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을 대신하는 카메라. 시대가 바뀌다. 셔터를 누르는 이유는 내면의 감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디 고!'에 맞춰 카메라는 셔터를 누른다. 현대인의 사진촬영 방식이자 절차이다. 여행은 장소만 바뀔 뿐이다. 낯설게 하기, 창작의 기본 환경이 만들어진다. 사진은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전달자이다. 뇌 속에 그려 넣어 상상하고 회상하게 만든다. 이미지의 역할이다. 여행전에는 기대하고, 그 곳에선 이야기를 만들고, 돌아와서는 좋은 기억으로 저장하는 수순을 밟는다. 서론, 본론, 결론! 설렘과 기대, 스토리텔링, 기억저장으로 이어진다.


서론: 아프리카! 인간을 닮은 자연을 만난다. 여행중 순간 눈에 띈 마을이다. 허겁지겁 차를 세우고 마을 입구로 들어선다. 모두가 황톳빛이다. 바랜 빛깔도 오랜 흔적을 보여준다. 막 가고 싶어진다. "이런 곳이야!" 사진을 보여주면 여행제안은 끝이다. 이렇게 여행 이야기는 시작된다. 

본론: 앙코르 와트이다. Siem reap! 역사가 숨쉬는 그 곳과 아이들을 만난다. 과거의 흔적과 생동하는 눈빛의 아이들을 찍는다. 대상과의 직면이다. 소통의 시작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이야기는 스스로 말을 시작한다. 그냥 일어난 일들을 말하면 된다. 틈 사이로 보이는 여인의 모습에는 신비로움이 싹튼다. 어떤 사연이 그려진다. 아이들의 호기심에는 무엇을 설명하려 한다. 그곳에서 흥겹다. 대상과 대상, 그 곳에선 나도 대상이 된다. 모두는 소통한다.

이제 결론이다. 중국 황산이다. 오랜 세월이 현재 속에 멈춰 있다. 정지된 300년도 프레임에 담는다. 기억의 재가공!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옮긴다. 저장한다. 한 장의 사진이면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완성된다. 여행은 만드는 것이다. 완성은 아니다. 아직도 진행중이다. 언제나 진행중이다. 사진을 볼때마다 다시 첨삭이 시작되며 다시 진행된다. 끼어들 수 없는 작가의 영역이 보장된다. 가공된 기억이 자기화를 거듭다. 

그렇다. 여행에서 <여행사진>의 의미는 역할이다. 끓어오르게 하고, 몰입하게 하며, 다시 그리워하게 만든다. 전달자인 이미지는 나를 여기저기로 인도하며, 이것저것을 떠오르게 한다. 기억이 저장되지만 그 때의 감정들과 마주한다. 여행은, 여행사진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또한 희로애락애오욕이란 감정을 골고루 섬취하게 한다.여행은 감정의 편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회초리를 든다.

여행에서 <여행사진>의 의미와 역할.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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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수한 대상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대상과 관계맺기. 대상과의 직설화법은 사람들이나 가능하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이 아무리 은유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직설적으로 들려온다. 다른 대상과의 형평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엷은 미소 하나로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알아차리고 답을 주는 소통의 방식이다. 사물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여야 하는가? 그건 바로 감정이입이다.

탄자니아를 여행 중이었다. 언덕 위에서 차가 멈추는 걸 보고는 한걸음에 뛰어왔다. 어디선가 다가온 아이들은 눈빛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사로 잡았다. 몸짓이나 눈빛을 포함한 표정이 강력했다. 구경이든 제안이든 뭐 할 거 없이 와 닿았다. 이런 대상에게로 다가가는 건 감정이입이 아니어도 관계를 맺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성큼 그 목적달성이다. 껑쭝껑쭝 동물들을 말하는 의태어가 그들에게 비유된다면, 큰 눈망울로 바라보는데 때로는 사슴의 눈빛일 수도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동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모습 속에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얼마만큼 객관적인가? 사실일까? 아니다. 그럴 필요없다.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음미하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부여이다.

두장의 사진은 앙코르 와트의 사원내부이다. 시간의 흔적 속에 어떤 궤적이 보이는 듯하다. 흔적과 궤적, 시각과 시간의 원리와 같다. 딱 그 시점인지 아니면 장시간 동안 쌓인 의미인지. 자연이 헐어낸 모습과 인위적 행위를 추측하게 한다. 불상의 모습이 그려진 벽면에 흘러내린 퇴색된 질감은 삶의 무상을 떠올리게 한다. 불상의 머리가 잘려나간 사건에서 'why?'를 묻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신전으로 건설된 곳이 단절이나 시간의 축척 속에서 무력하게 허물어진 모습을 바라본다. 시선보다 더 강한 느낌이 자리를 잡는다. 감정은 길을 떠나 상대에게로 다가선다. 감정이입이란 언어로 포장되어 대상과 동일시된다. 감정이입이란 수단을 활용한다면 무엇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안 그런가?

감정이입은 대상에게 말걸기다. 하나되기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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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게 치장한 아프리카의 여인들의 모습에서 천경자 화백을 만난다. 그 곳에서 그녀가 왜 떠오를까? 그녀와 색, 그리고 생각이 닮아서 일지. 지금도 오지라고 생각되는 이곳을 이미 그렸다. 60~70년대의 아프리카에서 그녀의 생각이 머문다. 그녀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나의 여행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그녀와 담소를 나눈다..> 박지연 작가의 짧막한 글이다. 

박지연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숨겨진 자신을 보여준다. 소극에서 적극으로, 소심에서 자신감으로, 느림에서 재빨리 먹이를 사냥하는 표범처럼 변한다. <변함>이라기 보단 안에 존재했던 자신을 끄집어 낸 것이다. 표범의 공들인 사냥을 목격하며 프레임 속에 <자신만의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의식은 체험에서 꿈틀거린다. 검은 대륙이 아닌 화려한 그들의 일상을 체험한 것이다. 선입견이 착각이라는 확신과 함께 숨겨 놓았던 자신을 만난다. 여행이 사진찍기와 닮은 건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주적주적 비가 내리는 마을 시장에 그녀가 있다. '휙휙' 재빠른 동작으로 사진을 찍는다. 다음 동작을 준비하기 위한 민첩함이 표범같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걸기, 차 창밖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따먹기, 카메라에 어색한 이들에겐 몰카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사진 찍기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자 각인하는 작업이다. 적극적인 여행자도 사진 찍기 만큼 그날을 기억할 순 없다. 그것은 그 곳에 자신을 담아 찍기 때문이다. 사진찍기란 공정이 원래 그렇다. 한번이 힘들지 두번은 별거 아니다. 이제 박지연 작가는 이기적인 사진가가 될 것이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을 찾아 나설 것이다. 박지연 작가다움을 기대한다. 세상보다 먼저 그 곳에 가 있었던 천경자 화백처럼.

박지연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본 천경자 화백의 환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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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스토리에 관심이 많다. 그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다. 콕 찝어서 <그 사람>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비움과 채움>의 논리로 시작하려 한다. 비워야 채워진다. 비움보다 빈 구석이라 하자. 빈자리는 허점이다. 그런 허점이 있어야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진은 탄자니아의 초등학교에서 일이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 사진봉사. 아프리카에서의 photo play. 전시된 사진을 보러 여학생이 왔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하기전엔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으로 상상한다. 오른 쪽으로부터 사건이 일어난 가정 말이다.

나는 international profesional photographer의 master이다. 사진명장이다.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을 출품하여 점수를 받아야 한다. 점수를 받기위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impact, storytelling, color harmony 등 9-10가지 정도의 기준에 맞춰 점수가 나온다. 자격을 갖춘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준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감성을 자극하고 이성적 기준에 의하여 맞춰지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기준보다는 재미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진에 몰입하고 있다. 이 사진은 그 기준으로 치면 따질 가치도 없다. 그런데...

기준이란 <그들끼리의 리그>일 뿐이다. 작품을 출품하고 그들의 기준에 따라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정한 기준일 뿐이다. 절대적이진 않다.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추구하는 방향의 문제이다. 사진으로의 수다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사진을 활용하는 나에게 더욱 그렇다. 이런 빈구석이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 그 자리에 <내 이야기>를 집어 넣을 수 있다. 모두가 아닌 내 것이어야 한다. 한참전부터 나는 이런 사진과 놀고 있다. 재미난 일상도 이런 과정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에 이야기를 담으려면, 나와 대화를 나누려면.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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