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진화하고 있다. 가공을 시작하고 있다. 인류의 도구 사용과 같은 느낌으로 <가공>을 바라본다. 자신의 상품에 직접 이름을 붙이고 소비자와 직거래. 농촌출신 나의 어린 시절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상품 디자인이나 세련된 이미지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서 소비자와 직거래 하는 것도 진화된 농촌과 농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먹거리에 대한 needs에 의해 생긴 일들이다. 

부부 또는 모녀를 찍은 사진이다. 가화만사성이라. 사회의 기본은 가족이다. 가족이 온전해야 세상이 괜찮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상황을 접하면서 그가 반응하는 모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농사일은 가족일지라도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정들은 인내와 배려의 일상이 묻어난다.

<내가 만난 사람들!> 이런 제목으로 한 장으로 묶었다. 강의가 한시간 더 늘어나면서 농산물 촬영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특히 이 과정만큼은 노련한 내 모습보다는 당황하거나 쉽지 않게 촬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찍는 방법이든 컨셉잡기든 다양한 과정을 보게 된다. 어김없이 프린트된 사진을 들고 기념촬영을 한다. 마지막 사진이며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이다. 특히 나에겐 그렇다. 단체사진이 있어야 그날 강의의 맺음을 한 듯 개운하다. 이렇게 <농부자존감>이란 강의는 그들에게 또 다른 숙제를 남견둔다.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농부 자존감> 강의를 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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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존재의미에 대해. 등은 자신을 드러낸다. 기다림 속의 만남이다. 소통 의지이다. 등은 자기주도적이다. 노출본능을 가지고 있다. Hoi An(호이안)의 밤을 수놓은 화려한 등을 보여주려 한다. 상점을 치장한 등, 강물에 떠 있는 등, 가로등처럼 길을 가로질러 매달린 등 등 다양한 등들이 호이안의 밤을 밝힌다.


다양한 색이 조화를 이룬다. 어딜가나 그 곳의 색이 행인을 유혹한다. 빛은 노출보다 외침이다. '나, 여기 있어요!' 라 외치는 것이다. 단지 여기 있음이다. 존재함이다. 여기 있되 그 판단은 상대에게 기회를 준다. 권유이자 배려이다. 상점 앞 등은 호객행위가 아니다. 말걸기이다. 등대나 가로등 또한 '내가 여기 있으니'로 말을 맺는다. 호이안의 밤은 화려하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모두가 웃음짓는 밤이다. 세상을 가르치는 지혜가 있는 곳, 낮과 밤은 다르지만 찾아가면 행복을 주는 곳, 그곳이 바로 호이안(Hoi An)이다. 베트남 다낭에서 차를 타고 사오십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곳, 모두에게 빛이 되는 곳, 호이안(Hoi An)!  다시오마, Good by!

호이안(Hoi An)의 등불 아래서 그 밤을 즐기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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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서 한강? 동명이강라고 해야하나. 서울의 한강과 같은 이름, 'Han river'란다. <한강을 바라보며>란 제목과 무관하게 한강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이 보이는 숙소라서 붙인 제목이다. 딱 하룻밤을 잔 곳이지만, 다음날 아침 주변을 어슬렁거린 흔적을 보여준다. 유난히 오토바이가 거리를 매운 다낭의 풍광이 여행온 걸 느끼게 한다. 꽃을 파는 시장을 지나자 핑크빛 성당(핑크성당)이 아침을 제안한다. 여행이란 사람이나 대상이나 서로 낯선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평온하다. '어슬렁' 거리를 걷는다. 어슬렁이란 단어 속엔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겠다는 다짐도 담긴다. 사람들의 몸짓이 여유롭다. 내 시선에는 게으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 상점 경비원의 무료함, 자전거위에 몸을 얹고 아침신문을 보는 남자, 꽃시장에 따라나온 아이의 꽃을 든 모습, 성당에서 기도하는 여인의 진지함, 차분한 화분의 꽃과 성당 안의 풍광, 사진찍을 채비를 마친 여성과 골목, 그리고 엄마 품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는 낯설거나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시선이 전부다. 이 모두에게 <바라봄으로의 응답>이라도 하듯 샷을 누른다. 

부지런하면 여행이 두 배가 된다. 이른 아침에 둘러본 곳을 일행과 함께 다시 돌아본다. 아내와 함께 취한 포즈가 이번 여행 최고의 컷이다. 건너편 핑크성당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는 신심을 더욱 굳게 하려는 의지도 담겨있다. 찰나를 찍은 동료의 손놀림은 오토바이며 붉은 차량들로 채워 넣어 사진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한다. 내게 여행은 다시 못올 것처럼 모두를 아쉬움으로 대한다. 기억은 추억이 되어 가슴을 후비는 이야기로 남는다.

베트남 다낭 1일차, 한강을 바라보며.(핑크성당주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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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캠프>에 참여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기 보단 자녀와 함께 떠나는 아버지와의 시간이었다. <부자회>, 가톨릭 최초로 청담성당에서 구성된 아주 좋은 모임이다. 가톨릭 캠프장이 있는 양주로 아들과 함께 차를 몰았다. 준비하는 분들은 이미 도착해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들은 텐트를 치고 나는 베짱이처럼 <숲속 사진관>을 차렸다. 사람들은 의아스러워하며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스케치 사진과 아들의 사진으로 먼저 숲속 전시회를 열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나는 좋다. 

아들은 말했다. 모처럼의 이런 분위기가 좋은 거 같다고. 예전에 가족과 떠났던 그 기억이 살아났던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시절이후, 내가 가족들과의 이런 여행에 무심했던 것이다.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이 텐트를 치며 즐거워하니 나도 즐거웠다.

<숲속 사진관>은 사진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나의 체험철학의 실행편이다. 스킨쉽을 사진 찍는 과정에서 체험하고, 그 기억을 오래 남기려는 수순이다. 자녀와 아버지가 모처럼의 관계를 갖는다. 새로운 감정을 서로는 느낀다.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감정이 살아난다. 사진을 보며 어색하다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이 어색했던 감정을 떠올리 것이다. 그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숲속 사진관>을 개설하여 함께 했다. 그들이 그 순간의 감정을 오래 기억하기 바란다. 함께 먹으며 웃음짓던 그 소리가 귓가에 멤도는 걸 사진을 볼때마다 생생하게 재생되는 작업, <숲속 사진관>이다.

돌아오기전 기념촬영을 했다. 기록이 그들의 기억 속에 저장되는 수순을 밟는다. 아버지가 힘을 써야 자녀가 힘이 난다. 먼저 실천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자녀가 따른다. 나는 낯선 아버지의 모습으로 참여하여 점점 익숙해지는 모습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세상은 항상 말보다 실행하는 자들의 몫이다.

부자캠프, 사진 한장이면 끝! <숲속 사진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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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던 델 또 간다고? 뭔가 끌림이 있는 게지. 같은 곳이지만 같은 곳이 아니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둘은 따로가 아니라 항상 붙어 다닌다. 전철로 지평역으로, 역에서 마을로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폐허가 된 건물에도 눈길을 준다. 오래된 흔적들이 손짓이라도 하듯, 시선은 그곳을 향한다. 부슬비가 내린다. 순대국에 지평막걸리를 마시는데 좀처럼 비가 그치지 않는다. 비 그칠때까지 마시는 걸로. 계속 억수같이 내린다.. 한사발 두사발, 식탁위에 막걸리병이 쌓인다. 술이 익어가듯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참 좋다. 

지평에서 용문으로 향한다. 용문성당 앞에 핀 꽃과 성당안의 분위기에 취해 우산도 없이 셔터를 누른다. 개가 짖으며 꼬리를 친다. 무슨 조화인가. 오래된 집에 기와를 얹으며 옛것을 추구하는 모습도 담는다. 빗물을 흠뻑 머금은 화초들이 미소 짓는다. 비오는 날엔 빨강 우산이 잘 어울린다. 양평은 내가 군생활 한 곳이다. 제 2의 고향이다. FM2를 둘러메고 다녔던 20대 초반의 젊은 사진병이 떠오른다. 길을 걸으며 행군하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양평, 지평에서 용문까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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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 뒤에 <두란노 어머니 학교>, <주님! 제가 어머니입니다.>란 글이 눈에 띈다. 이 글을 읽기 전과 후로 이미지의 인식이 확 달라진다. 계모임정도로 생각되던 사진에게서 갑자기 아우라가 피어오른다. 또한 이런 글이 이어진다. 여자와 어머니!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숭고,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며,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어머니들의 프로필 사진찍기는 여느 촬영과는 절차가 다르다. '찰칵'소리는 '아름답다'란 감탄사로 각색된다.  

맑다. 웃는 모습이 참 좋다. 긍정의 의지로 무장된 얼굴엔 누구도 저지할 수 없는 기운이 담긴다. <어머니>라는 의미, <주님!>이란 경건함이 모두를 긍정으로 몰아간다. 어머니란 단어는 기대하게 하고, 그렇게 바라보게 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모성을 근거로 자식을 위한  무모함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제가 어머니..>라고 언급함과 동시에 경건해지고 단단하게 무장한다. 그 말의 씨는 싹을 돋아나  큰나무가 된다. 어머니, 어머니, 두란노 어머니학교의 어머니여!

두란노 어머니학교라 말하자, 아름다운 어머니로 보이더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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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내려다 보면 점이다. 뭐가? 지구가...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대지가 점이면 인간은 뭔가? 반문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은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오산이다. 한사람이 가진 수 많은 사연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마추어의 제안이라고 정리하고 글을 이어간다. <농부자존감>이란 강의를 시작으로 전국투어라도 할 요량으로 즐거운 여행같은 나날이다. 나는 농부가 좋다. 그들이 흘리는 땀에 매료된 건지도 모른다. 자연과 호흡하며 얻어내는 결실이 그들의 모습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최선으로 살아가며 기다린다. 그들은 그렇다.

이 사진이 눈에 밟힌다. 정겨움? 연출이 아닌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 사진이다. 둘의 관계가 사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그려내 음율을 지어내는 듯하다. 말린 고추가 소쿠리에 담겨있는 순간이란 1년의 흔적이다. 이 사진은 고추가 아니라 관계가 보인다. 애교부인과 기쁜남편이라는 끈끈한 관계말이다. 보기 좋다.

안나온 사람이 서운해 할 수 있다. 디퍼런트를 좋아하는 나의 시선에 걸려든 사진들이다. 첫번째 사진은 시종일관 조명보조를 했던 분이다. 모자란 실력탓에 생동하는 눈빛을 다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표정, 몸짓, 의상, 소품 등 다양한 것들이 사진작업하는 과정에서 골라졌다. 아무튼 단체사진과 삼삼오오 찍은 사진에 안 걸려든 사람은 없으니 미안한 마음은 덜하다.

팀이 있다고 했다. 뭐하는 팀이냐고 묻지 않았다. 팀을 말하자 부부가 함께 온다. 진정한 팀이다. 부부는 뼛속까지 완벽한 팀이란 생각에 살짝 웃음을 지었다. 팀은 자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하며 함께 하는 이들이다. 농작물을 들고와 서 있는 모습이 순수한 아이같다. 영양 농부들의 사진은 칼라풀하다. 이유를 따져보니 고추때문이다. 또한 녹색 이파리가 그렇다. 맑은 자연에서 자란 애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더라. 

기념촬영으로 끝내는 나의 스타일이 잠시 구겨졌다. 변명이라도 하듯, 이유를 만들어 더 찍겠다고 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어찌 미워하랴. 사진을 좋아하는 건 나를 좋아하는 것이기에 눈 딱감고 찍는다. 부부농부들이 사진을 찍자, 사과농사를 짓는 팀이라면 또 찍겠다고 한다. 아무튼 자신의 결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긴다>는 의미는 크다. 영양의 깨끗한 자연만큼이나 농부들에게도 에너지가 넘쳤다. 그 느낌을 받고 온 하루였다. 농부가 있어 대한민국은 행복하다.

농부자존감, 칼라풀 영양 농부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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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인기 2018.04.09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나 하고자하는일이 있을터인데..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아요. 그런데 한번 해보고 싶다는 도전을 주는 글이네요.
    교수님.. 멋져요!

말하지 않아도 안다. 시키지 않아도 한다. 인간의 촉이란 강력한 더듬이이다. 사진을 찍는다. 초딩동창생들 사진이다. 한명씩도 찍고, 여럿이도 찍는다. 혼자와 여럿은 다르다. 함께 찍으니 그들의 몸은 그 시절을 기억한다. 상황이 그 시절로 돌아간다. 몸짓이나 표정에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딱이다. 어떤 공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출시킨거 맞다. 자리배치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잘 어우러져있다. 연기로는 완성될 수 없는 상황이다. 예행 연습을 한 것도 아니요, 그 자리에 그냥 모아놨을 뿐이다. 프레임이 달라진 것이다. 사진의 사각 프레임이 아니라 시간 프레임이 작동한 것이다. 그 시간 프레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혼자는 다르다. 혼자는 제 나이로 돌아간다. 중년남성! 폼생폼사, 자신만의 포즈를 취하며 무너지지 않는 완벽한 남자이고 싶다. 허리춤에 손을 댄 모습은 남성의 가장 기본적인 포즈이다. 남성이길 원하고 누군가가 바라보길 기대한다. 이 중년남성들이 사진을 보자 짠 듯 이구동성으로 던지 말이 있다. "액자로, 크게..." 왜일까? 자신의 지금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기록하는 것이자 세상에 선 보이려는 것이다. 사진은 그를 재가공하여 자신과 세상에 내놓는다. 이 사진은 10년후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초딩 칭구들, 함께 한 사진에서 그 시절이 보인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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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참 빠르네. 눈 깜빡할 사이야." 남의 집 아이 커가는 거나,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하는 말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날밤과 새벽은 눈 깜빡할  사이 보다도 짧다. 그 <깜빡>이란 찰나는 새로운 하루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새벽은 신비롭다. 서서히 밝아오면서 보여주는 현란한 빛은 인간의 눈을 매혹시킨다. 여행지에서 새벽을 보려거든 시장으로 가보라. 어둠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시장사람들이 새벽을 연다.

차량의 라이트가 만들어내는 스폿 라이트와 전광판에서 새어 나오는 부드러운 색깔들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때로는 긴 그림자를, 때로는 엷은 빛깔로 은은하게 길거리를 비춘다. 마지막 사진에는 안개 속의 아침을 보여주고 있다. 바쁜 발걸음과 차량들의 움직임이 사진에는 흔들림으로 보인다. 아침을 만드는 아낙의 손길이 바쁘다. 골목을 향해서 셔터를 누르는 이가 그곳으로 빠져들어가는 듯 보인다. 반쪽 가로등은 왜일까 의문을 던진다. 아침은 다양함으로 찍을 거리를 제공한다. 여기저기 카메라 방향을 바꾸며 흥얼거린다. 새벽은 사진가에게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아침이 참 좋다. 

중국 청도의 새벽 풍경, 새벽이 주는 선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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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드론을 날린다. 바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봄바람이다. 파도가 밀려올때 덩달아 불어온다. 반복해서 어김없이 찾아오건만 파도소리나 모양, 느낌도 매번 다르다. 새들이 바라봤던 풍광이다. 새들의 날개짓은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다. 흐름에 봄을 맡기고 그 리듬을 목적지로 향한다.   

청도 54광장에서 석양을 맞는다. 동료들과 기념촬영도 하고 파도소리도 듣는다. 드론을 날렸던 바닷가엔 '모래반 돌반'이라. 봄바람이 살랑 거리며 마음을 스친다. 바다로 향하는 일행, 물방울을 파는 아낙, 연을 달리는 장사꾼, 다리 위에 데생, 막무가내로 쳐대는 파도들, 주인을 따라 나온 견공의 어리둥절, 뿌연 시야는 분위기로 치고, 뭐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 여행은 무르익어간다. 같은 곳을 찍어도 서로 다른 프레임들. 자기를 표현한 사진은 있어도 잘 잘못을 따질 수 있는 사진은 없다. 여행을 생각 속에 담기보단 마음 속에 담으려 셔터를 누른다. 청도는 서해에서 한참을 수영하면 도착한다. 노를 젖거나 헤엄을 치거나... 그곳은 항상 우리를 기다린다. 

중국 청도로 봄마중을 떠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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