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떠 올리기엔 사진만 한 게 없다. 사진속을 바라보는 순간, 벌써 그 곳에 있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작은 지면 위에 옮긴다는 건 무례한 일이다. 방대한 분량의 역사적 축척이 장의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500년 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 이제 시간을 넘나드는 피렌체의 기억을 끄집어 내려 한다. 때는  2014년 12월 겨울, 크리스마스 전이다. 

피렌체는 나에게 키스와 미소, 두가지만 떠오른다.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와 달리피렌체에서 나는 사람에 집중하고 있었다기차역의 강렬한키스신으로 부터 골목에서 만났던 미녀들의 미소는 이 도시를 오래 동안 머무르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예술의 도시 답게 사람들의 행위까지도 환상적으로 느껴졌. 피렌체의 상징, 붉은 지붕은 시민들의 노력에 의해 보존된 것이다. 보존이란 말 속에는 변화하지 않은 안정감을 엿볼 수 있다. 권태로울 수도 있고, 여유를 가질 수도 있지만 피렌체는 평온한 모습만을 여행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장 풍경이다작품과 관람객의 의상이 잘 어우러져 있다에 우연한 만남이지만 관객을 앞에 둔 배우의 움직임처럼 보였다프레임 속의 어울림은 나를 그 속으로 끌어 들였다. 깔맞춤이라 단정 짓기엔 너무 순간적이고 오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품 속에 몸짓과 관람자의 어울림이 예술이라.

저녁 나절, 도시를 거닐다가 만난 빈센트 반 고흐.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라는 작품과 분위기와 흡사했다밤하늘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던 건 고흐의 환영(illusion)을 만났기 때문이었그의 순수와 열정이 담긴 작품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좋아하는 음식에 집중하는 편식아의 입맛처럼. 나는 그 시각 계속 고흐 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르네상스시절,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묻힌 곳이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사람들의 사후모습이다. 성당 내의 반평도 안되는 장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진이 현재를 찍는다는 의미에서 더욱 이 사진에 의미가 있. 현재를 집중해야 한다는 달음! 나는 강의 마지막 pt로 가끔 이 사진을 쓴다. <사진은 현재를 찍는다. 고로 현재를 즐겨라.>

 

만남은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자연이나 그 곳의 사물도 포함한다보여지는 것 뿐만 아니라 의미도 만남으로 규정해야한다500전 그대로의 피렌체! 벽에 그려진 낙서나 바닥의 돌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간을 잃어버린 피렌체곳이 낯설지 않은 건 예정된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예술가들을 탄생시킨 한 도시라는 의미를 넘어, 자신들의 자존을 지키려는 의지가 끌림을 주고 있다. 자연스러움. 자연스럽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고를 생각한다면 "자연스럽다"란 말을 쉽게 던질 수 없다.

아, 피렌체! 그곳이 그립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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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기설 2018.07.13 0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피렌체를 거니는 기분이 드네요. 가 보고픈 곳입니다.
    여유로움도 느껴집니다.

나는 <아트인문학여행>의 저자다. 이탈리아 여행후 쓴 책이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비롯한 로마, 밀라노에서 찍은 사진들이 책 속에 있다. 한 성당 옥상의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그 곳에 작품들이 놓여져 있었다. 하늘이 시선을 감안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신의 눈높이에서 보는 것에 길들여저 있다. 현대과학은 시선의 다양성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드론이 그것이다. 낮은 높이로  막 달려가는 듯 찍거나 높은 곳에서 바로 밑을 훔쳐 보는 듯 찍기도 한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고민을 한방에 날려버린 쾌거이다.


형태와 형체. 모양을 하고 있는 평면적인 것을 형태라면 그림자가 길게 늘어선 모양으로 입체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을 나는 형체라고 부른다. <본다는 것보다 바라본다>란 말을 쓴다. <보기>는 외형만을 조명하기도 하고, 골퍼들이 '보기'는 싫어하기 때문이다. 깊게 사물을 들여다보는 <바라보기>를 쓴다. 사유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항저우의 첨산 드레곤 코스를 하늘에서 찍었다. 벙커와 그린이 조화롭다.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가 시원스레 한폭의 그림같다. 골프장 디자이너의 의도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과 다르지 않다. 하늘의 시선을 감안한 포석이란 생각을 들었다. 하늘에서 찍었지만 그림자 주인의 몸매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재미난 광경이다. <다른 시선>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내가 <different>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항저우 첨산 드레곤 코스를 바라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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