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 낭만적이다.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사진을 찍고, 그 안에 환호성까지 담는다. Save NK와 함께 <탈북 청소년, 멘토 & 멘티>의 사진여행은 정동진에서 시작된다. 바닷가엔 파도가 거세다. 검푸른 빛이 붉은 빛과 중첩되는 과정은 우주의 탄생을 은유한다. 여기저기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파도 소리와 협연을 시작한다. 탈북 학생들의 움직임이 점점 자유로워진다.

그들의 움직임은 카메라의 셔터로는 잡아낼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말없이 빛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생각이 읽혀진다. 빛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 소망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있다. 환호성을 지른다. 동해엔 처음이라며 웃음짓는 모습이 해맑다. 이렇게 정동진의 아침은 우리를 맞이한다. 모두가 하나되는 순간이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만을 기다리지 말라. 여명 속에 담긴 의미와 그 때를 즐겨라. 최고가 되기 보단 어떤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며 <지금이곳>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말한다. 사진이 찍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이 항상 우리를 가르친다. 어김없이 해는 뜬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바라봤던 밤하늘의 총총거리는 별들에게 향하던 시선이 파도소리와 여명, 그리고 태양에게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날은 밝아오고, 연인들의 기념촬영 뒷편에는 파도가 바위를 때린다. 바닷가 촬영을 마치고 아이들이 모여 앉아 기도를 드린다.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통기타의 여운은 추억을 되새기기에 충분하다. 들뜬 가슴을 추스리며 자신에게로 돌아가려는 아이들의 몸부림이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는 어젯밤 새처럼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을 게다. 함께 즐겁다.

글의 마지막은 기념촬영의 처음과 끝을 보여 준다. 플랜카드를 앞 세우고 그들이 한 일을 추억하려 한다. 진지하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난 지금 바다가 보이는 2층 카페에 있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을 정리하고 하루를 계획한다. 오죽헌을 들러 대관령 삼양목장으로 향한다.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갈 것이다. 농담을 '툭툭' 던질 것이다.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어지러운 나의 마음을 그들에게 의지할 것이다. 우리들의 웃음 소리는 강원도 하늘 아래 대지에 울려 퍼질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길 빌어본다.

save NK와 떠나는 출사여행, 나도 사진작가!  정동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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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그렇다. 특히 하루를 묶는 건 더욱 그렇다. 저녁에 만나고 아침에 헤어진다. 사진에 글을 붙이면서 흐름을 보면 매끄러울 리 없다. 하루란 아침부터 시작하여 저녁으로 마무리한다. 순서를 뒤집어서 글을 쓰면 진정성이 훼손된다. 아무튼 이 글은 어둑어둑한 저녁 즈음부터 시작된다. 일반 숙소에 가면 관리인이나 주인이 키를 주고 잘 지내라고, 잘 왔다고 말하면 끝이다.  그런 단순한 과정이 아닌 계속 연관을 가지고 묻고 답하며 대화를 나눠야 하는 곳이 있다. 오래된 흔적과 역사가 있는 곳이기에 그렇다. 그곳은 종택이다. 그 이름은 농암종택!

아기사과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와 뭘 찍느냐고 묻는다. 당신도 동우회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카메라 이름이 뭐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인다. 사진가들의 방문이 내심 반가운 게다. 매달린 아기사과의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소꼽놀이 하는 아이들 같다. 이것이 600년을 지켜온 종가집, 농암종택의 첫인상이다. 

50이 족히 넘은 어른 둘이 아이처럼 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뭔가 재미난 일이 있는가보다. 사진 속 시선은 그들에게 쏠린다. 사실 그들이 아니라 내 생각이다. 뭔가 재미난 일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혼자가 아닌 둘이다. 어린 시절, 형제끼리 무엇을 차지하려고 난리치는 과정이다. 멍석을 까는 것이다. 영화의 첫장면이다. 이렇게 과거로 들어가는 과정을 이 사진으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고택은 옛날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딱이다.  

해가 저문다. 저녁나절 사진이 작가의 감정을 담고 있다. 시선이라 말하지 않고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그때 느낌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작업이다. 사진으로의 표현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다. 같은 환경이라도 그때 그때 다르다. 첫번째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건물에 묻어난 엷은 빛이 좋. 건너편 고택의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 빛으로 추정된다. 황혼과 방안의 빛이 조화롭다. 대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빛이 외벽을 비춘다. 희미하게 보이는 질감이 정겹다.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완성한다. 두 사진은 한 곳에 집중하고 있다. 느낌이 다르다. 왜 일까?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간의 감정때문일 거다.


대청마루에서 마당을 바라본다. 안개 자욱한 풍광이 괜찮다. 바닥에 엎드려야 보이는 화면이다. 한가로이 누워서 봐야 보이는 화각이다. 여유로운 자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모처럼 그곳에서 여유자적의 호기를 누린다. 한폭의 산수화라. 뭐 수묵화?

농암종택의 아침이다. 객이나 주인이나 밖으로 나간다. 아침 인사를 하는 거다. 밤새 안녕이다.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은 태초 세상의 탄생과 다르지 않다. 신비로움을 목격하는 것이자 감사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대낮의 작렬하는 태양의 모습이 아닌 초가을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배시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아침이다. 감사한 일이다. 감사는 그걸 아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이다. 


두장의 사진은 시간차를 갖는다. 그 사이엔 특별한 이벤트, 아침식사가 있다. 종부가 차린 정성스런 밥상을 접한다. 방안에는 젊은 부부와 나이 지긋한 교수 내외가 자리를 함께 한다. 주인장의 이야기는 사람사는 흔한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인문학 강의처럼 들린다. 살아가는 지혜라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로 들린다. 세련된 조찬장이다.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시간이 두 장의 사진 사이에 끼어있다.

주인장이다.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설명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그곳을 이야기한다. 그곳에 빠져 있다. 종택의 유명인이다. 그에게서 향기가 난 것은 욱하는 마음에 저질렀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완성된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동댐 수몰과 함께 찾아온 종택이전과 이곳을 만나게 된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다. 농암종택에서 하루를 머문다는 것은 편안한 잠자리에 그치지 않고 그의 삶도 함께 맞이하는 것이다. 인간은 미완이나 의지는 완성을 향한다. 마을의 풍광보다 그의 마음이 더 괜찮다.

일행이 유명하다고 예약했고, 다른 사람이 다시 추천했는데 같은 곳이라. 고민할 여지도 없이 찾은 곳이다. 이런 수순은 뭔가 잘 되려는 예감이 있다. 예상과 현실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인생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곳은 그렇다. 정신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자부심이 함께 한다. 1박 연수를 다녀온 느낌이랄까. 지킨다는 거, 명맥을 유지한다는 건 의리를 지키는 것이며 용기있는 행동이다. 용감한 부부! 그 뒤를 이을 자는 누구인가?

600년 가문, 농암종택에서의 하룻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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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황남수 2017.09.13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빠져들어가는 현장감있는 분위기와 사진에 뭔가 압도되는 기분까지 듭니다.

하회마을로 간다. 안동의 대표 관광지이다. 입구부터 해학적인 표정을 한 탈들이 반긴다. 소낙비가 오락가락하니 우산을 빌린다. 촬영 소품이 될 줄이야. 부용대에 올라가는 절차는 목선을 타는 거다. 금방 건너지만 그 과정이 재밌다. 가는 곳곳마나 사진을 찍어 댄다. 남기기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다.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하고 있는 하회탈. 블로그엔 올리기 민망한 모양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건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체험하는 모든 것들을 담았다는 면에서 생활형 작품이라 하는게 낫겠다. 작가의 지속적 행위가 큰 모습을 만들어 낸다. 세상은 닮아 있다. 무엇의 탄생, 문화까지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는다.안동의 하회탈은 특히 그렇다.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고민이 하나 생긴다. 마을을 먼저 돌아다닐 것인가, 아니면 부용대엘 오를 것인지의 문제. 일행은 부용대에 올라 전체를 보고, 그 다음에 마을을 천천히 훑어 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부용대로 가는데 목화밭이 보인다. 어린 시절 꽃을 따먹으며 느꼈던 묘한 맛과 감정이 되살아난다. 빌린 우산이 촬영 소품에 딱이다. 여럿이 기념촬영도 하고, 배안에서 강 바라보기와 내리자마자 난사하듯 찍어대는 사람들의 행위가 <관광 상품>처럼 보인다. 

부용대에서 우산을 양손에 들고 뛰어 내리라고 농담을 던진다. 움찔 거릴 정도로 절벽이 섹시하기 그지 없다. 한눈에 하회마을이 들어온다. 안개라도 끼면 예술이라 한다. 우리는 맑은 날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하고 <지금> 속에서 얼마든지 멋진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목선과 우산, 그리고 마을 곳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은 새로운 이야기로 저장된다.

꽃이 피어 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벼가 익어가는 건너, 마을 앞에 하얀의상을 입은 사람이 하얀 꽃의 암시로 인한 듯 다가온다. 오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마을사람들의 상여 구현 이벤트에 참여할 거란다. 오후를 기대한다. 하회탈춤 공연을 보느라 상여 행진은 볼 수 없다. 방문객에게 그들만의 문화를 보여주려는 마을사람들의 의지가 보인다. <안동역에서>, <목화밭> 등 단어 중간 중간에 유행가 가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흥얼 거린다.

안동 하회마을과 부용대 가는 길에서. by 포토테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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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은 <0 & 1> 의 대비와 리듬 속에서 완성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빛의 <유와 무>에 의존한다. 일상과 다른 여행지에서 밤은 저무는 것이 아니라 깊어간다. 서서히 숙성되는 김치의 알싸한 맛처럼. 여행지의 숙소 주변 분위기는 여행의 잔상을 좌우한다. 이번 여행의 기억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이유가 뭘까?

우선 병산 서원을 숙소로 한다. 서원 대나무 밭엔 달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듯 하다. 결국 이야기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당 옆엔 마을에서 유일한  식당인 수퍼집이 있다. 그 곳의 메뉴판엔 닭도리탕이랑 안동찜닭 그리고 간고등어가 있다. 요리하는 아내와 수퍼를 지키는 남편 만이 있을 뿐이다. 닭 도리탕을 시키면 족히 한시간은 걸린단다.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동네를 찍는다. 구름사이로 달빛이 들락거린다.

어둑 어둑한 밤 사이로 드릴 소리와 나무 망치 소리가 들린다. 찾아가보니 공방에서 목공이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를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자신이 찍으면 잘 안나온다고 말한다. 그 말이 끝이다. 찍어달라고 하진 않으나 간절하다. 안으로 들어가 셔터를 누른다. 연신 곁에서 지켜보며 만족스런 표정이다. 친구하나를 사귀나하고 기대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공방을 지키는 그 목공은 사회성이 제로이다. 이 시각이후로 일행들의 즐거운 시간이다. 목공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시간을 허락한 거다.

닮도리탕이 다 됐다고 주인이 부른다. 그 이후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사진 찍는 즐거움 못지 않게 쫄깃거리는 토종 닭의 육질과 잘 익은 막걸리의 배합 속의 웃음소리 때문이다. 그 곳의 음식들은 무한 리필이다. 더 달라고 말하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인심좋은 아낙의 넉살 속에서 일행들의 밤은 깊어간다. 지금도 그때가 그립다. 이게 여행이다.

병산 서원의 저녁풍경, 밤이 깊어간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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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이름은 의성어, 마을은 의태어! 앞산이 병풍 모양이라 하여 병산이다. 병산 서원은 의태어가 맞다. 번화가는 시끄러워 산 속으로 들어온 병산 서원. 맹모산천지교라. 병산 서원은 사설 학원이다. 훌륭한 사람도 많이 배출했겠지만 병산 서원이 이름난 건 따로 있다. 건축학도의 바이블. 병산 서원은 미국 조지부시 대통령이 방문해 '원더풀'을 연발했던 곳이다. 난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바라봄. 성현의 지혜가 엿보인다. 정원을 꾸미기 보다는 바라봄을 통하여 보이는 풍광을 정원화 했다? 정원은 과일이나 곡식을 재배하지 않는다. 단지 바라보며 정서적 교감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바라보이는 곳 모두를 정원으로 삼겠다는 의미가 맞다. 성현의 지혜에서 아우라가 펼쳐진다. 나는 어디까지를 정원으로 바라볼 지를 고민 중이다. 마루에 앉은 여행자의 바라봄은 과연 어디까지를 정원으로 삼고 있을까?

흔적. 곰삯은 나무의 질감에서 그 사람들의 음성과 움직임이 느껴진다. <하늘 천 따 지...>를 읖조리던 서당 학생들의 인내와 미래를 향한 열정이 숨쉰다. 기둥의 당당함, 바닥의 무게까지도 병산을 바라보던 수 많은 사람들을 느끼게 해준다. 바람이 다니기도 하고, 계절마다 다르게 보여주는 자연 병풍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대문이나 창문은 바라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발길이나 눈길이 드나드는 것만이 아닌 그곳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마음을 정돈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하나임을 가르치고 있다. 바라보노라면 보이지 않았던 <수많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혹. 초가을 연못의 채색은 배롱나무 꽃잎의 몫이다. 꽃놀이의 유혹은 뜰 안 연못으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해야 했던 그 청춘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진이다. 화려함이 가볍지 않고 잔잔하게 다가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한던 그때가 그려진다. 

향수(추억). 백열등이 소나무를 붉게 물들인다. 구부러진 길로 들어가는 초입엔 <하회마을 가는길>이란 이정표가 붙어 있다. 길은 걸어서 가야 운치 있다. 그냥 막 걸어서 마을까지 가고픈  충동이 인다. 초저녁부터 문안인사를 나온 반달만이 어색하게 역사의 현장에 선 나를 배려한다. 병산 서원의 모두는 예술이 아니면 버틸 수 없을 지경이다. 향수 옆에 괄호치고 추억을 넣는다. 이유는 이렇다. 소나무나 구부러진 길은 학생들에겐 고향을 향한 향수이지만 지금 나에겐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소재인 것이다. 향수가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된다. 그 학생들도 그랬을 것이다. 내 옆에 늙은 학생이 뒷짐지고 <소나무와 구부러진 길>을바라보고 있다.

병산 서원은 <바라봄, 흔적, 유혹. 향수> 4단어로 정리한다. 이 단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병산 서원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나는 사유함으로 병산 서원을 재건하고 있다. <흔적은 바라봄을 통해 추억(향수)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4단어를 한 문장으로 묶으니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지만 제목까지 다시 정하지 않고 다시 찾아가 그 의미를 되새길 것을 기약해 본다.

바라봄으로 병산서원에서 흔적을 찾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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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정석. 그 곳으로 향하며 <그 곳>을 상상하는 것은 여행의 맛이다. 그 <그 곳>은 항상 내맘대로다. 겨울에도 여름을 그릴 수 있고, 아침에도 저녁 나절을 떠올릴 수도 있다. 상상은 지맘대로니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다. 여행은 <그 곳> 못지 않게 가기전과 돌아오는 그 순간도 매력적이다. 난 지금 안동역 도착 1시간 전 이곳에서 안동의 고택, 하회마을을 비롯한 그곳의 먹거리와 밤을 떠올리며 중이다. 

예전에 가족여행으로 갔던 안동. 그땐 아날로그, 블로그도 없었다. 책장 어딘가에 먼지 낀 채로 앨범 속에 잠자고 있을 거다. 역마다 흘러나오는 방송이 정겹다. "우리역은 잠시후 풍기역입니다. 쌸라 샬라 ... 띵큐!" 영어는 마지막 땡큐라는 소리만 들린다. 우리역이라는 그 <우리>라는 말이 정겹다. 잠시후 의자 두칸을 여유롭게 쓰던 할머니가 내린다. 풍기댁이다. 한산한 기차를 타면서 돈버는 방법은 의자를 마주보기로 돌려놓고 혼자 다리 뻗고 가면 돈을 1/4 가격으로 기차를 탄거다.

노느니 뭐하나? 돈이나 벌자. 바로 실행한다. 두자리를 마주보게 한 후 혼자 앉아서 컴놀이를 한다. "돈 벌기 참 쉽죠잉?" 여행 중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바로 실행하는 재미도 여행의 맛을 배가 시키는 지혜이다. 다음역이 안동이라고 '우리' 열차는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젠 내린다. 안동에서 찍은 사진이 십수년 후엔 가보가 될라나....

안동행 기차안에서 <안동 그리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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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몽골 여행은 <유목민 따라하기> 이다. 숙소는 자주 옮기고, 많이 걷는 거다. 때로는 말 등 다양한 이동 수단을 체험한다. 이게 몽골 여행의 계획이다. 아침일찍 일어나 주변을 돌아다니든, 밤이면 별을 바라보고, 황홀한 풍광 속에서 사람을 집어 넣고 기념촬영을 한다. 몽골은 한밤중 뿐만 아니라 해가 뒷산을 넘어 오지 않는 상태에서의 질감이 또한 괜찮다. 

세번쨋 날에는 오지같은 곳으로 향한다. 강도 건너고 차를 꽤 오래 타고 가서 하루를 보낸다. 가슴아픈 이벤트도 경험하지만 우리의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진 못한다. 물을 찾아온 말과 소들의 움직임, <말 달리다>를 떠올리는 대초원에서의 말타기, 풍광을 스치듯 오토바이를 타고 꼬부랑길을 따라 달린다. 차가 강을 건너다 빠진다. 우리의 옛 풍경들 이지만  놀러온 젊은이들이 모여 차를 빼내준다. 정겹게 보이고 마음까지 훈훈해 진다. 인간은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은 본능인 게 틀림없다. 이제 돌아와 몽골을 가슴에 묻는다.

몽골을 누비며 풍광과 그 속의 사람들을 찍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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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 몽골 도착 이튼날이 나담축제 마지막 날이다. 나담이란 의미가 <남자들의 3가지 경기>란 의미이다. 활쏘기, 말타기, 그리고 몽골 씨름! 그 중 <말타기 경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분위기는 술렁임이다. 멀리서 차에 말을 실고 달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가족이나 부족사람들이 함께 와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의 말을 타는 능숙한 모습이 역시 몽골이란 생각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순수 자체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리기에 딱이다. 아, 몽골리안!

마지막 사진은 이 경기의 클라이막스이다. 1등이 가려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한두장만 보여 준다. 나담 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축제 자체를 즐기는 것이지 경기는 그 다음에 따라오는 추가요소이다. 참여하는 선수를 독려하는 가족이나 부족사람들, 경기를 기다리는 말과 어린 선수의 긴장된 표정, 말 위에 앉아 고개를 치켜들고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들, 무료함을 달래주는 다양한 놀이들 ,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의 흥겨운 대화 등 경기장 밖 이야기들이 프레임 속에서 수다스럽다. 건조한 날씨 탓인지 말이나 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이동 경로를 보여 준다. 드넓은 초원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낯선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즐거움을 사각의 프레임 속에 모두를 담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몽골 나담축제 현장을 찍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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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가고 싶었다.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유목민(nomad)의 삶을 상상하고 싶었다. 난 언제부턴가 가방 하나 들러메고 유목민적 삶을 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유비쿼터스적 삶일지도 모른다. 가방 속엔 카메라, 노트북, 핸드폰, 때로는 미니 프린트가 담긴다. 이거면 현장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  촬영, 강연, 상담,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도 가방 하나로 충분하다. 과학의 발달은 현대인들에게 그런 삶을 강요하고 있다. 난 이런 삶이 좋다.

첫날 묶었던 곳이다. 몽골은 한반도의 일곱배, 인구는 300만 남짓.서울과는 정반대였다.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기 위해 새벽 2시에 일어났다. 늦게 저물고 이른 아침에 날이 밝아 왔다. 잠 잘 겨를도 없이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그 어둠 속에 말들을 표현하기 위해 약간의 노출 부족이 필요했다. 밤 하늘엔 불청객이 나타났다. 보름달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밝음 속에서 별을 나타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촬영 당시 나름 실망했다. 그러나 촬영 후 컴에서 확대해 보니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이 화려했다. 매력적이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다시 새벽 5시, 잠시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문밖에는 아침이 밝아왔다. 늦게 까지 풀을 뜯어 먹었던 말들은 주인을 따라 산등성이로 향하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게르 건너편으로 붉게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울타리가 눈에 자주 띄었다. 영역의 경계가 아니라 동물들을 관리하는 것이라 했다. 앞산 뒷산을 구분 짓는 톤의 그라데이션이 풍광을 더웃 멋스럽게 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온 건장한 몽골 남성이 선뜻 촬영에 응해줬다. 양, 소, 말 할 거 없이 풀밭에서 언제든지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한가로이 노니는 양떼의 모습에서 몽골의 대자연의 여유가 느껴졌다. 첫날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몽골의 첫날, 밤하늘의 별과 아침의 여운!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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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 이일 출사! 낭만 보단 실용적으로 시간을 활용하기 위한 제안이었다. 바쁜 이들에겐 딱이다. 서울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새벽 3시 30경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국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다음 목적지인 오륙도 부근으로 향했다. 그리고 트레킹을 할 계획이었다.  꼭 계획대로 될 필요는 없다.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갑자기 당황스런 일이  발생하곤 한다. 당황 보다는 좋은 이벤트로 받아들인다. 이번 부산 여행도 그랬다.

자화상을 찍었다. 유리창에 비친 희미한 모습이 나를 상상하게 한다. 거사를 치르고 난 뒤 가능한 일이다.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희열하는 나는 과연 누군지 되뇌어 본다. 기억처럼 흐린 모습에는 다양한 나를 상상한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마다..." 로 시작되는 가사가 나의 몸과 마음을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곳으로 떠오를 태양과 직전의 상황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오메가를 비롯한 멋진 일출에 목숨을 걸지만 난 그보다 일출전의 색깔과 질감을 즐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날이 밝기전의 푸르스름한 느낌에 열광 했던 것이다. 인공과 자연의 빛, 새벽에 피는 꽃, 작은 것으로부터 스토리 텔링하기 등 다양한 스타일로 사진을 찍었다. 오륙도,  다섯개인지 여섯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일출을 뒤로하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걷는 내내 파도소리가 들렸고, 바다가 나를 따라 오듯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멀리는 해운대가 보였고, 중간엔 넓은 바위 마당도 있었다. 그 마당에서 파도와 놀기도 하고 뒤로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기암절벽이 셔터 수를 늘려 주었다. 이정표엔 LA랑 이국만리까지도 거리가 나타나 있었고 너와 나의 거리는 zero라고 했다. 사랑하는 이를 말하는 듯했다. 재미난 생각이었다. 살짝 웃음을 주는 이정표였다.

  

이번 출사의 빅이벤트는 갑작스럽게 생겼다. 구간 중간에 공사중이어서 좁은 산길로 돌아와야 했다. 풀은 무성 했고 길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는 오솔길이었다. 옆으론 짜릿할 정도의 낮은 절벽이 있었고, 긴장감이 자극적 이었다. 두번의 기념촬영이 있었으나 둘은 완전히 달랐다. 일출 후의 여유로운 상황과 또 하나는 긴박감이 묻어있는 것이었다.

감천 마을엘 갔다. 예전과는 달랐다. 커피숍도 늘어났고, 학생복과 한복 컨셉의 의상도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팔뚝에 선도부와 전교회장이란 띠를 두른 교복을 입고 있는가하면 한복 입은 모습들이 예뻤다. 흥겨운 표정들 이었다. 카페는 전망을 팔고 있었다. 들어가 두리번거리자 일단 주문하고 찍으라고 했다. 주인은 자기네 샵이 뷰가 제일이라면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 한잔 마시며 옥상으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부산은 새벽으로부터 시작하여 대낮의 느낌까지 찍으며 내 기억 속에 저장되고 있었다.

부산 출사, 오륙도 & 이기대 트레킹과 감천마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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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강 2017.05.17 2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보며 ,같이 사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는 많은 것이 다름을 느끼며 , 역시 교수님은 다르구나,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 하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덕분에 무박 2일의 부산 여행은 좋은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