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과 소멸, 그리고 또 다시 반복의 연속. 자연이 그렇다. 인간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윤회사상을 낳았다. 단절이 아닌 연속성을 원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신념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던질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다'라는 희망적 언어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었다. 어제 말한 그 태양이 오늘이 된 그'내일의 태양'이 뜨고 있는 것이다. 

김길수 작가의 장노출을 통한 동해 일출촬영.

김길수는 사진촬영을 죽음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죽음',  이 단어가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심리적 여운은 다양하다. '생과 사'라는 이분법적 관계설정은 삶과 죽음을 따로 나누고 있으나 결코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말한 '죽음'은 정지된 상황을 어필하고자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사진찍기라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그 순간은 사라진다. 그 순간은 반듯이 죽는다. 그 순간을 박제화시킴으로써 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또 다른 환영을 불러 일으킨다. 사진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닌 살아서 꿈틀거림을 조장하는 역할을 한다. 

바닷가의 장노출이란 여러번의 반복을 통하여 밝은 것들의 발자취를 잡아내어 형상화 시키는 것이다. 순간을 잡아 내는 것이 아닌, 동영상의 반복된 상황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layer들의 중첩이다. 그 과정은 인간의 눈으로 찾아 낼 수 없는 광학만이 가진 특성이다. 들락거리던 파도가 물안개가 되었다. 솟아 오르는 태양이 새로운 오늘을 알리며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이 장면 자체가 죽음이 아닌 탄생인 것이다. 특히 석양이 아닌 일출이기에 더욱 그렇다. 

태양주위의 노랑과 멀어질 수록 분홍의 그라데이션이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화가의 성능좋은 물감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성이다. 물론 화가의 자존을 똑같이 형상화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화가 자신이 바라본 모양만을 표현하는 후기인상파화가의 생각처럼 말이다. 

카메라의 장노출은 액체를 기체화하곤 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바닷물이 운해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보라.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사진은 과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과학을 조정하고 주체자는 사람이다. 이성을 감성으로 변화하는 창작자인 것이다. 환영처럼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을 형상화하는 것도 카메라의 셔터로 완성하지만 그것을 누르며 설레는 이 또한 사람이다. 아니 그것은 감성이다. 감성과 이성을 적절히 혼용하여 새로움을 완성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에 존재자로서 굴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닐까.


긴 시간 속, 일출이 의미하는 것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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