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동어 반복이자 의미를 포괄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아우르는 것이다. 교육하는 입장의 나에게 멘토와 멘티는 관심대상이다. 일반적 의미로 희석하면 안된다. 멘토가 멘티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든가, 멘티는 배우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 탈북 학생들의 사진 놀이에 멘토가 역할을 하고, 둘의 시너지이자 콜라보를 계획해 본다.

2016년 탈북학생들이 전시했던 작품의 일부이다. 국회에서 전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사진은 평가해선 안된다. 바라봐야 한다. 그 안에 그들의 아픔과 한, 그리고 낯선 감정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찍어낸 것이 아니다. 멘티는 생각하고 멘토가 만들어 준 협업의 산물이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이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2017년 다시 이들이 모인다. 아니 뭉친 것이다. 서로 대화를 나눈다. 멘토가 멘티앞에 곱게 차려입고 선다. 서로의 만남은 위대한 것이자 역사적 현장에 선 것이다. 누가 누굴 가르치겠냐고 한다. 준다는 의미가 감사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포근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자 맞이하는 것이다. 둘이 만나 사진을 찍기보단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으로 끝이다. 멘티는 생각이 멘토를 통해 완성된다. 카메라를 조절해주고 자신의 카메라를 선뜻 내어준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가르친다는 것은 아는 것의 열곱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엔 절차와 방법이 있다.

멘티에게 카메라 메커니즘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게 중요하지도 않을 뿐 더러 우선 순위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선, 낯선 풍경을 접하는 그들의 생각을 만나야 한다. 한정된 시간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노출의 문제는 밝기에 국한하지는 않지만 그 감정의 톤을 공유하는 것이다. 카메라의 환경은 완전 수동으로 한다. 색온도는 daylight로, 포멧은 raw 또는 raw & jpg로 지정한다. 다시, 노출로 돌아가서  스피드, 조리개, 감도는 멘티의 생각을 표현하는 멘티의 수단이다. 속도를 나타내기 위해 느린 셔터스피드가 필요할 수도, 피사체를 살리기위해 조리개를 개방하여 심도를 낮추든, 어둠 속에서도 조리개와 스피드를 촬영자가 원하는대로 하기 위해 감도를 조정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촬영하면서 결과를 본다. 고르는 연습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현장에서 삭제를 주문한다. 전시를 위한 퀄러티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그게 최고의 답은 아니다. 최선의 선택은 멘토와 멘티의 소통이자 함께 함이다.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그 다음은 과정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생길 것이다. 자, 찍으러 가자.

멘토와 멘티, 기술적 문제를 풀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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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한동안 학원 전단지에서 많이 봤던 단어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만 골라서 유혹했다. 이제는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창의적 사고와 창의력은 다르다. 근육을 길러야 몸이 튼튼해 지듯, 창의력이 길러져야 창의적 사고가 생겨난다. 나의 창의력은 블로그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방법은 이렇다. 글을 막 쓴다. 그리고 비공개로 해 놓고 몇일이건 쓰고 싶을때까지 기다린다. 숙성하는 거다. 마음이 끌리면 그때 마무리하고 발행한다. 뭐든 기간이 필요하다. 나의 블로그는 2009년 9월에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1400개이상의 블로깅을 했다. 나는 사진만 보면 글이 튀어 나온다. 사진작가라서가 아니다. 단련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포토테라피스트이다. 사진으로 심리를 논한다. 


백승휴의 강의 스타일. 당당하게 질러 댄다. 나를 교주로 부르게 한다. 처음엔 비웃다가 따른다. 농담이지만 함께 즐기자는 제안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한다. 방법은 일을 놀이처럼 하면서 즐긴다. 사진찍기든 강의든 예외 없다. 그걸 실행하는 과정은 고독하다. 고독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 과정뿐 아니라 결과에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독조차도 즐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의 엔진이 ON이 되어 있을때 생각이 작업을 시작한다. 자칫 NO가 되면 그 생각은 자취를 감춘다. 

"제겐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다. <창의적 사고>와 <이순신 장군의 어록>. 역사적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라봄이란 키워드를 통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바라봄에 따라 결과가 완전 달라진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사람들은 <택도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아직도 12척'이라고 했다. 물이 든 컵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물이 반이 든 컵을 보고 '반밖에 or 반이나' 로 나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명량해전에 투입될 배 12척은 적군의 330여척과 싸워야 했다. 그 상황에서 <12척이나 되는>을 논하는 것은 분명 창의적 사고였고 승리로 이끌 수 있던 계기였다.


바라봄이란 개념을 사진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려면 <보다 & 찍기>를 동일시해야 한다. 사진 찍기는 기계작용이 절대 아니다. 사진은 난사하듯 찍어대지만 결국 촬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바라보는 그 곳에 자신이 존재한다. 이걸 지향성이라고 한다. 지향하는 그곳에 내가 존재한다. 내가 나를 찍는 것이다. 사진 속에는 항상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이제 바라보기와 찍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강의를 시작한다.


심리전. 강의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낀다고 난리다. 웃으라고 보여준 거니 웃어야 정상이다. 우측사진을 보고 웃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아들이 그린거라고 말한다. 사실, 자세히 보면 그림이 더 나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한다. 드러내면 편하다. 난 이 그림을 처음 접하고 당황했다. 이걸 공개하니 자유로웠다. 강의시작은 웃음으로 시작한다. 웃음은 상대에 대한 경계를 풀게 한다. 두 장면을 두고 사람들은 비교하며 생각을 시작한다. 텍스트보다 이미지는 각각 다른 생각에 빠지게 한다. 특히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경험했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글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로 다른 색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다.

무엇을 찍는가? 찍는 것은 나 자신인 사람과 자연 속의 모든 것으로 크게 분류한다. 인물사진이냐 풍경사진이냐를 따진다. 인물사진을 30여년 찍어왔던 나에겐 인물이 익숙하다. 풍경사진도 재밌다. 인물이나 풍경이나 다르지 않다. 인물에는 표정, 풍경에는 느낌이 존재한다. 그 안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의 얼굴과 몸짓 속에 그의 감정이 담긴다. 그럼 풍경은? 물론 풍경이 말하는 것을 읽으면 된다. 어떻게? 내 맘대로 읽는 것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데 풍경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내 감정을 담아 바라보는 것이자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제 사진 찍기에 대한 설명 끝난 거다.

인물사진은 어렵다. 그러나 알고 나면 이만한 재미난 놀이도 없다. 인물사진 찍기에서 찍는 이는 권력자이다. 사진을 찍고 나면 그의 마음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풍경도 예외는 아니다. 직업인이나 일반이나 다르지 않다. 다 다르다. 성향이 다른 것을 찍어내어 그 답게 만든다. 그 작가는 그 작품을 닮는다.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찍으면 그와 작품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오버액션이다. 골프 코치의 사진이다. 잘 생긴 사람을 엉뚱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목적은 시선끌기에 있다. 성공이다. 왜 골프 코치가 입에 골프공을 물고 있느냐고 묻기 보단 골프와 관련된 사람이라고 이해한다. 임팩이 강할 수록 그를 궁금해 한다. 그리고 사무실로 발길이 끌린다. 그럼 성공이다. 창의적 사고란 타인과의 경쟁에서 선점하는 것이다. 같은 생각으로는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버티지 못한다. 시선 끌기라는 이 사진의 목적과 창의적 사고는 다르지 않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선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꼬리를 물며 창의 근육이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이미지로 교육하는 나의 입장에서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면 속에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웃게 된다. 이거다. 이미지의 힘이란 부지불식간에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부담없이 따라하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달라진다?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으랴. 이게 백승휴식 강의의 특징이다. 

풍경과 사람을 비교한다. 아니 풍경으로 삶을 비유한다. 사람을 말한다. 파도가 치고 있는 장면을 저속으로 촬영을 하니 뭉게져 보인다. 반복된 내용이 싸인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의 현재와 과거가 보인다. 삶이 축적되어 한꺼번에 다. 사진과 그림은 다르지 않다. 이미지라고 한다. 그림은 내면의 생각을 그려내는 것이고, 사진은 밖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발견하는 것이자 만나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하면 답이다. 글이나 그림, 그리고 음악도 사진과 다르지 않다. 하나로 귀결된다. 참 쉽다. 사람들은 나누려고 하지만 하나인 것을 나눌 필요없다. 하나로 놓고 생각을 깊이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상하기. 촉촉한 물기가 바위에 묻어 있고 풀이 넘어져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게 틀림없다. 방울토마토가 떨어져 있다. 따낸 것은 아닐 테고, 안익은 것까지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주인의 의도인지 타인의 행위인지는 따져 볼 일이다. 사진만 덩그러니 있으니 <주인을 찾아 삼만리>를 할 수도 없다. 생각으로 그걸 찾아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의 엔진은 일을 시작한다.

인문학이 대세다. 뭔가에 의지하려는 혼돈의 삶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진 꽃이 이렇게 아름답다. 버려진 거울에 봄은 오는가? 뭐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고 썰을 푼다. 말이 될때까지 이야기를 만든다. 계속 종알거리면 말이 될 때가 많다. 이쯤되면 슬슬 하산할 채비를 해도 된다. 이젠 자생해야지 누군가에 의지하면 몸짓만 큰 애된다.


풍경인데 누군가를 표현한 사진이다. 은유적 표현이랄까. 이테리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보이는 곳이다. 브로넬리스키를 찍었다. 뭐 장난하냐고? 장난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창작이란게 원래 권태로운 인간에게 희망을 준 시도 아니던가. 두오모 성당에 돔을 올린 사람이자 원근감을 과학적으로 표현한 피렌체 예술가 수장인 이사람에게 골목에 좁아 보이는 원근감을 표현했고, 두오모 성당을 살짝 가린 이유는 그를 신비롭게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 

창의력이란 힘은 근육처럼 길러진다.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서 탄탄해져야 한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진찍기란 1차적 창작이 있고, 사진 읽기라는 2차적 창작이 있다. 이는 <의도와 해석>의 문제를 통하여 다시 가공된다.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생각이 완성되다. 창의적 사고의 시작이자 힘이다.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짜증나게 하는 말이 있다. <그때 그때 달라요.>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사진찍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공식에 그 상황을 짜 맞출 수 있겠는가? 서두가 길었지만 사진가이며 포토테라피스트인 내가 창의력을 논하고 창의적 사고를 어떻게 키울 지를 제안한다. 사실 나의 강의는 activity 영역이다. 생각하고 그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때로는 그 답이 현장에 있음을 가르치는 강의이다. 창의력, 탁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위해 현장으로 나가길 바란다. 이상, 강의 끝!

창의적 사고 & 창의력, 백승휴의 썰로 풀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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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장에 사람들이 모인다. 이건 표현 욕구 때문이다. 사진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나면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한다. 위안과 과!. 강의 첫날, 한사람씩 단상에 오른다. 왜 이곳에 왔는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등 말을 해보라고 등떠민다. 자신을 설명하는 것도 역시 <자기> 답다. 수업은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백승휴식 강의 스타일이다. 이렇게 성북구 평생학습관에서 한한기 구민들에게 평생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이곳에서 배운다. 평생 교육이 대세라!

*한사람씩 자신을 소개한다. 나온 사람은 자신을 진지하게 말하고, 듣는 이는 흥미롭게 바라본다. 새학기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같다.

가정주부, 퇴직자, 직장인 인데 월요일만 시간되는 이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작은 꿈이자 바램은 이렇다. 남들이 다하는 블로그에다 사진과 글쓰기, 여행작가가 꿈, 새로운 취미로의 사진, 가족의 일상 기록, 아기의 예쁜 모습 찍기, 문화유산 해설사인데 보이지 않는 걸 찍기, 감성적인 사진 찍기, 스토리텔링하기, 일상이나 역사 유적지에서 흔적찾기, 바라봄에 대한 철학적 사유, 밴드에 사진 올리고 관심 끌기 등등. 50여명 전체가 다 다르다. 

몇년차 수강생의 말이 재미있다. "강사의 썰, 스토리 텔링으로의 수다, 개똥철학 같지만 공감하는 철학적 사유, 기술보다 생각을 끄집어 내기" 등등 백승휴의 스타일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들과 가을을 보낼 것이다. 사진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오면 날개를 달고 그 안에 잠재된 다양한 것들을 불러들여 그들과 수다한판을 떨 것이다. 이 가을이 설렌다.

평생학습이 대세라. 성북구 평생학습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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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Frame> 이란 단어가 사진 속에 써 있다. 촬영자가 프레임의 일부를 잘라내고, 그 구석에 말린 목화송이를 넣는다. 선명하게 조명을 비춰 존재감을 만든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사진 속에 목화를 바라보지만 생각은 자신이 체험했던 목화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성향에 따라서는 선이 수평 수직이 깨진 것을 못견딘다. 꼭 수평선이나 지평선은 수평으로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 그런 사람의 생각은 예견할 수 있다.  <New Frame>이란 단어에는 새로운 시도와 또한 그런 세상을 꿈꾼다. 디퍼런스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누구나 예술가를 꿈꾼다.

그들은 반복적 행위를 통해 자신만의

색을 완성한다. 

다음은 그의 프레임을 깨는 작업을 시작한다.

또한 그를 감싸는 틀은 

인간의 깊은 곳까지 따라다니며

생각과 행동을 간섭한다.

이상의 꿈을 꾸기위해서는

이상의 몸부림 만이그 틀을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만든 

틀을 깨는 작업을 즐기는 자이다.>


강의시간에 pt에 적었던 글이다. 프레임과 프레임을 구성하는 작가의 생각, 그리고 또 다시 깨질 그 프레임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시야에 들어오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세상과 인간을 연관 짓는다.

조명이 강하니 그림자도 선명하다. 가을밤을 연상 시키듯 약간은 차가워 보인다. 리본까지 매달고 자태를 뽐낸다. 만개한 모습이 충만하게 비춰진다. 이파리 하나 없지만 박제된 상황이라면 잘 어울린다. 목화는 아니 그림자는 백그라운드의 색깔 뿐만 아니라 기울어지고 일부 잘린 프레임 마져도 보는 이의 감정을 조정한다. 프레임은 더 넓고 더 많은 프레임 중에서 선택된다. 항상 그렇다. 좁은 렌즈 구멍사이로 만들어낸 프레임이 떠오르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인도한다. 이렇게...

프레임이 말하는 목화에 대한 추억.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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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기. 몰래 카메라처럼 누군가의 생각을 훔쳐 본다는 것은 항상 흥미롭다. 사진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생각 말이다.훔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추측하는 것이다. 그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아니, 내 생각을 끼워 넣는다. 내 생각과 그의 생각의 겹치기를 통한 이야기이다. 그걸 훔친다고 말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남들이 찍은 동시간, 같은 장소의 <다르게 보기>에 대한 시선을 따라가 본다.

강일선 작

화가의 꿈. 사진이 아니다. 물감을 흥건하게 흘려놓고 이깬 것이다. 작가의 전날 밤 꿈이다. 꿈이 그렇듯 시간과 장소에 대한 연관도 없이, 누구와 누구의 일관성도 없는 몽환적인 느낌 그대로이다. 작가의 꿈은 화가였으며, 사진으로나마 그걸 표현하는 것이 그의 꿈을 그려내는 대리만족이다.

노진화 작

바캉스. 사진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작가는 흥얼 거리며 사진을 찍었을 게다. 경쾌한 음악을 틀어놓고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풍성한 이파리가 시장바구니를 든 아낙의 파마머리같다. 온통 사진 속에는 들뜬 분위기의 연속이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몸짓이 가볍다. 휴가를 떠나는 바캉스의 계절이 맞긴 맞다.

박지연 작

가벼운 우울. 중년여성의 작품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중년은 우울하다. 상실된 환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나절, 흔들리거나 다운된 정서의 사진은 중년여성의 그것이다. 이 사진에는 몸부림이 담겨있다. 그 우울 마져도 가볍게 넘기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봐라, 사진이 무거울 듯한 분위기에 가볍게 웃고 있지 않은가? '난 괜찮아!' 이런 자위.

이재현 작

바람난 아내. 숲 속도 아닌 곳에 어설픈 도심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프레임 속에 나타난 빨강들! 이 둘은 다르다. 들 뜬 빨강과 분노와 좌절의 빨강이다. 커플복으로 함께 샀을 옷들이 제각각 이다. 남편의 거친  숨소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화면 뒷에서 춤을 추는 여자가 아내일 거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얘기 끝! 얘기 하나마나 이 스토리는 진부하기 그지없지만 그걸 잘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같은 빨강이 아님을 표현하기 위해 빨강 옷을 입은 남자의 시선을 뭉겠다.

전용구 작

오래된 아침. 찍은 시간은 밤이다. 사진은 아침이 느껴진다. 그것도 오래 전부터 보아왔던 익숙한 아침이다. 우리에게 아침은  눈을 부비며 몽롱한 상태에서 맞곤 한다. 이렇게 한 장의 사진을 꺼내 놓고 고민했을 그의 고뇌가 아름답다. 절제함이라. 뭘 보여줄 것인지 고민했고, 여기 까지마나 하자고 스스로에게 타협한다. 그렇게 이 사진을 덜렁 내 놓고 또 다시 고민한다. '어쩜 좋아?'

전현미 작

진지하거나 화려하거나.  이 사진은 전면과 배경으로 나뉜다. 화려한 불빛이 분주하다. 저 멀리 어둠이 몰려 온다. 흐린하게 대비를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그의 성격일 거다. 딱히 딱 잘라 말하기보다는 그 안에 어설픈 듯 두리뭉실 넘어가려 하지만 어째튼 그의 생각은 표현되었고 이야기는 지속되고 있다. 화려함 주변에 얼쩡거리는 다양한 감정들이여.

한미연 작

나르시시즘. 지기개를 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섹시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공감의 피사체 속에 집어 넣고 떠 넘기려 한다. 엷은 색들의 대비는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는 그의 성향이자 행동이다. 항상 자기 안에 담긴 나르시시즘, 자신을 사랑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짙게 깔린다. '나 이뻐?' 이렇게...

홍미혜 작

간지르고 웃기. 각각 다르나 연출인듯 연출아닌 사진 속은 명확한 결론은 없다. 그럴 듯한 의미 속에서 자위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연의 일치든 기다리다 걸렸든 사진 속은 이야기로 풍성해 진다. 시작을 찾으려는 안간힘은 여기서 부터 또 다시 시작된다. 연관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어찌 관계 지으려는가?

홍정숙 작

퍼즐. 환영이다. 문제 맞추기이다. 뭘로 보이냐고 되묻는다.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묻고 답하기를 지속한다. 이런 말걸기는 글쓰기나 노래하기와 똑같다. 사진처럼 말을 거는 계기를 만들수 있는 것도 없다. 작가는 무료하거나 장난꾸러기이다. 어떤 사물이든 걸리면 끝까지 후벼파며 재미있는 놀이로 만들어 낸다. 이렇게.... "이게 뭐냐고 물었잖아?"

출사를 다녀 온 동료들의 사진을 보다가 욱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간 <생각 훔치기>! 생각을 예측하는 것이 훔쳐 보기로 둔갑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의 또 다른 이름은 관심이다. 그의 생각을 훔쳐본다는 느낌보다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소통이다. 훔쳐보기다. 예측이다. 말걸기이다. 막 던지는 거다. 상대의 입이 열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같은 사진도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는 것에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힐끔 힐끔 눈치보며 바라보는 것과 방식을 달리하여 생각까지도 훔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참 재미난 놀이이다. 사진 말이다.

훔쳐보기의 또 다른 방식, 생각 더듬기.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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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못 바꾼다>에 한표! 인간은 스스로 바뀐다. 소크라테스도 동의했다. 교육도 정보의 입력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도록 곁에서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자극이란 동기부여일 뿐 진정한 내면의 변화는 자가동력에 의존한다. 관악구 청소년 사진 교육을 진행하면서 <멘토와 멘티의 만남>을 가졌다. 

교육은 자신을 발견하는 도구일 뿐이다. 사진은 말을 꺼내는 계기이다. 멘토와 멘티가 만나던 날, 멘티도 멘토도 자신의 사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멘티는 말했다. '나무나 풀을 가까이에서 찍고 싶다.' '뒤모습을 찍고 싶다. 몰래 찍기가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보고자 한다.' '새로운 발견을 원한다. 원래 놓여져 있던 세상이지만 다르게 보고 싶다.' '세상을 풍자하고 싶다.' 등등. 멘토 또한 자신들이 사진을 찍으며 <앗, 이거구나!>, <난 요즘 여기에 몰입되어 있다.>란 논제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에게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멘토와 멘티가 정해지고 서로는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의 순수한 생각이 멘토의 카메라 기능을 통하여 표현된다. 멘토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놀라며 새로운 시선을 배운다. 멘토와 멘티는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에게 긍정의 기운을 주는 것이다. 좋은 만남이 오래 이어지길 기대한다.

사진교육에서 멘토와 멘티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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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사용설명서. 이렇게 딱 정해놓고 강의안을 짜기 시작한다. 자신감인지 아니면 겁없는 건지. 실행하는 과정에서 답이 나온다는 확신 때문이다. 우선 공간에 대한 사전적 의미로 부터 시작한다. <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곳>이라고 답하고 있다. 빈 곳이란 의미가  끌린다. 그럼 그곳엔 뭘 담아야 하는가. 그릇 같은 건가? 사람, 사물, 풍경 뭐 할 거 없이 막 채우면 되는 건가. 이런 시작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결론을 짓기까지 가본다.

사전적 의미처럼 공간은 빈 게 틀림없다. 비로소 세상이 빛과 함께 탄생 되었듯, 빛과 같은 드러내주는 무엇의 존재가 필요하다. 공간에 피사체의 등장으로 공간을 채우거나 관계 짓기 시작한다. 계기나 소재의 등장에 의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공간은 피사체와 동시에 숙성될 기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시간이다. 무한대 곱하기 제로는 제로인 원리처럼 이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기본적으로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무엇 하나 엉뚱하게 조화를 깨는 행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세상이 그렇다. 우주의 원리에서 지구가 태양계에서 살짝만 비켜 돌아도 산산 조각나고 마는 오묘함처럼 말이다.

같은 공간에 인간의 등장이라. 서로를 비교하는데 같은 배경은 필수다. 배경이 의미를 가지고 있거나 그때 그때 다르면 기준을 잡고 비교하기가 어려워진다. 배경이 피사체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배경 앞에 선 피사체를  비교 검증하기에 좋다. 또한 이 사진은 정복을 입었기에 더욱 각각이 보인다. 나는 오랫동안 인간을 찍어왔다. 이럴 경우, 묘한 매력을 느낀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각의 인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공간에 사람이 들어간다? 사람은 공간을 사용하는데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누군가의 생각을 따라 하지 않고 그걸 가져다가 자기화한다. 세상이 다 똑같으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이 사진 속의 모습들은 몸짓하나 표정하나도 다르다. 사진을 찍으러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다른 형태를 띤다. 그러니 사진이란 그 속의 피사체들은 각각의 다름을 보여주는 건 너무 당연하다. 

공간은 인간과 같은 치사체의 진입과 일정 시간을 숙성시켜야 비로서 의미가 된다.  의미 부여이다. 그 의미가 부여되면서 세상이 탄생된다. 공간,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공간 사용 설명서, 공간이란 의미.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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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은 언어다. 바디 랭귀지! 비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뭐, 이 정도면 몸짓이 의미하는 것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소통되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 몸짓을 단순한 개인적 소통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고 한 해를 예측하는 방법과 매듭지어 보려한다. 그 정도로 인간의 몸이 품고 있는 예지력과 포용 범위는 방대하다. 두가지 방법을 통하여 그들의 성향과 2017년을 대하는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호기심 천국. 한번 놀아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표정 중에서도 눈빛이 강렬하게 상대를 자극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세상과 조우하는 스타일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에 집중하며 자기만의 방식을 제안하는 삶의 형태를 갖는다. 2017년에게. 흥미로운 한해는 <더불어 함께 함>에 대한 제안이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새해 아침에 보여주는 그녀의 몸짓에서 새해가 흥미롭고 기대해 볼 만하다. 설렌다.

  시도하는. 익숙하지 않으나 해보는 거다. 약간은 어설픈 몸 짓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있다. 몸짓과 표정에 나타난 낯섦은 익숙하지 않은 거다. 반복하며 누구나 익숙해지고 몸짓도 자리를 잡아간다. 시도한다는 것에 박수를 쳐준다. 2017년에게. 해보는 거야. 시간은 물 흐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가 아니라 연극이다. 영화는 반복을 통해서 수정이 편집이 가능하지만 연극은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실수란 고칠 수 없는 것이다. 강물은 흘러가면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고 하나 강물에 쓸려간 물건은 쫓아가면 찾을 수 있다. 뭐든 해보는 거다. 세월을 용서하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몰입하는. 열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신을 살짝 가린 모습들 일색이다. 타인을 의식하지도 않는다. 몰입이란 말 속에 담긴 의미처럼 그녀와 그녀 사이엔 그 누구도 낄 틈도 주지 않고 자신에 집중하게 해 준다. 적극적이고 상대하고도 멋진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2017년에게. 펼쳐진 시공간 속에서 놀아보는 거다. 강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정보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도 함께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에게 던져준 공감의 메시지이다.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다. 자신을 찾아가는 한해가 될 거다. 

보여주는. 그들의 행위는 누군가가 바라본다는 전제하에 이뤄지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과시와 위안이란 두마리 토끼중에서 소통을 위한 과시에 집중하고 있다. 2017년에게. 상대에게 배려하는 한해, 봉사도 자기관리도, 상대에 대한 배려도 아낌없이 해주는 한해가 되길 빈다는 의미가 보인다. 

자, 무대가 마련되었다. 2017년이다. 물론 그 후에도 기회는 있다. 그러나 2017년 무대는 한번 뿐이다. 새로운 것을 당당하게 시도하고, 나에게 선물하는 몰입을 시도하며, 보여주기란 소통적 제안을 통하여 즐거운 한해를 기약해 본다.


그녀의 몸짓이 예견하는  다양성. 2017년을 말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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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바 2017.01.26 0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멋져요^^ 대표님! 2017년 화이팅요!

원래 사진찍기는 대화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자, 듣어주는 것이다. 여럿이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며, 혼자라면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사진 찍기의 개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감하는 메시지가 있다.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쏟아지는 일상에서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다 내려 놓고 하나만 골라내는 것이다. 소근거리지 말고 큰 소리로 짭게 말하는 것이다. 사진 찍기도 마찬가지다.

바다에 가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새의 깃털이 그물에 걸려있고, 바람에 그물이 불룩 나온 배처럼 보인다. 두개를 하나의 키워드로 묶는 것이 중요하다. 한장과 두장은 배수의 문제가 아니다. 집요하게 달라드는 것이자 그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몇배의 어려움이 따른다. 공통 키워드를 찾아 집요하게 말을 거다. 그물이 깃털을 붙잡아 놓고 말을 거는 것이고, 지나가는 바람과 맞서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건 의미부여이다. 의미부여 속에 꽃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다. 


종을 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화면 전체를 메운다.  TV 광고에 나왔던 학교이다. 제주도 더럭분교! 어른들이 교정에서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 어른과 그림자 놀이! 이 놀이는 하는 순간, 어른은 어른이 아니다. 아이가 된다. 더럭 분교에 가면 무지개로 색칠해 놨다. 어른들의 어린 시절 키워던 무지개 꿈이 이곳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어른이 아니라 아이가 되어 흥겨운 놀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말이다.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말에게 말을 걸었다. 아재개그보다는 수준이 조금 높다. 말의 생각, 의지, 그리고 대화가 담긴 사진들이다. 말에 집중하고 있다. 바람, 돌, 여자가 많은 제주에서 말에게 말을 걸었다. 말이 실제로 사람이 다가가면 큰 눈을  끔먹거리며 뒷걸음치다가 따라오고, 따라오다가 뒷걸음치며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말을 건다. 말에게 말을 걸 든, 말이 말을 걸어오든 말과 말을 나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말에게 말을 걸다!

서해안에 가면 갯벌이 넓다. 서해바다의 매력이다. 볼음도의 갯벌은 드넓기로 유명하다. 조개도 잘 잡힌다. 물이 쭉 빠진 갯벌의 끄트머리엔 그 너머에 외딴 섬들이 보인다. 엎드리거나 삐딱하게 몸을 기울이고 사진을 찍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물이 빠지는 물길너머로 언덕이 하나 세워져 있다. 납짝 엎드리면 그 너머의 섬이 사라진다. 고개을 쭈욱 빼고 바라보면 잘 보이던 것들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다. 바다와 섬을 묘사하며 재미난 놀이를 한다. 섬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제안을 담은 것이다. 섬에 대한 생각.

사진은 놀이이다. 사진에서의 선택과 집중은 몰입을 준다. 몰입이야말로 치유의 우선 순위이다. 몰입하는 동안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자기와의 대화가 이뤄진다. 나를 만나는 시간, 그건 치유의 시작과 끝이다.

작가의 의도는 선택과 집중, 몰입이라는 치유로 가는 길.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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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텍스트. 이 둘은 어떤 관계인가? 우선 이미지는 보여주고, 텍스트는 해석하고? 뭐 이런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둘이 가진 의미가 다르다는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강의 교안으로 썼던 두 장의 사진은 톤과 색의 대비를 설명하기에 좋다. 그러나 색의 대비가 아니더라도 시선을 끄는데 성공적인 사진은 녹색의 향연이란 제목의 사진이다. 또한 그 내용을 글로 풀어내는데 깨알같은 크기로 쉴새 없이 써 내려가도 부족하다. 

녹색과 붉은색은 대비의 기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부피를 차지하는 쪽으로 시선은 끌린다. 오른쪽 사진은 톤이 풍부하여 꼼꼼히 바라보게 된다. 녹색에 붉은 꽃과 녹색 이파리에 매달린 열매, 이 모두는 대비를 통하여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분법이라고 해두자. 둘이 만나  비교되면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꽃이냐, 열매냐? 정성스럽게 길러진 화초들이지만 이 정도는 일반 가정에서도 흉내낼 수 있다.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것이다.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대비적인 이유 말고도 보기만해도 떠오르는 생각들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자기집 화단이나 베란다에 심어진 꽃들 생각부터 난다. 공원에 나가 애완견을 보면 집에 있는 뽀순이 생각이 나는 것처럼. 이미지는 글자가 쓰여진 것보다 빠르고 다양하게 생각을 들썩이게 한다 

그럼 이미지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써봤다.

두장의 사진을 보며 떠올린 생각들이다. 페이지가 좁아서 글을 쓰다가 멈춘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보이는 사진 내용을 넘어서 다양한 생각들이 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가 다시 돌아와 사진의 이미지에 나타난 이야기로 매듭짓는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반복을 통하여 다양한 생각들이 이곳에 쌓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들이 쏟아지는 축복을 받는다. 물론 이 페이지에 적은 글은 정리한다든지 오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이건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존재와의 만남을 위해서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답은 글에 담기지 않는다. 그 새로움을 떠올려 낸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사진이라는 이미지와 글을 통하여 나 스스로를 자극한다. 페이지에 있는 내용들을 복사하여 이곳에 적어내려간다면 나의 취부가 들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난 자신있다. 다양한 수다 속에 담긴 알토란 같은 것과의 만남을 위한 실행력이라고 해 두자. 아니 행위 예술이다. 

제목에 나타난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생각들>은 이미지를 보며 떠오른 생각들을 채찍질하는 것이 텍스트이고 이 둘이 하나가 되면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와 내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부여받는 것이다. 참 매력적이다.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생각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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