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떼를 지어 다닌다. 여간해서 혼자서 뭘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특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그렇다. 물론 혼자서 연구하면서 자기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별종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 시작했을때는 나 혼자서 했다. 그 작업자체가 그냥 자위행위였다. 어떤 규정도 없이 혼자만 좋아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좌정관천이라. 혼자 사진을 하면 괜찮다. 영업을 해도 좋다. 사람들만 끊임없이 찾아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혼자 한 것이 아니었다. 책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보면서 내 것을 찾았으니 같이 길을 찾은 것이다.

 2011년 올림픽 공원 소마 미술관 뒤.

2012년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앞.

2013년 올림픽공원 한성백제 박물관 앞.

3장의 사진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많은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명확한 답은 수학 공식 빼고는 없다.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이런 답을 하곤 한다. "그때 그때 달라요." 성의 없는 답 같지만 정답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그렇다. 특히 사진찍는 일은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인물사진을 찍을때 사람의 얼굴을 멋지게 촬영하는 방법은 전부 다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원칙을 가지고 사람의 얼굴에 메이크 업을 시작할 때도 같다. 이것은 쌍둥이의 얼굴도 느낌과 원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상 디자이너의 고민도 대동소이하다. 아트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작가가 원하는 것과 의뢰인이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 고객이 원하는 것을 완성하는 과정을 예술로 봐야 할까, 단순한 영업행위로 봐야 하느냐의 규정 또한 모호하다. 그러나 그것은 작업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고 본다. 나는 고객의 사진도 작품으로 이긴다. 

그럼 기념사진 속의 사람들은 그들의 사진을 작품으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그냥 단순한 놀이의 도구로 찰칵 찰칵 찍어 내는 것으로 여길 것인가? 그가 판단하기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작가로서 한땀 한땀 정성스런 작품의 세계에 빠져 행복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보이는 것을 마구잡이로 찍어대며 컴퓨터 하드만 배불리고 있는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나는 그들에게 수업을 통해서 사진은 여러분의 친구이고, 그 친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고가 장비의 가치를 발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장롱 속에 고이 뭍혀 먼지 속에 뭍혀 있을 것인지도 주인의 몫이다.

어떤 이는 사진은 뒷전이고 사람이 좋아라하고, 어떤 이는 사람을 정보의 보고로 여길지도 모른다. 세상은 보고자 하는대로 보인다. 렌즈 속의 세상은 더욱 그러하다. 아마, 2025년이 되면 더욱 인간이 고독하다고 한다. 그 세상에서는 사진 속의 나를 만나는 작업만이 외롭지 않은 삶을 만들어 줄 것이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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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진작가 백승휴 2013.04.08 2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장의 사진에는 다른 점이 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은 아니나, 해마다 다르게 찍기라도 시도한 듯 다르다. 그 다른 점은 물론 사람이 바뀌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각이 다르다. 첫째는 눈높이에서 촬영을 했고, 둘째는 윗에서 아래로 촬영을 했으며 마지막은 약간 낮은 위치에서 촬영해서 약간씩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짧은 시간동안에 다르게 한 것이 아니라 1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다른 시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