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설레는 이유는 낯선 만남때문이다. 그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사람은 더욱 우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사람과 자연을 떼어 놓을 필요도 없으리만큼 밀착되어 있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이니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항상 우리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맞이하는 다른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바닷가에 노인 부부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판장에는 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독 눈에 띈 것은 예정된 듯한 만남 때문이었다.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바닷가에 노인은 나에게 관심의 중심이었고 친근한 말투에서 시골의 정이 물씬 풍겼다. 갈매기가 유난히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먹을 것을 달라는 아기새의 종알거림처럼 들려왔다. 그 진풍경들이 조용한 어촌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낙들이 부두가에서 오징어를 손질하기에 바뻤고, 한쪽 구석에는 차안에 오징어 꼬치를 싣고 있는 노인이 바로 그다. 딱 보면 알아차릴만큼 오랜 세월의 호흡이 닮은 내외임에 틀림없었다. 발빠르게 오징어의 내장과 껍질을 분리하고 꼬챙이에 끼우는데 시간은 정지된 느낌이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녹슨 포터의 몸둥아리는 순한 양처럼 순종적이다. 자신이 썪어 들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자태는 자연에 순응하는 울릉도 사람들을 닮아 있었다.

노인 뒷편으로는 아낙들이 작업장에서 오징어를 손질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건물 사이로 살짝씩 비춰지는 배들이 오징어를 잡느라 지친 심신을 쉬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노인이 쓴 모자를 후측광에서 비추고 있다. 드센 바닷바람으로 거칠대로 거칠어진 살갓이 더욱 정감이 갔다. 녹색으로 깔을 맞춘 노인의 패션감각은 울릉도 스탈인지도 모른다. 아낙들의 구부린 허리는 아플 틈도 없이 오징어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삶이란 생존이 아니라 삶 자체임을 진솔한 노인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말했다. 울릉도의 오징어는 다르다고. 육지에서 말리는 오징어는 시꺼멓다고 했다. 파리떼들이 달라붙어 은빛 오징어를 뒤덮는다는 뜻이었다. 연신 물을 뿌리며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물은 해양심층수라 했다. 울릉도만의 다른점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실려있었다. 흰머리가 삶의 애환과 여유가 담겨있었다. 아침에는 오징어 내장탕을 먹었다. 숙취를 제거하는데 특효라고 했다. 오징어는 버릴 것이 없단다. 겉부분은 말려서 말린 오징어와 횟감으로는 제일이고, 내장은 내장탕 등등 버릴 것이 없다했다. 일명 '호박엿' 처럼 오징어 또한 울릉도를 상징한다. '울릉도 트위스트'에 담긴 노랫가사처럼 오징어가 풍년이면 시집간다는 울릉도처녀의 설렘이 마을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몇년째 풍년이었는지 길거리에 처녀는 오간데 없다. 나에게 울릉도는 사람들의 숨결과 청정해역으로 신선해진 호흡의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노인에게 울릉도는 생존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노인이 말한 그곳, 해풍에 말리고 있는 그곳을 찾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맑게 해준다. 반스텝의 노출오버가 더욱 그럴듯하게 비춰줬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림자가 필요하다. 빛과 그림자의 일체감처럼. 해풍에 말려지는 오징어는 당당함과 동시에 순종적으로 비춰졌다. 항복이라도 하듯 벌가벗은 알몸에 확인 사살처럼 비춰지는 포수의 냉정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불확실성과 양면성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미지에서 메시지를 찾는 방법처럼 대비되는 두가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사진을 겨누는 사람의 신발이 파란색이다. 어둔 마음의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파랑은 하늘색이 묻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제 오징어는 몸을 정갈히 하고 하늘로 날아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녀린 오징어의 몸매를 감상하기에 눈이 시린 그는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조만간 날개짓을 하며 하늘을 날아갈때 안내해야 할 천사이다. 우리는 사후세계를 기대한다. 현재의 삶에 여운으로 사후세계를 만들며 그곳을 향한 갈망을 한다. 종교적 신념처럼 그 기대치는 항상 내 안에 있는 곳으로부터 향한다. 천국은 내 안에 존재하며, 상상의 나래는 항상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안내자도 나 자신이며, 그곳으로 가기위한 몸부림도 나로부터 시작됨을 나는 안다. 천국은 항상 우리 곁에 있으며, 울릉도 여행중에 천국은 그곳 울릉도였음이 틀림없다.


천국을 춤추는 울릉도 트위스트.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10.27 0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의 수강생들과 3개원에 한번씩 여행을 떠나기로.
    그들의 다양한 스타일과 함께 낯선곳으로의 향함은 항상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음은 1월달, 어디로 떠날까? 제주도, 아니면 남해?
    어디든 좋다. 어디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랑 함께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