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삶의 의문을 풀 수 있다. 꽃이 피고 지고, 나뭇잎이 단풍이 들면서 땅에 떨어지는 것도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삶이 그토록 소중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을 것이다. 걸어왔던 길에서 느끼는 후회는 너무 일찍 알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좋다는 생각이다. 나에게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자식이 있고, 칠순이 되신 부모님이 계신다. 그리고 99세이신 할머니도 생존해 계신다. 물론 그 장수의 비결을 부모님의 극진한 효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가 마흔이셨을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시기였다. 나의 마흔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물론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전혀 내비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나의 대학문제로 어질병이 생겨 자리에 누우신 적이 있었다. 이유는 많은 고민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뒷모습은 외로워보인다. 아마도 아버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의 뒷모습일 수도 있고,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겪어야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이제 아버지는 70의 노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힘겨운 농사일이 아버지의 즐거움이 대상이자 삶이다. 사진에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왠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잠기게 한다.

99세의 할머니다. 항상 웃으시며 가족을 맞이하신다. 그러나 왠지 모른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요즘은 방과 거실에서만 생활하신다. 남편과 큰 아들을 앞세우신 할머니에게 현재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보물들이다. 같은 색의 모자, 지친듯 찡그린 얼굴, 흙탕물이 튀긴 옷이 남매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아들은 자신들의 옷을 패션테러리스트라고 정의했다. 그들의 웃도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허드레 의상이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꼬.

삼일의 모내기 중 한나절을 투입시켰다. 모판을 들고 다니는 일을 시켰다. 날은 덥고 젖은 장갑은 찝찝하고 자기들에게 가볍지 않은 모판은 고통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식탁에 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한나절의 노동은 그들을 넉다운시켰다. 일을 마치고 아이들은 방에서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들이 얼마나 일을 하고, 그 일이 얼마나 부모님께 도움이 될 지는 논하고 싶지 않다.  그 아이들이 종알거리며 모판을 옆에서 나르는 동안 부모님의 마음은 천국에 가 있을 것이다. 그냥 옆에만 있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바란다. 아이들이 나의 어린 시절 뛰어 놀던 그곳을 자주 접해주기를 바란다. 학원이 아이들을 붙잡아 놓을 지라도 그것을 뿌리쳐주길 바란다. 그 이상의 가치가 자연 속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자연으로의 삶, 그 과정에서 서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이 힘이 되어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 나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인간 그 자체로 말이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백승휴 2013.05.28 0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다. 후회의 연속, 그러면서 자식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잘하는 것인지도 헥깔릴때가 많다. 인생이란, 나도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오늘은 진지하게 두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아버지로서 학생으로서의 도리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다른 때 같으면  히득대면서 웃어대며 딴 짓하던 아이들이 드림캠프를 댕겨오더니 바뀌었다. 아버지의 말에 진실성을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게 진실이던 아니던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지만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자연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찾았는데 내 딸은 내얼굴에서 자신을 찾았다. 영특한 것! 내 얼굴의 오묘함을 어찌알았을까? 두뇌까지도 유전이 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드림캠프 관계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의 멜에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저 백진이에요.

1박 2일동안 좋은 경험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처음에는 어디오는줄도 모르고 왔어요.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고, 평소에도 학원 다니는데 여기까지오면서 또 공부를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막상 어른들께서 저희를 위해 강의를 하시는걸 듣고,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흥미도 느꼈고, 배울점도 많았어요.

처음에 나에 대해서 설명할 때는 평소에 나에대해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서 적은것도 별로 없으면서, 고민을 꽤 많이 했어요. 앞으로 평소에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봐야겠드라고요.

그리고 아빠가 얼굴에 대해서 강의를 할때 아빠의 진지한 면을 보게 되었고, 평소에 표정같은걸 잘 지어야되겠고,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다는걸 느꼈어요.

그 다음에 노진화 선생님(?!)의 브렌드에 관한 설명도 인상 깊었어요. 어렵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다음에 바베큐 파티 후에 우지인 선생님께서 티아라의 "롤리폴리" 춤을 간단히 알려주셔서 재밌었어요.

그 후에 나를 표현하는 사진 서바이벌 오디션 때, 일단 아빠를 찍긴했지만 막상 할말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발표한건데 의외로 사람들이 좋게 봐주셔서 고마웠었어요.

그 다음에 3T 드림보드 만들기. 이게 솔직히 제일 재밌었어요. 아직 꿈이 안정해져서 별로 한건 없지만 앞으로 꿈을 빨리 정해서 점점 실천해나가야겠다고 느꼈어요. 많은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이 열심히 잘하고 대단하더라고요.

저는 이번 캠프를 통해 남들보다 더 노력을 많이 해서 부족한 점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공부가 싫어도 제 나이때는 해야된다는걸 알았고요. 모든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느꼈어요. 덕분에 1박 2일 동안 좋은 경험했구요. 앞으로 좋은 마음 가짐을 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교육이 사람을 바꿨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현실로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 감동의 느낌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이 광경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참고적으로 우리 딸은 반항적인 사춘기에서 온순하고 독서하는 사춘기로 순항중에 있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 딸은 백진.
아들은 백인혁이다. 12살과 9살.
진이는 피아노를 어렸을 때 부터 배웠기에 어느 정도 친다. 아들은 그런 교육을 싫어해서 배운지 얼마 안되었다.
그러나 끼가 누나보다 더 있다.

누나의 음악시간 노래시험 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피아노치며 연습하려하자
동생이 율동을 섞어가며 노래하는 방법을 지도하고 있다.

어색하면 소리를 크게 질러버리라는 것이
동생의 조언이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는 비보가 그날 오후에 있었지만
노래 잘하는 사람만이 인생이 승자는 아니니깐....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elma 2009.09.27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ggㅎㅎㅎ 유쾌한 가족입니다... 이런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행복이겠지요... 기다릴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식구가 있고, 걱정해줄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우리 삶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매일 더많이 행복하세요...

    피아노로 듣는 창은 더욱 매력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