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소통의 기본 단위다. 음성으로 나오면 말이고, 그것을 종이에 적으면 글이다.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소통을 할까?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론 빛이 있다. 빛이란 색깔, 방향, 질감, 강도 등에 의하여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한다. 애석한 일이다. 그러면서 고독하다고들 한다. 고독한 이유는 주변에 있는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연에서 속삭이는 달콤한 유혹에 말려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콤한지 그 단맛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약처럼 내성이 길러지지는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빛은 때로는 응축된 언어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프리즘을 통과한 산란된 빛은 수다스러울 정도의 언어로도 말을 건낸다. 그 언어의 구사력은 시인의 세련미를 능가한다. 때로는 그 음성이 음악처럼 리듬을 타고 다가온다. 그냥 느끼면 된다. 새로운 틀 속에  집어 넣고 다른 방식으로 받아 들일 필요도 없다. 그것이 바로 빛이 던지는 메시지이다. 자, 그들의 음서에 귀기울여 보라.

누군가는 구름 사이로 빛이 내리 쪼이는 곳을 향하는 사람은 무뚝뚝한 표정일 거라고 한다. 석양에 노란색의 향연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즐거울 것이라는 말도 덫 붙인다. 왜 그럴까?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표정을 어떻게 읽어내는가? 그것은 바로 색감에 있다. 구름 속의 빛이 노란 빛깔이었다면 빛 속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설레고 있으며 미래의 환영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실루엣이 보이는 노란 배경이 보이는 사람들도 차가운 푸른 색으로 다가 왔다면 뭔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몸짓으로 받아 들였을 것이다. 빛은 이렇게 색깔로도 말을 걸어 온다. 그럼, 그것을 그대로 느끼면 된다. 지금 바라보며 느끼는 그대로의 언어가 정답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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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서 스타일을 찾아라.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사진과 그림을 자주 비교하곤 한다. 사진이 있기 전에 그림이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림은 내면의 것을 그려내는 반면, 사진은 찍힌 사진 속에 그가 있다. 이 둘은 표현 도구도 다르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림은 손으로 직접 그린다. 그림은 한 복판부터 그리는 반면 사진은 가장자리에 선을 그으며 찍어 낸다. 즉 사진은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사진 찍기의 시작이다. 프레임이란 틀이다. 그 틀은 우리를 고민스럽게 만들곤 한다. 틀은 깨야 할 때도 있고, 사진 찍기처럼 틀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짝을 짓는 사람들처럼  그 프레임도 끼리끼리 모여든다. 그 프레임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청하곤 한다. 그 안에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담아서 뻐꾸기를 날리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가르친다. 그러나 메커니즘에 중점을 두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열정이 생기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찍는 이의 의도를 중요시 여긴다. 의도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며,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의지이다. 아이들에게 적성을 찾아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처럼 여겨지듯이, 선생인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스타일을 찾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감처럼 항상 달라붙어 있다. 가르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과제를 주면 일주일동안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오면, 그 멋진 사진을 감상하는 일이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가치관이 여러 번 바뀌듯이 스타일 또한 바뀌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에 집중하여 사진을 찍는 것은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며 사진에 흥미를 느끼는 지름길이다.

 

류 웅렬 작.

몽환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익명적 표현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의 뒷모습에 그의 진성성이 담겨 있다. 앞모습은 상대편에게 비춰질 것을 미리 알고 있기에 방어적이나 뒷모습은 불가능하다. 구름이라는 이상향을 향해 걸어가는 익명, 서로 대화를 나누며 정겨워하는 익명이 또 다른 익명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표정을 읽지 않으나 뒷모습 속에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상대의 의미를 말로 하지 않고 사진의 음영을 통해 표현한다류 웅렬은 자신이 전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극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재현 작.

빛은 사진을 찍는 원천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태어나서 현재까지 보고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렌즈를 통해서 그것을 다루는 것은 저마다의 특권은 아니다. 빛이 춤을 추고 있고, 대화를 청하고 있다. 그것을 잡아내는 숙련된 마술사처럼, 멀리에서 희미하게 말을 걸어오는가 하면, 프리즘을 통해서 새어나온 빛을 잡아내고 있다. 은은한 파스텔 톤의 음영이 가라앉은 마음을 술렁이게 하며, 속내를 드러내게 한다. 아마도 그는 명랑하고 사람들과 어우러져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빛은 항상 존재하나, 모두가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재현은 그것을 재현해 내는데 기발하다.

김 수영작.

뻔한 일상을 뻔하지 않게 말하려 하고 있다. 하늘 배경에 같은 색깔의 지붕을 과감하게 접근시켜 표현했다. 작가는 'different'에 익숙해야 한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대낮을 피한다. 그것의 익숙함 때문이다. 사진은 관심을 받기위한 어린 아이의 옹알거림이다. 대낮의 익숙함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미흡하다. 그러나 김 수영은 낯설게 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골목길을 더욱 좁게 만들어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그 길에 익숙한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자 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인의 마음처럼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시 프레임 해야 하는 것이다

김 성희 작.

물속에 하늘이 보인다. 물인지 하늘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잎이 반영되어 날개를 달아 놓았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를 그렸다. 물체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자신만의 영역에 대한 줄긋기이다. 땅바닥에 비춰진 그림자는 그것의 원형을 만들었고, 물속에 비춰진 현실처럼 보이는 환영은 그림자와 대조적이다. 김 성희는 섬세한 세상 보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철학적 논리를 삶 속에서 끌어내어 사람들의 공감을 유도하고 있는 수다쟁이이다.

신 민경작.

세상은 둘로 나뉜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그러나 신민경의 눈에는 안 보일 수 있는 세상을 찾아 나선다. 채도가 높은 물감을 절제하며 그레이 톤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먹으로 산수화를 그려낸 것처럼, 신 민경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심오하다. 얇게 보이는 이파리와 가지가 손짓한다. 길가에 고인 물속에서 찰나를 만나고 있다. 하루 이틀 내지는 몇 시간 밖에 머물 수 있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세상을 포착하는 눈썰미가 있다. 그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윤 경훈작.

노란 단풍이 병들어 있다. 항아리 속의 세상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항아리 속의 세상이다. 세상을 품은 한정된 공간속에서 윤경훈만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랗게 물든 단풍이 처절하리라 만큼 병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의 단풍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내며 거친 여름을 지내온 단풍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자기만의 철학으로 단순한 사진 속의 이야기마저도 사람들의 공감을 받아내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눈이 자신의 얼굴을 못 보는 것처럼, 사진을 찍는 자신도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바둑의 훈수처럼 옆에서 던진 한마디에 그의 사진인생에 방향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는다. 상상의 날개를 펴고 생각을 표현하는 카메라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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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04.09 1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풍경사진으로 인물사진반의 강의를 진행했다. 빛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광에서 끄집어 냈으며, 인공광이란 자연광에서 얻어낸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 빛의 색깔이 언어의 역할을 하며, 그것에 의하여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도 부가적으로 말했다. 빛의 강약에 의하여 사람의 표정이 달리 보일 수 있음도, 무엇하나 쉽게 넘길 수 없는 것들의 향연과도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서로에게 브레인 스토밍이 될 수 있는 논제를 꺼내어 흥미로운 수업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어느 날, 아내가 집안에 꽃을 심어 놨다. 버려진 화분에 핀 꽃을 사다가 심었었던가 보다. 생뚱맞을 정도로 몇일을 환하게 꽃을 피우더니 갑자기 시들해지더니 종이장처럼 바삭거린다. 화초에 이파리만 싱싱하고 꽃잎이 떨어진 것은 그냥 나무다. 최절정을 보여주는 꽃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이고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짧은 생을 마치며 떠나가는 이의 애처러움을 본다.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보다 더욱 극명하게 자신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에 맞게 처세하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방법은 먼저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이다. 꽃이 촉촉하게 살아있는 것은 물기가 있어서요, 그것이 없으면 종이쪽 같이 되어 버린다. 그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부른다. 생명력이란, 살아 있다는 것이란 다 그런 것이다. 삶의 진리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물기는 인간사에서는 사람사이의 관계이고 관심이며 욕구이자 의지이다. 여기까지는 나의 생각이고 다음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옮기고자 한다. 참으로 생각이란 각양각색이란 생각을 하게 하는 수업임에 틀림없다.


"희망을 보았다. 지금 꽃은 지지만 얼마 후에 다시 열매를 맺으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꽃이 시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에 비춰진 선과 형태 그리고 그 안에서 비춰지는 원형이 보인다."

"우울하다. 이제 생을 마치고 떠나가는 꽃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같은 절차를 밞게 되다니..."

"꽃이 시들었다기 보다는 그 안에 선명한 색들의 환영 속에서 희망을 안겨준다. 특히 노란 색이 꽃 중앙에서 나에게 환희스러움으로 손짓하고 있다."

"갑자기 시들었더라면 모양이 예쁘지 않았을텐데 서서히 시들었기에 그 형태를 덜 잃어가면서 자태를 뽑내고 있는 듯하다."

"죽음에 앞서 그 암흑과 같은 어둠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오른 쪽의 이미지는 더욱 꽂꽂하게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동소이하나,  한 사람도 똑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경험과 성향에 따라서 달리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같은 사물도 달리 보인다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비교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 하나 소중한 존재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지, 카메라가 전부 찍어 주는 것은 아니다. 기계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1차원적 개념이고, 좀 더 사고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기존에 바라봤던 시각보다 새로운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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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는 걸까? 이러한 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흥미롭기고, 따분하기도 할 것이다. 대답은 그때 그때 달라요이다. 이유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기때문이다. 충분한 공감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흥미진진할 것이니 말이다. 우리에게 생각이란 생각이상으로 흥미롭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속에서 10여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영감들이 나를 흥겹게 한다. 그것의 근본은 생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생각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현재 우리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사진가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예전에 필름을 끼우고 사진을 찍고, 그리고 맡긴다음에 잘 나왔을까를 고민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찍은 다음에 마음에 들지 않은면 delete key 하나면 없애 버리고 다시 찍으면 된다. 물론 이것은 디지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말하는 것이다. 필름값이 아까워서 한 컷 한 컷 떨면서 찍었던 시간들을 안타까웠던 시절로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푸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 시절의 애뜻하면서 새로운 설렘같은 것은 긍정적이나 창조적인 차원에서, 나의 스타일상으로는 더욱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올림픽공원을 학생들과 같이 출사를 가서 찍었던 나의 생각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냥 나의 생각일 뿐이다. 

청색과 붉은 색의 대비, 샤머니즘을 상징이라도 하듯 현란하게 나를 유혹하고 있다. 언젠가 살다간 사람들의 형상이 그들의 삶을 기리기라도 하듯 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물론 그것을 해석하는 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나 그것이 예술의 시스템 아니던가?

항상 자연은 2차적 작업을 통하여 원작자의 생각을 본인의 마음대로 바꿔놓곤 한다. 그 주역은 바로 빛이다. 빛의 방향에 따라서, 빛의 색깔에 따라서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치이다. 세상은 보고자 하는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꼴리는대로 봐라이다. 분홍과 붉은 빛이 야릇하게 섞여있는 모습들은 항상 4차원의 누군가와 만날 듯한 충동을 일으키곤 한다.


올림픽 공원 근처에 멋진 교회가 있다. 위풍당당함이 구세주와 겨루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서있다. 아마도 하늘의 뜻을 피뢰침처럼 받아 내고자 하는 의도를 건축가가 표현한 듯하다. 하늘 색과 어우러진 그 형상에다가 올림픽공원의 조각물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과거의 여인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백그라운드의 이미지에 따라 종교적인 색체를 띤다. 마치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사람의 시각이 연관고리를 가지고 생각해 내기 때문이리라.

왕따 나무이다. 그러나 이 광경은 결코 왕따 스럽지가 않다.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다른 이에게 그 공간을 임대해주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인다. 하늘과 땅의 경계에서 유유자적한 나무의 여유를 표현하고자 했다.

왜 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이곳에 왔는가? 무얼 찍으려는 것인가? 추운 날씨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앉아 두 눈을 부릎뜨고 세상의 적군과 마주하고 앉은 모습이다. 세상은 사람끼리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그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달리 보인다. 다르게 봐라.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남과 다른 세상을 바라보기와 그것을 행하기. 그것을 블루오션이라한다. 그것만이 세상이 나를 관심있게 바라보는 임팩이다. 


-칼바람 흉흉하던 어느 봄날 성북구 평생교육원 군사들을 이끌고 올림픽 공원 정벌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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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04.01 16: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새로운 매력을 느낀다. 한 장의 사진을 올려 놓고 다양한 시각을 즐긴다. 이것이 나의 수업의 묘미이다. 틀에 묶여있는 생각들은 그 매듭을 푸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풀리고 시작하면 그 유연함이 춤을 춘다. 그것이 사진을 통한 생각만나기의 매력이다.

    사진을 만들고 만들어진 사진에다가 글을 입히고 말하기란 아주 자기훈련으로는 그만이다. 나를 만난다는 것은 사색의 과정에서 가능한 문제이며 그것은 단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치 근육을 단련시키든 뇌의 근육도 단련시켜야 튼튼해질 수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