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선생님! 전문직으로 성별도 잊은채 일과 엄마로 전념하다가 어느새 중년이된 여인이 그 존재를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눈을 통해 예쁘게 변화된 사진을 책상 앞에 두고 마주 봅니다. '매사 강인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삶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아름다움은 밝은 웃음속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머리가 아닌 가슴의 언어로 제가 받아들인거지요.  태도가 엄청 바뀌었습니다."


그녀에게서 날라온 메시지였다. 성별도 잊은채 살아온 그녀, 이제 그녀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이다. 여유는 물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 아닌 내면적인 것임을 인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과 엄마로의 이중적 잣대로 삶을 분리했던 그녀. 이 대목이 대한민국의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만들게 된 계기였다. 당연히 중년여성에게는 수순처럼 다가오는 우울의 성향이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온몸을 던져서 자아를 찾고자하는 의지의 표명이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것이 외형에만 있는 것이 아닌 미소하나만으로도 다르게 다가옴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태도가 엄청 바뀌었다는 '엄청'이란 어휘는 감탄사를 능가한다. 태도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긍정적인 시선에서 적극적인 시선, 그리고 모두를 배려하는 시선을 아우르고 있다. 내가 밝음으로 세상을 바라봤을때 비로서 세상이 밝아짐은 당연한 이치이다. 최초 의도는 존재에 대한 갈구였다.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 것은 중년여성에게는 당연히 여성성임을 명기하고 있다. 작가의 눈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움이 스스로와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된 것은 그녀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외형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닌 내면에서 구성됨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매사 강인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삶에 대한 기도를 말하고 있다. 합집합이 아닌 교집합이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하는 요구, 욕심많은 소녀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욕심꾸러기 강계숙에서 이제는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을 시작하라고 꾸짖고 싶다. 순수한 아이의 모습앞에선 회초리를 든 선생님의 모습으로. 그것을 가지기위해서는 당연히 그것을 향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가야할 또 다른 고뇌이기도 하고.

책상 앞에서 마주한 자신은 단지 사진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변화하고자하는 그녀의 의지이다. 항상 앞에 놓인 사진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이자 그녀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것과 동일시하고자하는 의미가 담겨지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그녀는 항상 타인을 대하기 전에 자신과의 조우를 시도했다. 그런 내면이 현재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그녀가 깨달았던 아름다움이 지금 자신이 접하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판단이 아니었을까?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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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2013.08.03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녀는 하얀색 사진은 사무실 중앙에 걸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을 치유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밝음을 선사하고 그들의 내면을 바꾸겠다고 했다. 치유를 하고 있는 동시에 세상에 그 치유의 의지를 보여주고자하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그 꿈이 실현되어지고, 그 과정에서 그 의지가 사그라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