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기억의 감정들, 희로애락 애오욕의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의 흥겨움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하나 하나의 각기 다른 감정까지도 하나로 묶고자하는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동영상 작품이란 말로 강의를 맺었다. 나의 말이 그들을 설득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고 작가의 생각도 들어본 적도 없으나 나는 나의 판단을 제시했을 뿐이다. 동영상에 다양한 감정을 집어 넣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병합하는것도 무방하다.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재포장하는 훈련은 오늘도 필요하다.

  3.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11.27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는 박병해라는 조용한 사람이다. 가끔 미소를 지을 뿐 크게 웃는 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은 그런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작품에 나타난 대비와 높은 채도는 타인의 시선을 끌기위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내면의 것에 대한 발산이 행위를 통해서 보여지기보다는 작품을 통하여 샤우팅하듯 발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