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물사진 전문가이다. 그러나 풍경이나 사물을 찍어내는데도 거침없다. 그 이유는 사람이나 사물 뿐만 아니라 풍경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 바라보기, 인지하기, 그리고 사진을 찍어내는 것이다. 인식의 구조가 결국은 나만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진은 잘 어우러져야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사진을 찍다가 떠 오른 생각이다. 오랜 숙성의 살라미와 세월의 풍파를 겪고 눈앞에 존재하는 탁자가 어울리는 이유에 대한 적어본다.

살라미(salami)를 찍은 사진이다. 인공조명으로 촬영을 했지만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는 뜻은 어울린다는 것이다. 백그라운드의 질감과 살라미의 표면이 닮아 있었다. 살라미는 자연 숙성과정을 거친다. 살라미가 나무탁자에 올려져 찍힌 사진이다. 그 탁자는 밖에서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버틴 흔적이 남아 있는 살라미의 숙성과 닮아 있다. 숙성, 기다림, 시간의 견딤이라는 단어들로 표현해진다.

촬영하면서 밖에 놓여있던 탁자를 옮겨왔다. 빛에 액센트를 살라미 윗부분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게 했다. 그런 이유로 탁자는 본래보다 더 어둡다. 세월의 흔적이 어둠 속에서도 남아 있다. 세월의 흔적이 없었던 들, 이런 어울림은 없었을 것이다. 어울림이란 외형의 비슷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까지도 포함한다. 참 중요한 이야기다. 우리의 삶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옷과 사람, 집과 사람 등등 사람과 닮아 있고 어울리는 것은 그 사람다움으로 매치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빛이다. 빛은 두가지로 존재한다. 주어진 빛과 만들어진 빛이 있다. 자연광과 인공광과 같은 기존의 빛은 모두 주어진 빛이다. 예를 들어 도공이 흙을 빚는 것은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들어진 빛은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 속에서 볼 수 있다. 도공들은 빛의 색을 본다. 만들어진 빛은 색과 톤을 의미한다. 탁자와 살라미가 가지고 있는 빛이 있다. 이 둘은 과정까지도 닮아 있었기에 더욱 어울리는 것이다.  성장 패턴에 의해서 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어울린 것이다.  어울림, 외형의 닮음만으론 그것을 어울림이라고 말할 순 없다.

숙성의 살라미와 오래 된 탁자의 어울림에 대한 생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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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였다. 한밤중부터 새벽을 마다하지 않고 전국을 누비던 이들이 스튜디오에 모였다. 이유가 뭘까? 도대체....

이들이 열중하고 있는 건 무엇이며, 왜 그럴까? 뭐, 자주 꺼내는 화두지만 결국 what & why의 문제였다. 물론 how는 과정에서 딸려 오게 마련이지만. 자세히 보면 스튜디오 내부의 스트로보가 있고, 이들은 dslr 카메라를 들고 무엇엔가에 열중하고 있다. 우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아뿔싸! 사람이었다. 사람은 어디서나 찍을 수 있는데, 이걸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배워야하는 이유로 부터 나의 생각을 시작된다. 인물사진 경력 30년, 누군가를 가르친지 15년, 인물 뿐만 아니라 풍경에다가 사물에 말걸기 등 다양한 테마로 강의를 해왔다. 기업체 특강과 사진관련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나를 잘 아는 이들과 몇번의 만남으로 찾아온 이들의 요청으로 강좌가 개설되었다. 상황과 목표에 따라 월, 화요반으로 나눴다. 

결굴 'what'은 사람이었고, 'why'에 물음을 던지게 된다. 초보든 몇년 경력자든 인물사진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물사진 중에는 스튜디오에서 인공조명 즉 스트로보를 활용하여 자기만의 사진을 원한다. 그래, 말 잘했다. <자기만의 사진>, 그럼 풍경이나 사물을 촬영하는 것은 자기만의 사진이 아니던가? 맞다. 자기만의 사진에 숨겨진 뜻은 자기 주도적인 사진이라고 해야 맞다. 풍경이나 사물의 사진은 기다림과 지속성 그리고 욕심을 더 낸다면 순발력과 지식 등이 있으면 기본 이상은 간다. 그러나 인물사진은 다르다. 피사체가 꿈틀거리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의 상대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니, 두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인물사진 촬영의 특징을 말해보자. 우선 적극적이어야 한다. 먼저 다가가 주도적으로 피사체를 어루만져야 한다. 기싸움도 필요하다. 자기무장도 필요하다. 카메라의 메카니즘이나 인물의 심리, 그리고 조명이나 포즈 등의 다양한 것들에 대한 사전 지식과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부분이 갖춰져야 여유로운 인물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앞 문장에서 미스테이크가 하나 있다. 그건 인물사진에서 여유라는 말은 없다. 항상 긴장이다. 상황이 같은 상황은 한번도 없기 때문에 돌발상황에 항상 긴장,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힘든 일들은 사람들은 왜 하려 하는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젠 차별화를 두고 싶은 것이다. 디지털화가 되면서 누구나 찍는 사진을 이젠 자신만의 방식으로 찍어내려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구!

인물사진은 소통을 배운다. 피사체와 깊은 소통이 없으면 <그>를 찍을 수 없다. 외형은 가능하지만 내면을 끄집어내지는 못한다. 인물사진,  portrait라는 어원이 끄집어낸다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을 본다면 더욱 그렇다. 인물은 외형만 찍는다면 어렵지 않다. 쉽게 찍을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을 수련해도 항상 고민 거리를 안고 찍어야 한다. 이런 찝찝하고, 화끈하게 결론나지 않는 쪽으로 사람들은 고민의 폭을 넓히며 이런 과정에서 희열을 원하고 있다. 쉬운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식상함, 즉 권태에 빠진 사람들! 이제 무궁 무진한 인물사진의 세상에서 그들은 또 다신 고민하고 시도하고, 자신이 찍어 놓은 사진들에게 희열을 느끼며 일상을 새롭게 맞이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몰입하는 과정에서 나의 행복감을 찾아갈 것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2-3시간은 쉴새없이 흘러간다. 나를 즐겁게 하는 이런 몰입, 나는 그들이 있어서 일주일이 행복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인물사진을 왜 갈망하는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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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 객관화하기. 사진을 찍었던 내가 강의를 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해를 거듭할수록 재미가 쏠쏠하다. 이유는 사진찍기와 강의하기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안 속에 자주 내가 등장하면서 나를 다시 떠올리게 하며, 과거 속에 체험했던 기록들을 한 눈에 요약되는 장점도 있다. 아무튼 강의는 가르치는 나나, 배우는 사람들이 한 곳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 흥미롭다.

사진 놀이. 내 삶은 온통 사진이라는 친구와 노는 것이다. 사람을 찍고, 그것으로 강의하고, 책을 내며, 그 과정 전체가 논다는 의미를 공감하는 게 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모든 중심에 깊숙이 사진이 있었고, 사진이라는 중복과 그 교집합이 내 삶을 치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은 타 영역과 융합하면서 내 삶의 가치에 가속을 내고 있다.

예술을 하는가? 건국대학교 뷰티 디자인과 학생들의 한학기 강의를 시작했다. 첫시간에 출석을 부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뷰티디자인과 뿐만 아니라 시각디자인과 여타의 디자인관련학과 학생들까지 몰려들었다. 나는 말했다. 사진은 디자인이자, 소통이다. 창작적 행위이며 예술이라고. 예술하냐고 물었더니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쭈삣거렸다. 나는 분명히 말했다. 너희가 예술이라고 말하면 예술이고 아니면 그냥 일이라고 말했다. 서서히 그들의 얼굴에는 흥미를 일으키며 눈빛에는 생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자신감이었다.

사진과 나! 그리고 삶의 궤적. 사진의 역사, 사진의 현재 포지션, 사진의 용도와 영향력, 그리고 사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까지를 말했다. 과제도 많다고 겁도 주고, 수업 중에 나를 깊숙히 만나는 직면도 맛볼 것이라는 유혹도 했다. 아무튼 수업은 다음주부터 정예멤버들의 구성으로 시작된다. 수업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바꿔놓을 것이다. 나는 무던히 사진이라는 컨텐츠에 미쳐있는 게 틀림없다. 내가 정리한 강의안에서 내 삶의 궤적과 방향성이 엿보인다는 게 흥미롭다. 아마도 난 어딘가에서 계속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고 있을 거다.

강의 pt에 나타난 생각 객관화하기(건대 뷰티디자인학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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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말씀하셨다.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말한 청년에게 '세상이 아니라 니 마음이다.'라고. 세상은 가만히 있는데 나의 시선과 마음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진찍기가 그렇다. 내가 바라보기에 따라서 미추가 결정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진이란 항상 우리가 바라보는 눈과 같다. 사진찍기는 눈으로 바라보기이다. 우리는 바라보기는 배우지 않았다. 그냥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을 뿐이고 우리는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사진찍기를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배우고 나면 세상이 달라진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 뿐만 아니라 내 주도대로 세상이 만들어진다. 

피아노 패달을 밟는 모습, 연주하는 아이들의 기억들에 의하여 상상하게 한다. 표정들은 보이지 않지만 상상한다. 그 상상은 나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긴장한 얼굴, 즐거운 모습, 무표정 등 다양한 상상으로 그들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이 위치에서의 사진찍기를 'dog's sight'란 이름을 붙인다. 물론 강아지의 시력은 이만큼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아래쪽에서 바라본 세상은 다를 거란 의미에서 제안하는 거다.

모델의 주인공은 어떻게 이런 찰나를 찍었느냐며 놀란다. 기다림이자 선물이었다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 우연히 나에게 준 기회였다는 말이다. 기다려도 안나올 수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시점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보다 더 나은 장면을 잡아낼 수 있지만 이것으로 만족한 촬영이었을지도 모른다. 강의장 뒷면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찍어낸 사진에서 다른 시선이 다가온다. 

조금만 시선을 바꾸어도 다른 사진이 된다. 그럼 이 시선을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만났을 없었던 장면이 아니었던가? 세상은 가능성이다.

사진찍기, 세상의 모양은 시선에 의해 결정된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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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들은 흐린날을 일컬어 빛이 없다고 그런다. 나는 반대다. 없으면 없는대로 맛이 난다. 맑은 날만 날이 아니라 흐린날도 재밌다. 잿빛의 다운된 분위기 속에서 잔잔한 여운을 찾아내는 일 또한 사진찍기의 매력이다. 답답하거든 사람을 집어 넣어 이야기를 짜내면 더욱 흥미로운 사진찍기가 된다. 뿌연 안개같은 미세먼지들, 우리의 웰빙적 삶에 적군임에 틀림없지만 이 거대한 물결을 개인이 해결할 수 없을 봐엔 담담하게 받아 들이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하며 살아가는 게 답일거란 생각을 해본다. 삶은 다시 오지 않는 휘발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념촬영이다. 정 가운데 나무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기념촬영의 정의에 걸맞게 그곳에 내가 있었다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나를 믿는다. 그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면 된다는 믿음이 나의 일상을 편안하게 만든다. 조바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런 스트레스를 갖는다고 인생이 더 윤택해지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청담동 명품거리를 걷는다는 건 두가지의 감정이 교차한다. 보기 좋음과 싶게 접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 그것이다. 가끔 상점의 사진을 찍으려하면 직원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으시면 안된다고 정중히 이야기를 하는데 괜히 기분이 찝찝해진다. 왜 일까? 자격지심, 뭐랄 거 없이 짜증내고 싶은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언젠가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진을 찍고 있지도 않는데 '보안'이란 명찰을 찬 직원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찍으시면 안되다고 정중히, 그런데 왠 승질... 참자. 화를 내면 내 혈압만 올라가니깐. 논리적으로 따지면 자신있지만 그걸 이야기하는 나는 피곤해지니깐. 우끼는 짜장이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찍는 건 아니요, 그걸 찍지 말라는 건 무슨 자만인지 모를 일이다.

이쁜 오토바이는 건너편 모델의 것같고, 녹슨 빌딩벽면에 켜져있는 전등은 뭔가 행인을 주시하는 듯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절한 관광객은 뒷모습으로 모델을 서주고, 건너편 벽면에 있는 모델을 소심한 마음으로 찍으면 위안을 받았던 <청담동 명풍거리를 거쳐 한강으로>촬영은 이것으로 청담동 거리는 보고 끝!

명풍거리의 해프닝을 뒤로 하고 한강으로 나온 일행은 재미난 사진찍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밤은 저물어 흐린 날씨에 맘상했던 우리에게 화려한 불빛을 제공하고 있었다. 기념촬영을 바닦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12초의 셀프타임으로 찍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흐린 강건너 남산방향으로 셔터를 눌더대던 사진가들의 뒷모습을 흑백으로 만들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나. 공사장 밑에서 흐릿하게 들어오는 빛사이로 분홍색의 파이프가 섹시하게 한컷으로 촬영마감. 카메라는 일상을 세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카메라는 나에게 세상을 훔쳐보는 좋은 친구이다. 고마울 뿐이다.

흐린날, 청담동 명품거리를 거쳐 한강으로.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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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찾아 삼만리!

빛이 있으라 함에 빛이 생겼고...”로 시작되는 성경의 귀절이 있다. 빛은 천지창조의 조건이었다. 인간은 공기처럼 익숙한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진찍기는 빛으로 하는 놀이이다. 놀라울 정도로 항상 접하는 빛을 명확하게 읽어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 빛은 방향, 질감, 색깔, 강도 등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사진이 감성적 언어로써 활용하려면 빛을 알아야 하고, 그 방법은 훈련밖엔 없다. 훈련이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그 빛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고 싶거든 이 글을 필독하길 바란다.

*느린 시간은 물의 형태를 바꿔 놓는다.

계곡의 작은 폭포이다. 물 위에 비춰지는 반짝이는 햇살이 눈부셨다. 1/15초의 느린 셔터스피드는 강렬한 태양도 부드러워 보였다. 강한 파도라 할지라도 물안개처럼 보여줄 수 있다. 눈으로 확인했던 세상를 자유자재로 바꿔 버리는 카메라 메카니즘이야말로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시간을 활용한 예이자 다르게 보기의 다른 방식이다.

*빠른 시간은 물을 알갱이로 만든다.

깊은 산 속에는 새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존재한다. 울창한 나무들이 숲 속으로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여 방문객에게 보여준다. 세상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이보다 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말도 없다. 세상의 주인임을 말해주는 아주 좋은 말이다. 세상은 내가 본대로 만들 수 있는 것 중에 사진찍기 만한 것도 없다. 계곡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찍었다. 1/250초의 빠른 셔터스피드로 촬영한 결과 계곡물이 알갱이로 변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분분석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반대로 느린 셔터스피드로 찍었다면 짧은 궤적을 그리면서 물이 튀는 방향까지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간단한 조건만 바꾸더라도 사진은 완전히 달라진다. 세상을 자유자제로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주인은 나다!

자연을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주도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의 선택은 바로 나다. 카메라의 자동화에 의지하여 툭툭 찍어내는 사진으로는 각박한 세상에서 자존을 지킬 수 없다. 타인이 시선이 쉽게 떠나버리기 일쑤다. 나만의 느낌을 표현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전부는 아니고, 사진을 찍을때 만이라도...

빛의 속도가 만든 형태의 변화에 대하여.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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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평생학습관 강의가 봄학기를 맞았다. 이들과 보낼 16주가 설렌다. 강의장은 항상 배움의 열정으로 뜨겁다. 요즘, 평생 학습이 대세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을 배우려한다. 나는 사진을 가르친다. 사진을 찍는 것은 타인이나 풍경이지만 결국 자신을 찍는 것이라고 감히 말한다. 사진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트북 화면에 춤을 추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보인다. 자세히 들려다보면 '즐거움'이란 글자도 쓰여져 있다. 중요하기에 밑줄 쫙, 동어반복과 같은 의미로 만든 pt이다. 수강생들의 이미지는 아웃포커스를 통해 익명화했다. 배우는 사람들이란 의미이기도 하지만 즐거움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사진은 이들을 배신하지 않고 즐겁게 해준다. 분명 자신이 보는 세상을 사진에 담아 타인과 소통하고자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누구나 찍는 사진을 타인보다 멋지게 찍으려한다. 그래서 배움이 필요했고, 그것으로 뭔가를 계획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물론 자신이 사진이라는 이미지 속에 의미를 담아내려면 좀더 세련된 화법이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배워야 한다. 객관적인 소통방법의 습득을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을 배워야 한다.

긴 겨울의 냉혹함을 버틴 새싹들이 입을 열어 봄합창의 시절이다. 다소 시끄러울 수는 있지만 귀엽게 봐줘야 한다. 이런 긍정성만이 즐거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나는 마냥 이 봄을 즐길 것이다. 


성북구 평생학습관, 2016년 봄학기를 시작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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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Rin Kim 교수님, 이런 느낌의 사진은 그냥 찍으면 되는건가요..? 캐논도 가능할까요..? ㅋㅋ 연장 탓 하는거 같지만 기계마다 느낌도 틀리긴 하지요? 어둠에 디테일의 느낌이 항상 좋은 것 같아요. 깊이감이 틀리다고나 할까.. 조리개 값에 있을런가요...>

나는 라이카 35mm로만 찍는다. 특히 요즘이 그렇다. 찍으면서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게는 나가지만 크기가 작아 가방에 쏙 들어간다는 거고, 또 하나는 35mm가 보여주는 깊이와 넓이감때문이다. 유명작가가 찍어서가 아니라 그 화각이 갖는 장점 때문에 그도 찍은 것이고 나도 찍고 있는 것이다. 덧붙인다면 색감의 섬세함, 즉  그만이 가지고 있는 질감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장비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기종과 집요하게 비교하거나 다양하게 써보지도 않는다. 써보니 괜찮아서 쭉 쓰는 것이다.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 '이런 느낌은 그냥 찍으면 되나요?' 답은 그냥 찍으면 안나온다이다. 사실, 이정도로 나오려면 내공이 필요하다. 내공이란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결과를 이렇게 내기위한 안목이다.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계속 노력하면 된다. 물론 그러기에는 방법이 필요하다. 일단 기죽이고... '캐논도 가능할까요?' 이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비가 캐논이란 말이고, 난 안되는 거 같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질감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어느 기종이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전시까지 하는 마당에.. 카메라 탓보다는 이런 느낌을 어떻게 낼 것인지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조리개값에 대한 물음은 조리개가 조여지면 심도가 깊고, 열면 심도가 얕아진다. 그리고 그런 질감에도 영향을 준다. 내가 쓰고 있는 35mm단초점 렌즈의 장점중에는 조리개를 열면 심도가 심하게 얕아져서 아웃포커스를 시켜 임팩을 주는데 안성맞춤이다.

환경과 약간의 안목만 있으면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에 대해 몇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Zone System. 이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그러니깐 필름으로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한학기동안 공부하고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아니 풍부한 계조를 낼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필름시절에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약간의 오버촬영과 언더 현상으로 자기만의 톤을 재현해 내곤 했다. 쉽지 않았으며 촬영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여러 컷으로 같은 장면을 찍으며 한컷을 건질까 말까한 이런 작업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원하는대로의 결과가 나오면 성취감이 높았다. 그러나 과학은 이런 고단한 행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눈깜짝할 사이에 완성된다. 사실, Zone System은 예견하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예견할 필요도 없이 바로 찍은 사진의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기다림, 이딴 건 필요도 없다. 요즘 애들이 그래서 참을성이 없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찍고 마음에 안들면 'delete'면 끝이다. 다시 찍으면 된다. 돈 안든다. 필름시절에는 찍어서 잘못되면 눈물을 머금고 다시 필름을 구입해서 다시 찍어야 했다. 이런 기다림은 짧게는 몇십분에서 몇일을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둘째, Framing. 세상은 넓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프레임이 만들어진다. 카메라의 얼굴을 파묻고 그 안에 있는 비주얼 중에서 잘라내기만 하면 된다. 사각으로 잘라서 바구니에 담아내는 일이다. 그 다음에 그 사각이 마음에 안들면 다시 또 잘라서 마음에 드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바라다보이는 그 장면을 위치와 찰나에서 셔터를 누르느냐가 관건이다. 풍경과 그 안에 움직이는 피사체인 사람을 넣는다는 것은 여간 신경쓰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그 안에 있는 그 피사체가 그만의 언어로 다양하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말바꾸기처럼 다양한 몸짓으로 유혹한다.  

셋째, Exposure. 노출도 언어다. 적정노출이란 불통의 단어다. 무책임한 단어다. 그건 기계의 영역이다. 기계의 Auto 시스템은 왠만한 것쯤은 만들어 낸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노출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언어는 기계의 정밀함으로는 감히 표현될 수 없다. 노출의 부족과 오버가 주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표정으로 말하면 울고 웃는 차이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질감과 색감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에는 Raw를 현상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은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현장에서 90%이상을 완성시켜야 작업이 순조로워진다. 아무튼 현상이 모든 걸 조정하다고 하지만 원형을 심하게 만진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오리지널이 아닌 수정댄 모든 것은 자연 스럽기에 한계가 있다. 자연미인과 성형미인의 차이?

4.Raw Format. 이건 천하장사다.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Jpeg와는 다른 묘미를 가지고 있다. Raw는 어린 아이들에게 동네형같은 존재다. 든든한 존재. 노출이 안 맞거나 색온도 같은 것이 엉성하면 현상과정에서 Raw Format는 감쪽같이 교정된다. 촬영에 자유를 안겨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문제는 항상 발생하는 것처럼 원칙에 철저할 필요가 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물이나 풍경을 찍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신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를 만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진찍기의 묘미가 아닐까?


사진찍기는 자연과 나누는 대화.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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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사람들이 인물사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상이나 풍경을 찍던 사람들이 다음 단계로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인물사진과 풍경사진, 둘은 형제다. 정확히 따지면 사촌정도는 될 거다. 쉽게 말해  이 둘을 하나로 보면 된다. 풍경에도 표정이 있다. 인물사진이 힘든 이유는 상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만족할 때까지 찍어도 군말이 없다. 인물사진은 피사체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풍경은 우리 곁에서 항상 미소 짓는다. 카메라의 객관은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을 물로만 보려한다. 내재된 사연들을 읽으려하지 않는다. 나는 인물사진 작가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풍경 속에서 표정을 찾아내며 그들과의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그게 내가 말하는 풍경 속에 표정이 존재한다고 말한 이유이다. 인물사진을 찍던 내가 풍경사진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흥겹게.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을 둘로 나누지 않고 하나임을 인식했기에 가능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건축과 조각과 그림을 다같이 잘 한 사람들이 많았다. 융합이자 통섭적 사고였던 것이다. 5백년이나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발전한 시점에서 더욱 쉬워진 이야기 아닐까.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만 한다.

두 사람이 기뻐 날뛰고 있다. 감정의 표현이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바디랭귀지, 몸짓 언어이다. 그러나 풍경에 숨겨진 감정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4장의 사진에서 나는 잔잔함, 관심받기 위한 몸부림, 열정과 분노, 고요함 등 다양한  감정적 의미를 찾았다. 그것은 보는 이의 시선에 의하여 결정된다. 해석이란 물음이다. 물음에 응답하는 행위이다. 사진은 지향하는 것을 찍는다. 그 지향선상에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얼굴은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상대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만으로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노하우, 내지는 익숙함에 있다. 풍경이나 사물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은 낯섦 때문이다. 그렇게 해석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실행하면 반듯이 익숙해지고 자연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자연과의 소통이 가능해진다. 같은 상황에서 풍경을 그냥 무로 본다면 단절을 의미이자 죽음이다. 이제 일상을 좀더 흥미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시점이 되었다. 자, 지금 주위의 사물들이 뭐라고 말을 걸어 오는가? 소통을 제안하고 공감하는 아름다운 세상.


풍경에는 표정이 존재한다. 인물사진과 풍경사진.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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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0년을 찍었다. 사진이 친숙해질만도 하지만 항상 새롭다. 그것은 더 재미난 것들이 파면 팔수록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은 오묘하다. 다가갈 수록 새로운 것들을 보여준다. 사진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진을 안다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터득하는 것이다. 옹알이 아가처럼, 이제 사진도 읽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성원에 의하여 7월 27일 개강을 시작으로 4주간 진행한다. 8월 10, 17, 24일로 이어저 일단 4주간을 진행한다. 강의명은 강사에게 필요한 사진과 사진들이다. 강사들은 강의준비하느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자신의 대표 이미지를 시작으로 강의 피티로 활용할 자신이 찍은 사진들이 필요하다. 구글이나 스톡에서 내려받은 멋진 이미지는 다른 강사들도 쓰고 있다. 관중은 두번보면 짜증낸다. 내가 직접 찍은 이미지를 사용하면 세상에 유일한 이미지로 강의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배워야 한다. 









강사들에게 꼭 필요한 사진강의.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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