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비교대상에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소리와 이미지는 다르지 않다. 사진강의시간에 자주 쓰던 '익숙함'을 소리에도 대입시켜본다. 특히 내 목소리는 내게 들리는 것과 다르다. 나의 시선이 다분히 주관적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미지 전문가인 내게 소리는 사유의 대상이다. 그래서 <소리혁명>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접하고 한동안 숙성기간을 거치고 글을 쓴다. <소리혁명>이란 책은 소리만 논한 게 아니다. 알아두면 괜찮은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소리의 원론과 역사 뿐만 아니라 소리의 역할 등 다양한 것들을 논하고 있다. 전문가도 읽어볼 책이다. 소리의 비전을 제시한다. 영화관에서 입체음향이라고 생각했던 기존 시스템을 넘어 새로운 음향세계를 말한다. 책 이전에 현장에서 소리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이 사진은 <소리혁명>의 출간전 사진가들의 수업현장이다. 그 소리를 직접 들려주면서 <이미지와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후  책이 나왔다. 세상은 정보의 홍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안과 시도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입체음향은 사진의 시선끌기를 닮았다. 인간은 보고싶은대로 본다. 또한 듣고 싶은대로 듣게 된다. 사진의 작가의도처럼 소닉티어 소리는 들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잠들었던 청각을 깨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력자원이 세계로 향하는 제안, 좋다. 시도하는 거다. 

소닉티어 곽병운 본부장은 말한다. 이제 시작이라고, 소리가 가진 가능성을 문화란 공감을 통해 세상에 보여줄 것이라고. 현장에서 <그 소리:소닉티어>를 들어 본 나는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쉽게 와 닿았다. 책 리뷰 대부분도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리뷰들은 직접적으로 소리를 논했다면 나는 이미지와 소리를 통하여 지면 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닉티어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꿔줄 거대한 꿈을 꿔본다. 잘 될 거다. 

<소리혁명>, 소닉티어가 만드는 혁명.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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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무한다. 작가가 책을 내면 거기에 일언반구는 있어야 할 게 아냐? 참말로. 책을 사보고 후기를 남기는 배려가 있어야지. 그러니깐 내가 이러잖아. 뭐냐고? 내가 내 책을 리뷰할려고. 뭐 잘 못됐어. 내가 그 전부터 경고 했잖아. 나도 내책을 리뷰한다는 게 어색하지만. 또한 이 글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본다고. 자, 시작하자! 놀면 뭐하나.

백승휴 작가는 괜찮은 사람이다. 거금을 들여 여행을 다녀와 자비출판을 하다니. 안 가본 사람에게는 희소식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제목은 아내가 귀뜸해줬다고. 사람 괜찮다. 보통 가족들의 말을 잘 안듣는데 가정적이야. 안가본 사람이 더 잘아는 법이지. 몽골의 밤하늘에 별이 많다는 걸 그녀가 어디서 들은거야. 아내도 지혜로운 사람이야. 이렇게 북치고 장구치면서 ...

그의 책은 배려의 온상이다. 요즘 사람들은 글 잘 안읽거든. 사진이 대세지. 시대의 흐름이야. 그걸 작가가 안거지. 참 사람 머리도 좋아. 사진은 세로로 찍어서 가로 사진에서 보여주지 못한 내용은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썰'로 대신하고 있지. 아마 작가는 잔머리가 발달한 모양이야. 머리는 많이 빠졌던데 그래서 그런가. 아무튼 인신공격하지 말자. 종이책은 안 팔리면 창고에 보관하기도 힘든데 세상에 대한 작가의 배려지. 

그는 아이같다. 시인같다. 순수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아이처럼 조잘거린다. 때로는 철학적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를 갖는다는 건 쉽지 않다. 역시 그는 뛰어나! 수려한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어. 의도적으로 2% 부족한 사진을 찍어 놓고 글을 추가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세련미. 음, 좋아! 사진의 외형에 보이는 것으로 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읽어가는 재미가 있어. 빠져들어. 빽작가의 ebook은 읽으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더라구. 내용이 실해. 말빨도 살아나고 브레인 스토밍도 가능하지. 그리고 그의 스토리텔링은 감탄할 정도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몰라. 글 속에서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도 알 거 같더라고. 아무튼 그의 ebook은 한두권을 읽어선 안돼. 전부 구매해서 읽어야지. 그 정도는 읽어야, 그의 책을 읽어봤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없어. 그의 자유로운 생각이 상상 속의 여행을 떠나도록 해주지.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빨리 책 사봐! 특히 <몽골의 별 별 이야기>부터. 이 책을 읽으면 몽골에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지지. 

ebook,  몽골의 별 별 이야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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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경희 2017.11.21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싶은 좋은 책이네요

자뻑 이라고 말해야하나? 음, 그냥 그리워하는 거지. 나의 블로그 섹션란 <장소를 만나다>로 옮겨야하는 유혹도 있지만 그냥 이곳에 냅두려한다. 언젠가 나에게 바람이 분 ebook, 사진을 찍고 짤막한 글을 붙이는 아주 재미난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필 받으면 이른 아침 3-4시간이면 책 한권이 뚝딱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인세가 꽤 나오겠다고. 난 그냥 웃는다. 어제 콩을 심고 수확하는 거다. 승질하고는... 몇평 텃밭에 농작물을 심어놓고 수확에 대한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거다. 아직은 텃밭에서 콩밭을 맨다. 이건 순수한 농부에게 돈이야기를 하며 초심을 건드리는 거다.  그러나 난 만석꾼을 꿈꾼다. 지금은 10여권의 ebook이지만 머지 않아 몇백권의 만석꾼이 되는 꿈 말이다.


Ebook은 참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놀러가 찍은 사진에다 내 생각을 쓴다. 많이 쓴다. 그러면 책이 된다. 참말로 쉬운 작업이다. 에필로그로 책의 마무리를 짓는다. 때로는 여행의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내맘대로 하는 거다. 난 작은 꿈이 하나 생겼다. 느끼는 대로 행하는 거다. 떠오르면 내 안의 제안으로 알고 실행하는 거다. 뭐 대단한 것들은 아니지만 일상의 재미가 쏠쏠하다. 삶이 훨씬 참신해진 느낌이다. 내 삶의 활력이다. 난 글을 잘 쓰진 못한다. 사진도 최상급은 아니다. 그런데 사진에 글을 붙이면 괜찮다고들 한다. 자뻑이 아니다. 나의 경쟁력이랄까. 최고가 100이라면 난 각각 80 정도이다. 둘이 합하면 160이지만 난 겸손하니 100을 조금 넘는거라고 치자. 그럼 만점 아닌가. 대단한 거다. 이런 자뻑은 나의 일상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 않던가.

나에게 글쓰기는, 특히 블로깅하는 것은 <생각 만나기>이다. 글을 쓰다보면 괜찮은 생각들이 쏟아진다. 희열이다. 그게 행복이지. 행복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며, 나에게 행복은 글쓰는 순간 순간 다가온다. <뚝방의 추억>이란 곳은 대충 10번은 갔을 거다. 좋아서 가고 가야해서 가고 막 갔다. 갈때마다 다른 느낌이 사람을 홀린다. <뚝방의 추억>은 팬션이다. 그 옆에 긴 뚝방이 있고, 작은 섬 뒤엔 썰물이 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귀신에 홀리는 것처럼 시시각각 느낌이 다르다. 팬션의 시설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적이다. 그 곳에서 나는 많은 즐거움을 느꼈다고 자백한다. 나의 ebook을 떠올리며 그곳의 기억을 추억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이기적 발상, 난 좋다.

자뻑 리뷰, <뚝방의 추억>을 추억하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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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란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거? 그럼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옷장 속의 안입는 옷들, 쇼윈도우안의 있는 듯한 차량, 장기여행을 몇년째 기다리는 큰 가방들이 나에게 소속되어 짐이 되고 있다. 소유의 흥분보다는 버거움은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특히 나에게는 그렇다. 희소식이면서 실천에 대한 의무감을 주는 책이다. 


맥도널드라는 회사는 햄버거를 판다기보다는 점포를 파는 곳이고, 나이키는 디자인과 개념만으로 운영하는 회사이다. 기존의 생산과 판매라는 외형적 부피감을 떠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애플은 스티브잡스의 전후를 막론하고, 체험 후 껌딱지처럼 떼어내기 힘든 메이커이다. 몸을 가볍게 하여 날듯이 장소와 시간을 넘어 선 회사들이다.  

독서는 실행력이 따르지 않으면 앙꼬없는 찐빵이다. <소유의 종말>이란 책은 나에게  '나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희망은?' 이란 물음을 던졌다. 진정한 자유를 향한 몸부림은 다양한 시도로 이어졌고,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라는 놀이! 기념촬영을 찍을때 카메라를 향하는 진부한 형태를 깨는 시도를 했다. 2초의 셀프타임, 시간과 대결을 벌이는 놀이를 시작했다. 바로 이 장면이다. 2초 후 찍히는 사진을 위해 사람들은 시간놀이를 하고 있는 방면이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생성된다. 여럿이 함께, 서로 다른 모습에서의 조화를 말해주고 있다. 모두 똑같은 포즈와 완벽함을 만들어냈다면 그 단조로움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뇌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기억까지 맵핑하여 파는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이 정도의 발전 속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이란 공간이동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생각만으로도 여행은 시작된다. 사진이라는 컨텐츠를 활용하여 시간과 공간이라는 영역을 하나로 묶어 그 영역을 넘어서는 시도를 하고 있다. 결국 모든 행위는 기억으로 맵핑되기에 그렇다. 기억과 감정, 그리고 사유들...

사진에 적힌 글처럼, 체험이나 관계를 파는 행위를 사진이라는 컨텐츠로 가능하다. 판다는 것은 개념이지 단순한 돈의 문제는 아니다. 아마추어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관객이 경청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은 신선한 일이다. 사진가가 예술가들을 모델로 촬영을 하며 그들과의 관계가 끈끈하게 유지하는 것 또한 사진이라는 컨텐츠가 만들어준 결실들이다. 사진은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과 결과, 그 이후로도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하고 있다.

나에게 고정된 공간을 없애려고 한다. 그것은 스튜디오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위상이 바뀌고, 직업이 일보다는 유희와 놀이의 문제로 변화되고 있으며, 물건을 팔고 A/S의 수순이 바뀌었다. 이제 나에게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찾아가는 문제'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용기와 확신을 줬고, 실행을 부추기고 있다. 소유의 종말이라.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삶을 여유롭게 하기위해서는 돈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여타의 것들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팔아야한다. 그 중 제일이 즐거움이다. 누구나 즐거움을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고 있다. 즐거움이란 어제나 내일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문제이다. 현재를 즐기기위해 자유가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더욱 가벼움으로 생각과 몸이 동시에 날라다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나에게 준 영감과 실행에 대한 제안이다.  지금 실행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그것을 시도해 갈 것이다.


소유의 종말, 접속의 시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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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에서 미래만 나오지 않았다. 그랬으니 망정이니 그걸 알았다면 결과를 보고 시청하는 축구경기와 뭐가 다르겠는가? 참말로. 내일을 모르며 답답하다고 하는 소리는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는 거.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봤다. 자코 반 도마엘 이라는 감독, 이름부터가 낯설었다. 그의 영화들은 특이한 생각의 소유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판도라 상자에서 희망까지 끄집어 냈다면 진정 희망은 사라졌을 것이다. 비전을 꿈꾸고 묵묵히 걸어가는 수많은 인간들에게 그 걸음을 멈추게 했을 것이다. 컴퓨터로 지루한 일상을 못된 짓을 해대며 풀어내던 아버지, 그 꼴을 보다못해 사람들에게 남은 수명을 뿌려대면서 이야기는 더욱 쇼킹일로에 접어든다. 그렇다. 남은 수명이 많던 적던 간에 안다는 것은 끝은 본 것이다. 끝이란 있으면서도 모르는 게 약인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영화의 내용을 미리 듣고 주인공이 어떻게 된다더라라는 식의 영화는 너무 식상해 버리고 만다. 맛있던 음식이 섞어버린 것과 매 한가지이다.

글은 지은이, 사진은 작가, 그림과 음악도 작가들에 의해 그 색깔을 감지할 수 있다. 영화도 그렇다. 물론 나에게 영화는 감독과 배우의 구성에 의하여 선택하곤 한다. 훌륭한 감동과 명품배우들이 꾸미는 흥미진진한 시간이 가끔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한 가족이 과격한 가장과 함께 억눌린 채 살아간다. 자칭 신이라고 생각하는 괴팍한 아버지는 컴퓨터안에 뭔가를 쳐대며 낄낄거리고 있다. 그가 원하는대로 세상은 조정된다. 물론, 이런 기상천외한 생각을 표현하는 감독의 기발함은 관객을 새로운 세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신의 실재 유무는 접어 두고, 신화도 인간이 만들어낸 뻥이다보니 영화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다. 나에게 와 닿았던 이 영화의 사건은 딸 에야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인간의 남은 수명 공개하면서 적극적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고 희망을 잃는다. 60살이상이 남았다면 과감하게 그 예상 수명에 맡기고 광란의 삶을 사는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한계를 규정짓는 것은 막힌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ㅎ이다. 망막하고 빛을 볼 수 없은 삶이 된다. 미래의 직업과 결과를 공개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목표를 스스로 정해놓고 그 곳을 향해 묵묵히 행진하는 과정이자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직업인 사진작가, 이 직업으로 가능한 일들을 저지르면서 나는 산다. 아침이 되면 하루가 설레고, 새해가 되면 해야할 것에 대한 기대에 가슴 벅찬다.

모든 게 공개된 시점에서 기댈만한  기대나 종교적 신념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죽는 날을 대비하여 계획적으로 준비할 수는 있다. 남은 날 대비 남은 돈으로 하루 하루를 나눠서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쓰지도 못하는 돈을 벌기위해 벌건 눈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미래가 밝혀진 삶은 희망적일 수 없다. 상상할 수는 있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일상이 마냥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영화 속에 나타난 내용으로든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신이라는 그 아버지의 행태는 권태였고, 무표정한 가족들은 자유에 대한 목마름의 표정들이었다. 이쯤되면 인간의 행동은 다분히 심리적 예상에 의하여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뻔한 영화보다는 기상천외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다양한 생각에 건조한 삶에 화룡정점일 수 있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 모르는 게 약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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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를 보다. 이 영화 속에서 두 장의 사진이 영화 전개에 적극적으로 개입된다. 활용된 사진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과 전개과정에서 어떤 역할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사진은 내 직업이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사진과 연관 짓는다. 영화를 봤다. <히말라야>라는 영화였다. 왜 그렇게 힘든 곳에 가서 개고생을 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그곳에 산이 있어서'라는 말한다. 감동실화라는 수식어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한몫을 했다. 한 동안 책을 모으다시피 구입하다가 요즘은 영화를 모조리 섭렵하고 있다. 보기만해도 다가오는 임팩을 경험할 수 있는 편리함때문일 게다. 요즘 게을러진 게 틀림없다. 아니 나 자신에게 여유를 주고자 했다고 봐야한다.

톤이 추위를 느끼기에 충분하도록 차갑다.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 대원이 빙박하는 모습을 재연한 장면이다.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라낼 정도의 고통을 겪고도 또 산에 오른다.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인지는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영화는 시간이 흘러, 박무택이란 대원은 학교 후배들을 이끌고 산악대장이 되어 히말라야를 오른다. 내려오던 도중 조난을 당해 죽게 된다. 나중에 구조대에 의해 발견한 곳에서 그의 손에 쥐어진 사진 한장. 아내와 찍었던 사진이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추위를 사진 한장으로 견뎌냈다. 아내와 함께 했던 사진으로 과거의 그 장소에 가 있었을 것이다. 사진은 표상이다. 보는 순간 현실이 된다. 몸은 눈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내와 함께 과거의 그곳에서 미소 짓고 있었을 그 상황을 그려본다. 극한 상황에서 이보다 박무택 대원을 위기에서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또 한장의 사진은 박무택 대원의 주검이 담긴 장면이었다. 엄홍길 대장을 다시 산으로 불러들였던 사진, 의리라는 이름으로 죄책감을 갖게 했고 구조대를 꾸리게 했던 사진. 사진은 그의 부재에도 있음으로 존재하며 역할을 한다. 몸은  현장에서, 그와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함께 한다. 박무택 대원의 손에 쥔 사진은 아내와 영원히 더불어 함께 있음을 인식시켜 줬고,  주검이 담긴 다른 한 장도 대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사진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존재감을 준다. 사진은 생명체이다. 스스로 언어를 구사하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사진은 관객에게 감동을 준 강력한 도구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히말라야>, 사진 한장의 역할.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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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명월, 자연에서 지혜를 얻다.


청풍명월이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의미이다. 충주댐 주변에 제천이라는 경치 좋은 곳을 청풍명월이라 한다. 옛선비들이 풍류을 읊었을 법한 풍광이 일품이다. 스마트폰을 시작으로한 카메라의 대중화가 여행을 기억에서 저장으로 의미를 바꿔 놓았다.  

아름다운 풍광앞에 사람들의 행동이 관람에서 사진에 담는 것으로 달라지고 있다. 사진은 지향하는 곳을 찍는다. 지향하는 곳에는 자신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자신을 찍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진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인간은 관심을 먹고 산다. 사진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해준다. 풍광을 찍는 사람들은 결국 나 자신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에게서 치유를 받고 있는 것이다. 

비온 후 먼산에 운해가 깔리기 시작했다. 자주 볼 수 없었던 운해에 빠져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니 가까이 있던 대나무 숲이 아름다워 보였다. ‘현재를 살라’, ‘현재를 즐겨라’. 볼때마다 나를 질타하는  말이었다. 이야기는 먼곳의 운해와 가까운 곳의 대나무라는 두 피사체로부터 시작된다. 이 사진에서 공간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먼곳은 과거나 미래이고, 가까운 곳은 현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현재보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꿈꾸는 삶을 산다. 현재는 없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곤 한다. 그러나 행복이나 모든 가치는 현재에 존재한다. 이 사진은 ‘현재’의 중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정방사에서의 기념촬영이다. 사진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보여준다. 울긋불긋 화려한 단풍 앞에 다양한 옷을 입고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얼굴과 단풍이 닮아 있었다. 자연이 서로 어우러져있듯, 우리도 손을 잡고 하나가 되었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를 가르친다. 현재를 살라고.

청풍명월, 자연에서 지혜를 얻다. 마이더스 1월호 칼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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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주둥이는 육체를 물어 뜯고, 인간은 입으로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책은 아픈 마음을 어루 만져준다. 이천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면 그 내용을 불문하고 감동적인 것이다. 호메로스가 두루마리에 적었다는 대서사시가 현대인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영향력이란. 한 인간의 삶 속에 숨겨 놓은 진리는 양파의 껍질처럼 벗길수록 새로운 맛을 선사하다. 갈등, 배신, 환희와 즐거움처럼  뻔한 이야기지가 과학이 발달하고, 정보가 넘쳐나도 변함없이 독자를 지배한다.

"아아, 인간들은 걸핏하면 신들을 탓하곤 하지요. 

그들은 재앙이 우리에게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신의 

못된 짓으로 정해진 몫이상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오."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호메로스가 인간들에게 던진 '내 탓!'이라는 가르침은 자기성찰를 강요한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지속되는 걸 보면 끊임없이 극복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인간을 교화시켰던 종교나 교육도 이 문제만큼은 극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도 신을 의지하고 조상이나 남의 탓을 하고 산다. '몫이상의 고통'이란 부메랑처럼 자신의 과오가 눈덩이처럼 돌아온다는 뜻이다. 순리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 댓가는 냉정하다. 호메로스가 장담했던 '탓'에 대한 응징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인간의 행위, 즉 모든 창작활동도 결국 나를 만나는 것이다. 원초적 본능처럼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들이 책 속에서 살아 꿈틀거린다. 제우스신이 다른 신들에게 던진 말에는 자신의 못된 짓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고 했다. '자신의 못된 짓'에서 '자신'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면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함을 예고한 것이다. '나' 스스로를 인간이 쉽게 정복했다면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오를 수 없는 나무가 아니라 올라야하는 당위성으로 스스로를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내 탓이로다. 오뒷세이아.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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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얼굴이란 무엇인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얼굴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얼굴을 찍는 인물사진작가가 얼굴이라는 키워드로 소통하고, 얼굴을 활용하여 치유하는 일을 직업화하고 있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얼굴은 거울의 착시현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거울의 주관성을 사진이 객관화시켜 준다. 그러나 주관과 객관을 완전하게 분류할 수 없는 인간의 미완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거울 앞에 선 자신에게 속고 있으며, 그 믿음이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우리는 각기 자신에 관해서는 전문가이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의 생각, 열망, 역사 등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딱 한 가지 점에서 자신을 능가한다. 바로 얼굴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표정을 볼 수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 로체스터는 제인 에어의 얼굴에서 '청순함과 밝음과 축복'을 보지만, 그녀에게도 독자들에도 보이지 않는다. 굳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을 때 거울을 본다. 그것은 날마다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체 이탈의 경험과 비슷하다."  얼굴, 다니얼 맥닐 저.

유체이탈이라, 스스로 바라볼 수 없는 얼굴. 거울을 통해 나를 본다는 것을 유체이탈이란 매력적인 단어를 썼다. 저자는 얼굴의 모든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얼굴에 포함된 피부를 비롯하여 눈코입 전체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얼굴을 찍고, 얼굴에 대하여 강의도 한다. 또한 얼굴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포토테라피스트이다. 얼굴에는 스스로 만들어낸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얼굴은 몇권의 책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얼굴은 스스로의 감정에 의해서도 다른 표정을 짓지만 보는 사람의 감정에 의해서도 다르게 읽힌다. 자연의 오묘한 현상들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는 얼굴의 다양한 표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표정은 같은 표정이란 없다. 가르치지 않았지만 갓 태어난 아이도 얼굴을 인식하고 표정을 읽는다. 얼굴은 탄생 전부터 인식될 수 밖에 없는 신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거울 못지 않게 사진도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 포토테라피의 방법이다. 얼굴을 보고 글을 쓰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람이 달라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이자 답변을 하는 것이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의식이 변화된다. 이것이 바로 백승휴식 포토테라피이다. 나는 오늘도 사진을 찍으며 글을 쓰고 사유한다. 또 다른 나를 찾아서.

나도 모르는 내 얼굴. <얼굴, 대니얼 맥닐>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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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 '기다림'은 이메일의 등장과 동시에 사라졌다. 스마트폰 속에 네비게이션, 오디오, 카메라를 집어 넣었다.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노래가사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잊어버린지 오래다. 편리함 속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사라짐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도 'dellete' 중이다.



"교묘한 조작과 유희, 수정, 이미지 재생의 모든 가능성은 '아날로그' 세상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것은 또한 모든 긴장감의 종말이다. 이미지는 찍는 순간 그 장면과 함께 거기에 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뒤죽바죽이다. (반대로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이미지가 느리게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일은 그 얼마나 경이로운가!) 디지털적인 것에서는 바로 이 나타남의 시간이 없다." <사라짐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

저자, 장 보드리야르는 추억 속에 잠겨있다. 빠름보다는 느림을, 그리고 기다림에 대한 설렘을 즐긴다. 폴라로이드에서 상이 맺히는 광경을 기다릴 수 있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사라짐을 논하고 있지만 부정적이진 않다. 사라짐은 없음이 아니라 생겨나는 계기를 제공한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사라짐'이란 단어의 기대감으로 계속 읽힌다. 사라짐 너머에 존재하는 존재의 궁금증,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가 시선을 끈다. 저자는 아날로그의 환상을 즐기며, 디지털을 사라짐의 주범으로 몰아 가고 있다. 장 보드리야르에게 아날로그는 사춘기 소년에게 이성을 바라보는 눈길처럼 뜨겁다. 디지털의 삭제보다는기다림 속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면을 좋아한다. 무작정 찍을 수 있는 디지털의 자유를 포기하고 필름의 손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dellete'키의 관용은 풍요와 더불어 권태를 선사했다. 

사라짐은 비움이다. 채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유로운 공간 속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덧, 나도 사라짐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며 가졌던 설렘을 떠올려 본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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