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순우리말이란다. 몰랐다. 노래는 <놀애>라고. '노는 애'로 부터 유래되었다고 <노래하는 강코치> 강태민 대표가 말했다. 강의 제목을 이렇게 던져본다. <여름을 여행하라!>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원칙을 안 지키는 건 아니지만 틀에 박힌 것은 다. 어법도 그렇다. 여행이 공간을 돌아다니는 통념을 깨려한다. 때로는 시간여행, 급기야 계절여행을 논하고 있다. 여행이 포인트가 아니라 여름이다. 여름은 세부분으로 설명하려 한다. 전환 작업이다. 여름은 열음(opening), 열음(音), 열음(열매맺기)로 시작한다. 이 세가지 만으로도 여름은 충분히 풍성하다. 왜, 읽히는대로 단어를 쓰냐고? 자, 들어봐라. 

*노부부가 문을 나서고 있다. 함께 걸어왔던 것처럼 다정하게 걸어간다. <같이 & 가치>. 같이 삶을 걸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떠올려 본다.

어원이든 동의어든 근본을 찾는 내 시도는 처절하면서도 신선하다. 여름을 여행하라! 여름이 여행하기에 좋다는 건지, 진정 여름을 여행할 건지는 따져볼 일이다. 우선, 여름을 생각해 본다. 여름이란 세상은 덥지만 풍성하다. 마냥 좋은 건 없다. 시끄럽기도 하도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왜 일까? 여름을 발음나는대로 하면 열음이다. 우길려고 발음나는대로 읽는 것은 아니다. 근거를 바탕으로 제안한다. <같이 & 가치>는 발음에서 질감의 차이는 있지만 동음이다. 함께 한다는 거, 이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또 있을까? 영어로는 present가 있다. 현재, 또는 선물이란 의미를 가진다. 현재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현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 한두가지만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 일상에서 이런 단어가 한 둘이 아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는 아니다.


열음은 문을 열다란 <opening>이 우선 떠오른다. 사진이 기억으로 가는 진입로란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장의 사진은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여행지의 진지한 관찰자보다 가끔씩 사진을 찍는 여행자가 더 선명하게 그날을 기억한다. 그런 차원에서 여름과 사진을 엮는데 opening 만한 것도 없다. 

그 다음은 열음(音)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노래로 말하면 합창이다. 연주라면 당연 오케스트라이다. 여름은 다양성을 맛 볼 수 있는 풍성한 계절이다. 사진의 묘미는 대상과 장면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가 관건이다. 풍성한 여름은 환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문제도 포함한다. 물론 사진이 함께 하면 더욱 매력적이다. 이 사진을 바라보면 단지 사진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시골 태생인 나에게 이 장면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오만가지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마지막으로 열음은 열매맺기를 든다. 열매가 열려 있는 것을 말한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가 맺는다. 담장너머 수줍은 애기사과가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물음은 기다림에 대한 응대이고, 곧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논리는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근거로 한다. 드러냄 속에서 세상은 소통을 시작한다. 

사진가들에게 <여름을 여행하라>는 주제는 여름이란 성향과 사진으로의 여행을 논하는 것이다. 여름은 나무 그늘아래 눞거나 물 속에 풍덩 빠져도 좋다. 누구하나 뭐라는 사람은 없다. 풍성한 여름은 우리에게 자유영혼을 선물한다. 여름을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는 것이다. 여름과 카메라는 궁합이 착착 맞는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딱이다. 일한 당신 떠나라. 여름은  시간이든 장소든 중요하지 않다. 물음을 통해 여름이 드러낼 무엇을 만나는 것이니까.

여름을 여행하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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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기설 2018.07.20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름을 여행하라" 정독을 했습니다.
    열음, 열음(十音), 또 다른 열음(열매 맺음) 그 의미가 맞아 떨어 지는 것 같은데요.
    오늘 이렇게 또 여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하고, 한 수 멋지게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아프리카의 여인들의 모습에서 천경자 화백을 만난다. 그 곳에서 그녀가 왜 떠오를까? 그녀와 색, 그리고 생각이 닮아서 일지. 지금도 오지라고 생각되는 이곳을 이미 그렸다. 60~70년대의 아프리카에서 그녀의 생각이 머문다. 그녀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나의 여행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그녀와 담소를 나눈다..> 박지연 작가의 짧막한 글이다. 

박지연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숨겨진 자신을 보여준다. 소극에서 적극으로, 소심에서 자신감으로, 느림에서 재빨리 먹이를 사냥하는 표범처럼 변한다. <변함>이라기 보단 안에 존재했던 자신을 끄집어 낸 것이다. 표범의 공들인 사냥을 목격하며 프레임 속에 <자신만의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 거린다. 의식은 체험에서 꿈틀거린다. 검은 대륙이 아닌 화려한 그들의 일상을 체험한 것이다. 선입견이 착각이라는 확신과 함께 숨겨 놓았던 자신을 만난다. 여행이 사진찍기와 닮은 건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다.

탄자니아 잔지바르, 주적주적 비가 내리는 마을 시장에 그녀가 있다. '휙휙' 재빠른 동작으로 사진을 찍는다. 다음 동작을 준비하기 위한 민첩함이 표범같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걸기, 차 창밖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따먹기, 카메라에 어색한 이들에겐 몰카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사진 찍기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자 각인하는 작업이다. 적극적인 여행자도 사진 찍기 만큼 그날을 기억할 순 없다. 그것은 그 곳에 자신을 담아 찍기 때문이다. 사진찍기란 공정이 원래 그렇다. 한번이 힘들지 두번은 별거 아니다. 이제 박지연 작가는 이기적인 사진가가 될 것이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을 찾아 나설 것이다. 박지연 작가다움을 기대한다. 세상보다 먼저 그 곳에 가 있었던 천경자 화백처럼.

박지연 작가가 아프리카에서 본 천경자 화백의 환영.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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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스토리에 관심이 많다. 그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다. 콕 찝어서 <그 사람>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비움과 채움>의 논리로 시작하려 한다. 비워야 채워진다. 비움보다 빈 구석이라 하자. 빈자리는 허점이다. 그런 허점이 있어야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이 사진은 탄자니아의 초등학교에서 일이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 사진봉사. 아프리카에서의 photo play. 전시된 사진을 보러 여학생이 왔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하기전엔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으로 상상한다. 오른 쪽으로부터 사건이 일어난 가정 말이다.

나는 international profesional photographer의 master이다. 사진명장이다.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진을 출품하여 점수를 받아야 한다. 점수를 받기위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impact, storytelling, color harmony 등 9-10가지 정도의 기준에 맞춰 점수가 나온다. 자격을 갖춘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준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감성을 자극하고 이성적 기준에 의하여 맞춰지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기준보다는 재미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진에 몰입하고 있다. 이 사진은 그 기준으로 치면 따질 가치도 없다. 그런데...

기준이란 <그들끼리의 리그>일 뿐이다. 작품을 출품하고 그들의 기준에 따라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정한 기준일 뿐이다. 절대적이진 않다.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추구하는 방향의 문제이다. 사진으로의 수다를 통해서 내 안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사진을 활용하는 나에게 더욱 그렇다. 이런 빈구석이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 그 자리에 <내 이야기>를 집어 넣을 수 있다. 모두가 아닌 내 것이어야 한다. 한참전부터 나는 이런 사진과 놀고 있다. 재미난 일상도 이런 과정에서 만나고 있다.

사진에 이야기를 담으려면, 나와 대화를 나누려면.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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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겐 꿈이 있다. 푸른 꿈이 있다. 가슴 뛰는 꿈. 그 꿈에게 미리 가봤더라면 그토록 뛰지는 않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그 길을 향해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아름다운 꿈. 관악구 청소년 사진 교육 프로그램을 끝낸 뒤 연 전시다. 전시명은 <밤섬, 고향을 찾아서> 이다. 전시작가들이나 밤섬을 찾은 실학민이나 설레이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참여작가 김헵시바다. 멘티다. 갑자기 불러내 작가의 의도를 말하게 하자. '당황하지 않고 딱' 야무진 말투로 시작한다. 제사복을 입은 어른이지만 표정은 아이갔더라고, 앞보다 뒷 모습을 찍어 그들의 모습을 표현한 거란다.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진실하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뒷모습 그리고 동작에 집중하고 있다. 여느 작가 못지 않은 감각이며 포스이다. 카메라를 건내고 오랜 시간 마음 조리며 함께 하던 멘토들의 기억도 함께 남긴다.

생각에 잠긴 어른의 눈빛, 함께 끌어 안은 모습! 멘토와 멘티의 작품이다. 멘토는 김명희 작가이다.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삶 깊숙한 곳까지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우연이지만 둘다 흑백사진이다. 잘 어울리는 사진들이다. 16주 동안, 둘은 호흡을 맞추는데 성공한 것이다. 멘토는 이렇게 회상한다. 

"인간의 인위적인 파괴에도 자연 스스로 치유되어 다시 생겨난 것이다! 위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의 굴욕이라고  해야할까?" 밤섬의 재탄생에 대한 자연의 섭리를 김명희 멘토의 말이다. 역시 성인다운 세련된 시선을  보여준다. 삶의 깊이가 작품속에 녹아든다. 눈빛을 찍어 그들의 내면을 표현한 작품은 단순한 외형이 아닌 내면 속을 찍으며 은유된 작품이다.

"청소년 멘티 헵시바‥ 첫만남에서 어눌한 내 인사에 '좋아요!'라고 손 내 밀어준 수줍은 내 짝이다. 낙성대 공원 행사에서 늦게 도착한 멘토를 기다리다 삐져  말조차  건네지 않았던 소심한 아이. 전시 오픈식날, 밝아진 얼굴과 가족들의 표정이 기쁘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찍은 사진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며, 자신의 시선이 분명한 구도를 잡는 사진이다." 멘티 헵시바에 대한 기억과 생각, 그리고 김명희 멘토가 바라본 멘티의 작품을 짧으나마 말하고 있다. 작품보다 그의 첫인상과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더 기억하고 있다. 아이의 성향, 그걸 알 수 있었던 상황들이 자세히 남아 있다. 인간은 혼자선 살 수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기억들을 안고 살아가는 게 살아가는 힘이다. 이번 프로그램과 전시는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서울시와 관악구에 감사를 표한다.

멘토가 말한 멘티, 그들을 생각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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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짓 발짓. 이걸 언어라 해야 하나? 그렇다. 언어다. 언어는 소통이다.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것은 언어다. 말이나 글이 규격화된 언어라면 그 외에는 비언어이다. 그 중 몸짓언어가 있다.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 비언어는 규칙으로 재단할 수 없을만큼 다양하다. 우연히 찍은 사진이 강의 교안에 필요한 이미지가 되곤 한다. 세상은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내 삶에는 이런 럭키한 일들이 가끔 생긴다. 난 이런 사람이다

에디오피아의 어느 교회에서다. 교회와 사무실이 떨어져 있었다. 사무장과 페이트 공사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깔맞춤이 눈에 띄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흔쾌히 수락한 그는 다양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남성적인 포즈를 취하다가 조금 익숙해지자 장난이라도 치듯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두개의 사진은 포즈(바디랭기지)가 언어임을 보여준다. 남성적 & 여성적 포즈. 남성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S라인을 한 오른쪽 사진은 다분히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애견들의 사진을 찍으며 경험한 거지만 동물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 언어는 단지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성별을 구별하는 방법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포즈는 찍는 사람과 소통을 통하여 완성되지만 강아지들은 그들 스스로가 성별을 보여주더라. 1자로 서서 비스듬하게 기운 모습을 한 강아지가 숫놈이요, 고개를 가슴방향의 반대로 꺽어 반대편을 바라보는 강아지가 암놈이더라. 딱 보면 보이지 않는가? 이제부터 동물들도 성별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헤어스타일로 구별한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숫사자의 포스는 암사자와 비교된다. 이또한 바디랭귀지의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언어는 상대가 보여주는 의도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와 해석처럼 말이다. 

포즈가 언어인 걸 보여주지.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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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밤섬, 고향을 찾아서.
장소:관악구 싱글벙글 센터
일시:2017년 11월 23일 17시
작가명:김헵시바, 김채현, 김채현, 유승현, 이창준, 장세일.

<냅둬라! 인간이 자연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마포 나루터에서 빤히 보이지만 아련한 섬, 무인도 밤섬! 실학민과 함께 아이들이 그곳을 찾는다. 눈시울이 불거진 어른들의 슬픈 기억 속에서 아이들은 미래를 상상한다.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세상은 재구성된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 속에서 우리는 환한 세상을 떠올린다. 순수 감성으로 그려진 미래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전시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도록은 김정기 작가의 디자인이다. 밤섬, 실학민들의 아픔이 소재가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체험이 되었다. 이런 체험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관악구 청소년들의 연주가 있었다.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열심인 모든 것은 아름답다. 연주는 전시를 축하하고, 또 연주자들은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세상은 서로에게 영향을 행사하며 돌아가는 것이다.

 


즉석 주문을 했다. 전시 작가들에게 자신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씩 들고와 작가의 의도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작품을 타인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대단한 자기도전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씩 발표가 끝날때마다 관람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관악구청 권일주과장님을 비롯하여 싱글벙글 센터의 유경란, 김영우선생님, 그리고 탁선형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진작가 이재현과 함께 16주간 강의를 진행했고, 멘토들도 큰 몫을 해줬다. 멘토군단에는 강일선, 김명희, 민순정, 이현옥, 박지연 작가가 있었다. 한장의 기념촬영 속에 오랜 시간 함께 했던 기억들도 묻어둔다. 아이들에게 꿈이란 물으면 딱 떠오르는 것이어야 한다. 사진가가 꿈이라고 바로 답할 자 누군가? 어느 구름에 비내린단 말인가? 체험과 체험 속에서 항상 꿈이 새롭게 꿈틀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선생은 그들의 가는 길 옆에 서 있으면 된다.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너무 간섭하거나 손대면 안된다. 나의 교육에 대한 신념이다. 그게 맞을 거다.

관악구 청소년 사진교육의 결실, 전시회.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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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마음이다. 뚫어지게 사진을 바라보다가 내 마음이 감동을 먹는다. 이 작품은 탈북학생이 찍은 것이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본 학생이 이런 사진을 찍다니 놀라울 뿐이다. 비싼 slr 카메라 주인들이 떨고 있다? 카메라의 가격 문제도 아니고, 경력이 문제도 아니다. 이 사진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이다. 사진이 마음의 표현이란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즉 마음의 표현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안행부 프로젝트, save NK에서 진행하는 <도전! 나도 사진작가> 프로그램이다. '나도 사진작가'란 말은 자신의 의지이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도 사진작가'라고. 사진은 감정이 담겨야 한다. 마음이란 건 감정으로 자신을 보여준다. 이 사진에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배광호란 학생이다. 그의 나이는 20대이며 탈북한지 얼마 안된 방황과 고민이 가득한 사람이다. 눈빛이 살아 있었고, 사진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보인 학생이다. 그가 찍은 사진이다. 멘토의 도움도 있지만 그 이상의 작품이다.

아침의 햇살이 꽃잎을 비추고, 비둘기들의 비상을 향한 여유로운 휴식, 꽃이 아닌 무엇에 집중하는 몰입의 시선,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흔들리는 차를 찍는다. 사진 속의 피사체는 각각의 감정이 담겨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진에는 플레어도 보인다. 빛을 마주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섬세한 모습도 담는다. 지나가는 차를 찍을땐 느린 셔터스피드보다도 자신의 카메라를 움직여 전체적인 흔들림으로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그는 섬세하다,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다, 빛을 알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자신감과 솔직함을 갖고 있다. 4장의 사진이지만 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자신을 적응시킨다는 건 혼돈의 연속이다. 10대보다 20대는 더욱 그렇다. 익숙했던 곳의 시간만큼 그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사진은 마음이다. 사진은 말하고 있다. 배광호는 당당히 세상과 맞서며 자신을 드러내며 멋진 삶을 살 것이라고. 나도 공감한다.

탈북학생이 찍은 괜찮은 사진, 사진의 의미.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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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원한다. 사실, 잘 찍는 방법은 없다. 잘 찍은 사진을 딱히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의 편리함은 프로를 뛰어넘는 아마추어를 키웠다. 자신을 표현하는 사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사진이 괜찮은 사진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우선 두장의 사진을 통해 잘 찍거나, 좋거나, 괜찮은 사진이기 보단 사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말하려고 한다.

뒤 사진은 저속으로 찍었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더 느리게 찍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찾아 나서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다. 그 곳에 답이 있다. 움직임은 생각을 자극하기도 하고, 다양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을 바라보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자 다양함을 직면하게 된다. 한 자리에 서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바라보거나 그 곳을 바라보며 몰입하는 것도 좋다. 진지한 바라봄과 사진에 대한 깊은 사유는 필수이다. 사진 찍기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통해 무의식 속에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움직임과 사유, 과정과 결과를 의미하며  이 둘 모두가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찾아 나서고 사유하는 것이 어찌 사진 찍기에 국한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때로는 사진을 가르치며 삶의 지혜를 배운다.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중간에 쉬어가는 부분이 있다. 계단에서도 사유하는 과정이 있듯, 삼라만상의 모든것들이 전진과 쉼이란 리듬이 필요하다. 사진 찍기를 잘 한다는 것은 많이 움직이고 때로는 사유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딱히 답은 없다. 우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라! 어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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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동어 반복이자 의미를 포괄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아우르는 것이다. 교육하는 입장의 나에게 멘토와 멘티는 관심대상이다. 일반적 의미로 희석하면 안된다. 멘토가 멘티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든가, 멘티는 배우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 탈북 학생들의 사진 놀이에 멘토가 역할을 하고, 둘의 시너지이자 콜라보를 계획해 본다.

2016년 탈북학생들이 전시했던 작품의 일부이다. 국회에서 전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사진은 평가해선 안된다. 바라봐야 한다. 그 안에 그들의 아픔과 한, 그리고 낯선 감정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찍어낸 것이 아니다. 멘티는 생각하고 멘토가 만들어 준 협업의 산물이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이 이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2017년 다시 이들이 모인다. 아니 뭉친 것이다. 서로 대화를 나눈다. 멘토가 멘티앞에 곱게 차려입고 선다. 서로의 만남은 위대한 것이자 역사적 현장에 선 것이다. 누가 누굴 가르치겠냐고 한다. 준다는 의미가 감사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포근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자 맞이하는 것이다. 둘이 만나 사진을 찍기보단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으로 끝이다. 멘티는 생각이 멘토를 통해 완성된다. 카메라를 조절해주고 자신의 카메라를 선뜻 내어준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가르친다는 것은 아는 것의 열곱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엔 절차와 방법이 있다.

멘티에게 카메라 메커니즘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게 중요하지도 않을 뿐 더러 우선 순위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선, 낯선 풍경을 접하는 그들의 생각을 만나야 한다. 한정된 시간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노출의 문제는 밝기에 국한하지는 않지만 그 감정의 톤을 공유하는 것이다. 카메라의 환경은 완전 수동으로 한다. 색온도는 daylight로, 포멧은 raw 또는 raw & jpg로 지정한다. 다시, 노출로 돌아가서  스피드, 조리개, 감도는 멘티의 생각을 표현하는 멘티의 수단이다. 속도를 나타내기 위해 느린 셔터스피드가 필요할 수도, 피사체를 살리기위해 조리개를 개방하여 심도를 낮추든, 어둠 속에서도 조리개와 스피드를 촬영자가 원하는대로 하기 위해 감도를 조정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촬영하면서 결과를 본다. 고르는 연습을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현장에서 삭제를 주문한다. 전시를 위한 퀄러티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정답은 없다. 그게 최고의 답은 아니다. 최선의 선택은 멘토와 멘티의 소통이자 함께 함이다.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그 다음은 과정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생길 것이다. 자, 찍으러 가자.

멘토와 멘티, 기술적 문제를 풀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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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한동안 학원 전단지에서 많이 봤던 단어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만 골라서 유혹했다. 이제는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창의적 사고와 창의력은 다르다. 근육을 길러야 몸이 튼튼해 지듯, 창의력이 길러져야 창의적 사고가 생겨난다. 나의 창의력은 블로그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방법은 이렇다. 글을 막 쓴다. 그리고 비공개로 해 놓고 몇일이건 쓰고 싶을때까지 기다린다. 숙성하는 거다. 마음이 끌리면 그때 마무리하고 발행한다. 뭐든 기간이 필요하다. 나의 블로그는 2009년 9월에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1400개이상의 블로깅을 했다. 나는 사진만 보면 글이 튀어 나온다. 사진작가라서가 아니다. 단련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포토테라피스트이다. 사진으로 심리를 논한다. 


백승휴의 강의 스타일. 당당하게 질러 댄다. 나를 교주로 부르게 한다. 처음엔 비웃다가 따른다. 농담이지만 함께 즐기자는 제안이다. 나는 좋아하는 것만 한다. 방법은 일을 놀이처럼 하면서 즐긴다. 사진찍기든 강의든 예외 없다. 그걸 실행하는 과정은 고독하다. 고독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 과정뿐 아니라 결과에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독조차도 즐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의 엔진이 ON이 되어 있을때 생각이 작업을 시작한다. 자칫 NO가 되면 그 생각은 자취를 감춘다. 

"제겐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다. <창의적 사고>와 <이순신 장군의 어록>. 역사적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라봄이란 키워드를 통해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바라봄에 따라 결과가 완전 달라진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사람들은 <택도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아직도 12척'이라고 했다. 물이 든 컵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물이 반이 든 컵을 보고 '반밖에 or 반이나' 로 나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명량해전에 투입될 배 12척은 적군의 330여척과 싸워야 했다. 그 상황에서 <12척이나 되는>을 논하는 것은 분명 창의적 사고였고 승리로 이끌 수 있던 계기였다.


바라봄이란 개념을 사진가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려면 <보다 & 찍기>를 동일시해야 한다. 사진 찍기는 기계작용이 절대 아니다. 사진은 난사하듯 찍어대지만 결국 촬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이다. 바라보는 그 곳에 자신이 존재한다. 이걸 지향성이라고 한다. 지향하는 그곳에 내가 존재한다. 내가 나를 찍는 것이다. 사진 속에는 항상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이제 바라보기와 찍기를 동일선상에 놓고 강의를 시작한다.


심리전. 강의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낀다고 난리다. 웃으라고 보여준 거니 웃어야 정상이다. 우측사진을 보고 웃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아들이 그린거라고 말한다. 사실, 자세히 보면 그림이 더 나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한다. 드러내면 편하다. 난 이 그림을 처음 접하고 당황했다. 이걸 공개하니 자유로웠다. 강의시작은 웃음으로 시작한다. 웃음은 상대에 대한 경계를 풀게 한다. 두 장면을 두고 사람들은 비교하며 생각을 시작한다. 텍스트보다 이미지는 각각 다른 생각에 빠지게 한다. 특히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경험했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글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로 다른 색안경을 쓰고 살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다.

무엇을 찍는가? 찍는 것은 나 자신인 사람과 자연 속의 모든 것으로 크게 분류한다. 인물사진이냐 풍경사진이냐를 따진다. 인물사진을 30여년 찍어왔던 나에겐 인물이 익숙하다. 풍경사진도 재밌다. 인물이나 풍경이나 다르지 않다. 인물에는 표정, 풍경에는 느낌이 존재한다. 그 안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사람의 얼굴과 몸짓 속에 그의 감정이 담긴다. 그럼 풍경은? 물론 풍경이 말하는 것을 읽으면 된다. 어떻게? 내 맘대로 읽는 것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데 풍경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내 감정을 담아 바라보는 것이자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이제 사진 찍기에 대한 설명 끝난 거다.

인물사진은 어렵다. 그러나 알고 나면 이만한 재미난 놀이도 없다. 인물사진 찍기에서 찍는 이는 권력자이다. 사진을 찍고 나면 그의 마음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풍경도 예외는 아니다. 직업인이나 일반이나 다르지 않다. 다 다르다. 성향이 다른 것을 찍어내어 그 답게 만든다. 그 작가는 그 작품을 닮는다.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찍으면 그와 작품은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오버액션이다. 골프 코치의 사진이다. 잘 생긴 사람을 엉뚱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목적은 시선끌기에 있다. 성공이다. 왜 골프 코치가 입에 골프공을 물고 있느냐고 묻기 보단 골프와 관련된 사람이라고 이해한다. 임팩이 강할 수록 그를 궁금해 한다. 그리고 사무실로 발길이 끌린다. 그럼 성공이다. 창의적 사고란 타인과의 경쟁에서 선점하는 것이다. 같은 생각으로는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버티지 못한다. 시선 끌기라는 이 사진의 목적과 창의적 사고는 다르지 않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선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은 꼬리를 물며 창의 근육이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이미지로 교육하는 나의 입장에서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면 속에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웃게 된다. 이거다. 이미지의 힘이란 부지불식간에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부담없이 따라하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달라진다?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으랴. 이게 백승휴식 강의의 특징이다. 

풍경과 사람을 비교한다. 아니 풍경으로 삶을 비유한다. 사람을 말한다. 파도가 치고 있는 장면을 저속으로 촬영을 하니 뭉게져 보인다. 반복된 내용이 싸인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의 현재와 과거가 보인다. 삶이 축적되어 한꺼번에 다. 사진과 그림은 다르지 않다. 이미지라고 한다. 그림은 내면의 생각을 그려내는 것이고, 사진은 밖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내는 것이다. 발견하는 것이자 만나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하면 답이다. 글이나 그림, 그리고 음악도 사진과 다르지 않다. 하나로 귀결된다. 참 쉽다. 사람들은 나누려고 하지만 하나인 것을 나눌 필요없다. 하나로 놓고 생각을 깊이에 집중하는 것이다.

상상하기. 촉촉한 물기가 바위에 묻어 있고 풀이 넘어져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게 틀림없다. 방울토마토가 떨어져 있다. 따낸 것은 아닐 테고, 안익은 것까지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주인의 의도인지 타인의 행위인지는 따져 볼 일이다. 사진만 덩그러니 있으니 <주인을 찾아 삼만리>를 할 수도 없다. 생각으로 그걸 찾아내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의 엔진은 일을 시작한다.

인문학이 대세다. 뭔가에 의지하려는 혼돈의 삶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진 꽃이 이렇게 아름답다. 버려진 거울에 봄은 오는가? 뭐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고 썰을 푼다. 말이 될때까지 이야기를 만든다. 계속 종알거리면 말이 될 때가 많다. 이쯤되면 슬슬 하산할 채비를 해도 된다. 이젠 자생해야지 누군가에 의지하면 몸짓만 큰 애된다.


풍경인데 누군가를 표현한 사진이다. 은유적 표현이랄까. 이테리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보이는 곳이다. 브로넬리스키를 찍었다. 뭐 장난하냐고? 장난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 창작이란게 원래 권태로운 인간에게 희망을 준 시도 아니던가. 두오모 성당에 돔을 올린 사람이자 원근감을 과학적으로 표현한 피렌체 예술가 수장인 이사람에게 골목에 좁아 보이는 원근감을 표현했고, 두오모 성당을 살짝 가린 이유는 그를 신비롭게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 

창의력이란 힘은 근육처럼 길러진다.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서 탄탄해져야 한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진찍기란 1차적 창작이 있고, 사진 읽기라는 2차적 창작이 있다. 이는 <의도와 해석>의 문제를 통하여 다시 가공된다. 물건을 만드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에 의해 생각이 완성되다. 창의적 사고의 시작이자 힘이다.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짜증나게 하는 말이 있다. <그때 그때 달라요.> 메이크업 뿐만 아니라 사진찍기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공식에 그 상황을 짜 맞출 수 있겠는가? 서두가 길었지만 사진가이며 포토테라피스트인 내가 창의력을 논하고 창의적 사고를 어떻게 키울 지를 제안한다. 사실 나의 강의는 activity 영역이다. 생각하고 그 생각이 정리가 되기도 전에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때로는 그 답이 현장에 있음을 가르치는 강의이다. 창의력, 탁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기위해 현장으로 나가길 바란다. 이상, 강의 끝!

창의적 사고 & 창의력, 백승휴의 썰로 풀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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