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는 말만 들어도 기분 좋은 섬이다. 안 가봤을 때도 이름 자체에서 오는 청량감이 있었지만 2009년도 청산도 행사촬영을 인연으로 여러번 다니면서 체험에 의해 생긴 믿음이다. 한참을 지난후, 나의 사진 촬영 컨셉이 바뀐 시점에서 돌아본 청산도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세상은 항상 다른 모습이어라.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은 <계절마다 & 하루의 각 시간마다> 새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건조함으로 세상이 외면하는 상황도 경험한다. 카메라만 들면 어디든 좋다. 

청산도의 아침이다. 카메라를 든 나는 소년의 호기심이었다. 길눈이 어둔 나는 일행을 이끌고 산길로 들어섰다. 처음 온 길임에 틀림없었다. 숲길은 설렘 반 두려움 반 이었지만 아침의 산새 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또한 깊은 숲이 아님에도 그 못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낙의 마늘밭 행차, 바닷가에서 해녀가 잠수할 때 써먹었을 법한 기구, 마을 어귀에 보여진 담벼락의 미묘하고도 신비로운 색감, 부녀회 여인들이 사진찍기 애착, 미나리와 마늘 쫑을 가지런하게 비치해 놓고 팔고 있는 모습들이 나를 흥미롭게 했다. 아침은 아주 자연스럽게 즐거운 속으로 빠져 들기에 충분했다. 

가지런한 접시는 설거지 후 이었지만 전날 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청산도는 언제 찾아도 친절한 섬사람들과 바닷바람의 청량감은 여행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언제 또 가볼까나.

청보리가 넘실대는 청산도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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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우리 동네도 새롭다. 타국이 그런 건 당연하다. 나에겐 그렇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아침을 만났다. 스님들의 탁발행렬이 삶이란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집앞에서 음식을 나누는 장면은 정겨웠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며 세상을 밝게 한다는 약속과 같은 믿음이 한 몫을 한 것이다. 치앙마이의 아침은 스님들의 몸짓이외의 또 무엇이 보일까?

노부부의 아침식사, 그늘 속에서  엷은 그림자를 드리운 이파리, 저쪽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 살포시 비춰진 등불의 그림자, 호텔 경비의 따스한 카리스마, 그리고 쌀톨만한 물방울이 한 곳에 모아지고 있었다. 특히 쌀톨만한 물방울은 탁발스님의  봉다리에 담길 음식을 떠올리게 했다. 치앙마이의 아침은 우리동네와 다르진 않았다. 그러나 새로울 거란 기대가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언제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기대에 기대며 돌아왔다.

태국 치앙마이의 아침을 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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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다는 게 뭘까. 처음인 것은 다 새로운 건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건 새로울 수 없는 걸까. 난 이런 질문을 무수히 던진다. 새롭던 새롭지 않던 세상의 모든 것은 어자피 우리에게 다가 왔다가 사라진다. 대한민국은 아름답다. 사진을 찍으며 안 사실이다. 비행기를 오래 타고 더 멀리가면 이국적인 느낌때문에 사진을 찍을 소재가 많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문화의 차이일 뿐 대단한 새로움은 아니다. 이번 출사는 봄을 찾아 육지에서 참말로 가까운 섬으로 향했다. 그곳의 이름은 국화도, 당진의 장고항에서 작은 배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아주 작다. 그만큼 또 뭔가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작은 만큼 섬세해야 더 찾아낼 수 있다는 원리이다. 자, 국화도로 떠나보자.

섬에서 바라본 바다. 사람들이 섬을 찾는다는 건 절차상의 매력때문에 육지보다 선호할 때가 많다. 차로 금방가는 건 너무 편리한 거다. 싱겁다. 배를 타는 건 표를 끊고 기다렸다가 배를 타고 가는 건 나름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이 더욱 흥미를 준다. 국화도는 외딴 마을이었다. 몇십가구밖에 안되는 섬마을이었다. 옆집 숫가락까지 서로 안다.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고, 그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동네를 시끄럽게해도 탓하는 이 하나 없었다. 사람이 그리웠던 게다. 우리가 도착했던 때가 봄인지라 긴겨울의 그리움이 한 몫했을 것이다. 아무튼 장고도는 가볼 만한 섬이다.

봄이 되니 국화도가 나에게 오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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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일상의 차이점은 뭘까. 있기는 한 걸까? 따질 필요없이 이렇게 시작하고 각자의 판단에 맡기면 될 거다. 장소와 시간의 교차! 그 찰나적 만남. 이 둘이 만들어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행이든 일상이든 관계없이 이 둘의 조건 속에서 살아간다. 분명 이 말은 내 생각이며, 각자의 판단 속에 나의 의견일 뿐이다. 찰나라고 말하는 <그때 그곳>은 임팩을 통해 기억 속에 담는다. 때로는 생뚱맞은 검색어에 의하여 그곳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만약, <피자>라는 단어 하나에도 어린 시절 된장찌게를 연상시킬 수 있는 것이 의식 세계가 아니던가.

*잘 생긴 흑인에게서 왕자의 포스가, 서원 안의 분위기에 맞는 복장과 피부색이, 민속의상 그리고 상점안에서 만나던 길거리 카페에서 여유를 부리는 이의 표정이, 아침나절 마을에서 만난 순박하게 생긴 여인이 내가 사진을 찍어야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 그 이유는 깊숙히 들어가면 갈수록 핵깔린다. 나의 무의식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난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라고 치부하지만 그 공간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 곳에 세워놓고 작품을 만드는 게 작가이다. 몰카가 아닌 그 자리에 의도적으로 연출한다는 것이 다른 사진 찍기와의 차이점이다. 그 시점을 예감하게 되면 용기가 생겨난다. 평상시에도 용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시점이 되면 무모할 지경으로 덤벼든다. 이게 내가 인물 사진작가면서 오랜 시간동안 권태롭지 않게 살아왔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이 블로깅의 공통점은 우연히 그 공간에서 만나 찍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이 그 환경과의 어울림이다. 컨셉이라고도 한다. 나는 그 만남을 우연이 나에게 발견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졌다는 의견이다. 다양한 동선이 선택과 유혹을 주며 수많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찰나적 만남은 올 것이 왔기 때문이고, 내 생각과 카메라가 함께 그 당시 존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연과 사람, 내 인생의 동선과 교차 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흔쾌히 얼굴을 맡겨준 이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즉석 만남, 여행과 삶이 주는 매력.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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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 우연이란 없다. 이런 필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Batavia엘 갔다. 그곳에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순수하고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삶은 힘겨웠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행복해 보였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 하려했다. 먼저 사진을 찍고, 친구나 가족도 함께 찍어 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뽀또 뽀또?"를 외쳤다. 2-3시간이었지만 그들의 속살을 들여다 보는데 충분했다. 그들은 가슴을 열고 우리를 대해줬다.

우리에 비하면 느린 삶이었다. 물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느리게 세상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찍으면 우리처럼 보여달라거나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사진 찍는 행위는 하나의 이벤트일 뿐 그 사진에는 관심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랬다. 그들은 나의 모습이나 행동이 신기했겠지만, 나는 그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해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진을 찍고 자신의 얼굴을 맡기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계하지 않는, 사람과 사람은 다르지 않음을 말해주는 그들의 일상이 지금도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그립다.


자카르타의 Batavia 사람들, 그들의 미소에서 행복을 읽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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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첫날,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눈발을 뚫고 도착한 곳은 소운교 빙폭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곳, 자연스럽게 카메라는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둠 사이로 불빛이 색의 향연이 펼쳐지며 시선을 끌었다. 눈을 못보던 사람에게 눈이란 비가 온도가 떨어지면서 생긴 자연현상이라는 건조한 풀이를 해주면 많이 실망할 것이다. 나에게도 눈은 어린시절이며, 환상이며, 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운교 빙폭축제의 눈과 얼음은 해는 저물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다급한 아이의 마음으로 다가왔다.

찍고 찍힌다. 밤이 다가오면 누구나 다급함을 갖는다. 우리는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사진가에게는 낮과는 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와 의욕을 갖게 해준다. 낮의 밖은 대부분 태양광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가 태양이 사라지면 다른 빛이 세상을 지배한다. 인공광이다. 태양광과 비슷하게 만든 인공광말이다. 태양은 새벽과 석양에는 색온도가 달라지면서 전체적인 색이 느낌을 다르게 해준다. 사진 찍는 1인과 찍히는 1인을 찍었다.

얼음동굴 속에는 아이들이 장난친 듯, 다양한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눈사람을 만든 아이가 얼음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가하면 뭉게 진 사진이 개구쟁이의 얼굴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성이는 곳에는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묘한 색감에 덧 씌워져 있었다. 불확실한 모습이 다양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나에게 여행에 대한 글쓰기는 그 곳을 회상하며 <기억의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홋카이도의 얼음세상, 소운교 빙폭축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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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이럴 때가 있었다. 겨울 밤 잠에 들며 눈내린 아침을 기대했었다. 그 꿈이 이제서야 이뤄지려나, 홋카이도 비에이로의 여행! 온통 하얀 세상 속에서 동심을 그리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눈보라가 차창을 가리는가 하면 구름 사이로 엷은 햇살을 보여 주기도 했다. 변덕스런 아이처럼 우리를 대했다. 

하얀세상. 설국버스의 차 창을 덮었던 눈발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느끼게 했다. 그 감정은 어린 시절에나 느꼈을 법한 낯선 기억이었다. 살포시 얼굴을 매만지는가 하면 매섭게 후려 치는 듯 변덕스런 날씨였다. 다양한 시선을 제공한 비에이에 고마움을 표한다.


의미부여. 봄, 여름, 가을엔 오색찬란하게 수 놓았을 들녘, 겨울인 지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다쟁이처럼 나무에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그건 의미 부여이자 스토리 텔링이었다. 크리스마스 나무, 세븐스타 나무, 켄과 메리의 나무 등 다양한 이름이었다. <백자까 나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의미 부여란 나와의 관계 지음이며, 꽃이라 불러 놓고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리라.

지향성. 그들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찍어 올린 의미들은 서로의 기억으로 부활될 것이다. 그들이 지향했던 존재는 내면에 잠재했던 자신을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춤추는 세상. 결국 이런 세상을 꿈 꿨던 거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셔터 소리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뛰었다. 여행이 치유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다. 함께 한 사람들, 풍광과 사물들에게 부여했던 의미들에 의하여 우리는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호카이도 비에이는 순백 위에 맛깔스러운 밥상이었다. 소문난 잔치에서 잔뜩 먹고 온 그럼 여행이었다. 사요나라, 홋카이도!

홋카이도 비에이, 의미부여된 하얀세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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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방을 꾸리는 창밖은 비가 내린다? 그것도 좋다! 여행을 떠나는데 비바람이 불어도 좋고, 천둥이 나만 때리지 않으면 마냥 좋다. 이런 나의 무한 긍정은 여행사진을 찍으면서 시작되었다. 나의 프레임 속은 모두가 낯설게 다가오면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서귀포쪽으로 떠난 여행지, 추천한 사람이 마을 사람인지라 식당도 마을 사람들만 가는 곳으로 추천을 받았다. 인터넷 맛집이 아닌데 이런 맛난 집이 소문이 나지 않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입소문이 없어도 동네사람들이 북적 북적! 나도 소문내지는 않으리라. 지켜줘야지.


렌트 카를 빌리러 갔는데, 사무실 담벼락으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여행객에게는 슬픈일이지만 비 내린 제주를 찍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좋다.  제주의 담은 일단 돌이었다. 지형 지물을 활용한 거다.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제주인들은 자연 순응 보다는 둘이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다.

모슬포항 근처의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물론 한라산 소주로 마셨다. 식사후 바람부는 곳으로 향해 걸었다. 모슬포 항이 있었다. 바닷가에는 낙시질하는 사람들과 산책하거나 사진을 찍들 사람들이 있었다. 오른 취기가 저녁 바닷바람을 받아 환상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일행들은 자리에 없었다. 벌써 새벽 촬영을 나간 후였다. 게으른 나를 탓하며 밖으로 나갔더니 뒤 늦은 일출이 형제섬 위로 떠오른지 오래였다. 그냥 좋았다. 형제섬은 좌우로 걸어도 그 틈이 없어지지 않았다. 저 멀리 바다로 나가야 겹쳐질 듯했다. 계속 형제섬은 우리의 시선을 떠나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로 들어간 식당 문 밖으로도 그 섬은 여전히 눈에 들어왔다. 역시 형제는 용감했다.

아침 나절, 송악산으로 갔다. 거센 바람이 나의 산행을 거부하는 듯 했다. 마주선다는 느낌으로 걸었다. 저속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피사체들을 찍었다. 나쁘지 않았다. 말의 머리털이나 나무나 풀잎의 움직임도 담을 수 있었다. 파도도 담았다. 말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음찔거리며 한두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뒤 돌아서면 장난을 치듯 다시 따라왔다. 멀리서 사진을 찍으니 멋진 포즈로 응답해 주었다. 말의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말을 거였다. 뭐 이런 식의 의미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연신 사진을 찍으며 말과 친해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저녁은 제주도의 두툼한 삼겹과 갈비살로 했다. 육즙이 흘러나와 혀끝을  녹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찍고 먹고 마시고 웃으며 즐기는 이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형제섬을 바라보며 산방산 근처에서 놀다. 제주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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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은 볼거리를 찾고, 사진가는 느낌을 찾는다. 같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차원이 다르다. 관광객은 한번 간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 한번 봤다며 고개를 흔든다. 다시 말하면 도장을 찍는 수준에 머무른다. 그러나 사진찍기는 그곳에 의미를 담아낸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고자 한다.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문화이며, 역사의 흔적 속에서도 그걸 찾아내려 한다. 청대 옛거리를 걸으며 오랜 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

충돌이 일어났다. 카메라가 보려는 의지와 직접 다가가 보려는 시선의 충돌이다. 둘다 같은 호기심이 만들어낸 행위이지만, 프레임 속에 들어간 사람이 결코 이 사진의 의미를 퇴화시키지 않는다. 프레임 안에 들어간 흐린 피사체는 그림쪽으로 시선을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그랬다. 사진관에서 얼굴을 찍지 않고 화실이나 화가가 직접 찾아와서 그렸다. 이런 행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얼굴 사진이나 그림을 전부 영어로 portrait 라고 한다. 단지 얼굴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끄집어 낸다는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이나 사진은 얼굴을 보이는대로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젠 시장골목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관심을 끄는 이벤트이다. 그리는 동안 내가 어떻게 나올지를 기대하는 설렘은 디지털 이전의 필름시절에도 느꼈던 감정들과 같다. 

청대 옛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기념촬영을 했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과 강의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낯선 풍경들임에 틀림없다. 과거는 현재라는 시각에서 가치로 인정받게 되며, 과거가 상품화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자,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파는 것이다. 지금이 더 편리하고 발전되어 있지만 인간의 생각을 그 곳과 그 때를 갈망한다.

과연 기념촬영을 왜 할까? 관광지에 가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이 여기에서 누구와 왔다 갔노라 그리고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한장의 사진 속에 언어화해서 담아 내는 작업이다. 백마디 말보다 한장의 사진이다. 사진이란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이다. 청대 옛거리에서 그 시절의 질감들을 느끼며 나의 과거와 지금 이곳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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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의 청대 옛거리에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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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에 살으리 랏다> 이런 제목을 붙이면 깜박 속을지도 모른다. 청산에 살으리 랏다란 노래가사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만 통하곤 한다. 황산이든 청산이든 산은 산이 아니던가? 기암괴석이 이런 거구나란 감탄사를 연신 남발할 수 밖에 없는 황산! 케이블카를 타기 전까지 비는 부슬부슬 내리더니 정산에 올라오니 거짓말처럼 말짱! 그래도 운해가 봉오리를 감싸는 것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형상이라.  발아래  수십미터의 절벽인지라 표시낼 수도 없고 카메라의 몰입정신에 의지해 참아낼 수 밖에. 

이 사진은 황산의 감동을 한걸음 뒤에서 관망했다. 누구나 감동적인 풍광앞에 절제력을 잃곤 한다. 약간의 여유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진다. 더군다나 누구의 사진과는 다른 나만의 색깔을 넣었다는 위안도 생긴다. 구름이 춤을 추는 장면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같은 장면하나 없다란 걸 깨닫게 된다. 

비슷한 공간에서 시간차를 두고 촬영을 하였고, 포토샵 보정도 약간 있었다. 아마도 내가 바랐던 황산에 대한 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던 장면들을 두장의 사진으로 정리할까 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는 낯선 풍경일지는 모르지만 황산인지 청산인지 알 수 없으니 의미 없다. 운해에 가려 건너편의 산들의 움직임은 신비주의를 만들었다. 마치 관심받기위한 인간의 속내처럼 느껴졌다.

 난간의 쇠줄은 군데 군데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다. 짝잃은 슬픔을 간직하고서. 얼마나 많은 다짐과 약속을 해야 상대를 신뢰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 봤다. 

주. 

 

열심인 촬영자, 내가 좋아하는 컨셉의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멋진 풍광, 뷰포인트와 매직아워를 멀리하는 사진찍기를 추구하는 나에게 일상이 작품이란 일념으로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했다. 위험 천만, 다리가 후들거리는 곳에서의 산행을 마칠무렵 유독 많은 기념촬영과 독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사귀환의 감사함이랄까. 사진 속에 자신을 보며 황산의 환상을 떠올릴 것이다.

난간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수묵화를 그리는 모습에서 내가 찍었던 사진을 흐린 흑백으로도 만들도록 자극했다. 그림을 그리나 사진을 찍으나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결국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 안에는 자신이 존재하고, 자신만의 프레임만이 존재하는 사진찍기. 누구도 알 수 없는, 때로는 나도 모르는 나! 황산 여행은 이상 속에 나를 만난 좋은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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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산에 살어리랏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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