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연결고리>

들여다 본다. 주방에는 요리사들이 분주하다. 렌즈 구멍으로 바라본다. 호기심일 까. 낯선 풀경인지라 끌림이 있다. 의상보다 사람이 낯설다. 일은 즐거워야 한다. 그들이 그렇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프레임 속에 3명이 존재한다. 가운데 한명은 일을 하고, 옆의 한 명은 다른 곳을 향하다. 뒤의 시선은 중앙을 향한다.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동선이 사방을 오간다. 가운데는 중심을 잡고, 가장자리로 향하는 시선과 대비되게 중앙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 하나가 된다. 엉키고 설킨 대상 간의 소통은 한장의 사진으로 완성된다. 그것이 사람에게는 끌림이 된다.  이런 모습이 정겹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람을 분석한다? 분석할 순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 단지 분석할 뿐이다. 지속적 기록을 통하여 집중 분석이 가능하다. 프로이드의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는 20년이 걸렸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가벼움>에 대해 자책 중이다. 단지 몇개월 차이인 사진으로 썰로 풀겠다고 덤벼드는 나의 용기는 가상하다. 프로이드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살았고, 나는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소시민 아니던가? 이런 면죄부, 좋다.

한사람이지만 얼마나 다른지 찾아 보자. 시간차, 장소, 의상, 조명의 모든 것, 포즈, 표정, 목적, 촬영의도, 백그라운드, 상황 등등. 더 자세히 들어가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두 장의 사진이 같이 등장하게 된 것은 <사진의 탄생동기와 과정> 때문이다. 우선 사진은 입체를 찍어 평면으로 만든다. 이게 1단계이고, 인식하는 사람이 이걸 다시 입체 즉 그때의 느낌으로 봐줘야 한다. 이건 소통에 관한 문제이다. 세상 모두가 그러하지만 사람의 표정만큼 다양한 것도 없다. 촬영은 보고 느낀 감정과 의도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피사체의 감정이나 촬영자의 느낌이다. 그걸 전달했을때 성공적 소통이라 말할 수 있다. 

두 사진은 정면을 본다. 검정의상은 다소곳한 표정으로 정중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밝은 사진의 표정에서 피사체의 여유롭고 자유로움을 비춰진다. 치아 노출 차이도 있지만 다리가 한쪽 올라가면서 적극적 모습을 띄고 있다. 조각상에서 다리 한쪽이 앞으로 내미는데  역사적으로 2천년이 걸렸다는 말에 비하면 이건 엄청난 변화이다. 검정쪽은 <따르겠다>이고, 흰색쪽은 <같이하자>이다. 갑을관계의 수직구조와 동일선상에 서 있는 구조로 차이를 말할 수 있다. 단지 바디랭귀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되는 느낌을 찰나적 순발력으로 잡아내는 건 사진가의 몫이다. 두 사진은 다른 느낌이지만 사람들은 <아, 보이스 트레이너 박미경>이라고만 말한다. 객관적 시선과 주관적 시선, 그 시선에 따라 사람 뿐 아니라 세상이 달라보인다. 제목에 쓰인 <누가 달라진 건가?>의 답은 고민해야할 과제로 남겨두려 한다. 그 사람인지, 나의 시선인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도대체 무슨 말이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