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Ceo News 칼럼 중에서.


“I see you.”

영화 〈아바타〉에서 사랑하는 사이인 두 주인공이 건넨 말이다. 보는 것 자체가 사랑이다.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본떠 만들어졌다. 찍는 행위 자체가 바라보는 것이며, 그 보는 것의 대상은 사물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이다. 사진은 바라보는 동시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며, 그때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간다. 새로운 만남, 낯선 것들을 찍으며 활력을 찾는다. 원래 사진 찍기는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다. 또한 여행이란 처음부터 낯선 것이기에 모두 새로운 것이어서 사진 찍기에 더욱 좋다. 나는 사진을 가르치며, 그들에게서 내면의 치유를 바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경험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과 여행을 떠난다. 그 과정이 바로 가르침이자 치유이기 때문이다.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에는 포토테라피 과정이 있다. 그들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제주도, 갈 때 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는 신비의 섬이다. 거센 바람과 흰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우리를 맞았다. 바람 소리를 담으며,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셔터를 눌렀다. 바람이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이며, 그 바람의 길목에서 존재를 만나려 했으며, 하얀 눈이 어린 시절의 푸근함에 빠지게 했다는 그들의 음성에서 자신을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셔터 소리의 청각과 바라봄이라는 시각이 합해져, 잡을 수 없는 바람과 만져도 쉽게 녹아버리는 흰 눈이 존재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을 잃다.’

이것은 여행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카메라에게 낯선 장소는 단지 새로운 것일 뿐이다. 이 사진에 ‘오래된 정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데자뷰처럼 언젠가 거기에 있었던 듯, 편안하게 느껴졌다. 정원수 사이로 펼쳐진 들판, 지평선 너머 맑은 하늘이 그랬다. 낯선 공간에서의 몰입 때문인지, 사람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만남, 그 바라봄은 시간을 규정하지 않았다. 새벽의 신비로움은 푸른빛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밤새 기다렸던 존재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카메라는 유리창에 비친 여운과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주황빛으로 물든 풍경을 찍었다. 더듬이처럼 존재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왔다. 


‘존재, 나를 찾아서’

사람들이 품었던 각자의 생각들이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그들은 바람을 활용하여 흔들리는 자화상을, 호기심 많은 소녀에서 현재의 나를, 소중한 것에 대한 인식을, 현실적 고통을 과거의 풍요로움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찍었다. 사진 찍기란 지향하는 곳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것이고, 긍정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바라봄에 대한 제안이다. 또한 청중들 앞에서 말했던 자신의 의도는 메아리가 되어 자기를 감싼다. 발표자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속마음을 털어내고 있었다. 


최영숙 작

‘눈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새는 어떻게 저 높이까지 날았을까?’ 

호기심 많았던 어린 시절, 칭찬 받지 못했던 상황이 자신감의 결여로 나타났음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 번도 칭찬을 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내면아이의 아픔도 사진 속에서 찾아내고 있었다. 아픔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향 작

발자국 옆의 나무 한그루, 작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자신을 떠올렸다.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원형 위에 쏟아 졌다. 자신을 선택 받은 자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사진은 인식의 전환이었다.


‘카메라는 마치 신처럼 우리를 꼼꼼하게 살피며, 

우리를 대신하여 다른 것들을 살펴 주게 된다.’  


존 버거는 그의 저서,〈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나약함은 신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카메라를 본다는 의미로 봤으며, 그것을 다시 신의 시선으로 보았다. 여행에서 우리가 찍었던 사진들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되었다. 바라본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관념들의 연합체이며, 결국은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혼자일 수 없듯이, 사진은 항상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을 권유하고 있다. 이것이 치유의 과정이다.   


사진은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치유다. ceo news  칼럼.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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