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을 지낸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A. 링컨

 

나는 마흔 여섯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얼굴은 내가 책임을 져야하고, 타인의 평가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한다.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아들의 습작이 발견됨으로 생겨난 이야기 속에서 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로부터이다.

 

                           아들이 그린 나의 얼굴이다. 그가 그렇게 봤다면 그것이 나의 얼굴이다. 그냥 나는 믿는다.

 

"특징만 골라서 그린거지요. 헤헤"
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교육상 뭐라 할 수도 없고, 칭찬해야하나, 그냥 바라보면서 망연자실. 이렇게 나를 바라봤다는 생각에 어안은 벙벙.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의 특징을 잘 포착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원래 더듬이질을 하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불안전한 존재이다. 나에게 최소한 20여년의 세월은 그랬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 대들고 그러다가 기운이 빠져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나의 모습은 저녁나절의 지친 태양처럼 흐느적거렸다. 흥미로움을 찾아 돈키호테처럼 방황하는 나의 자화상. 자화자찬이 아니라, 나는 그냥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그렇게 살아 온 듯하다. '갈망하고, 쭉 그냥.'

 아들의 그림에는 나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독창적인 캐릭터를 위해 만들었던 곱슬머리, 듬성 거리게 그린 머리털은 대머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의 상태를 말한다. 이마의 세 가닥 주름은 나름 고뇌하는 예술가적인 삶이 비춰진다. 똥그란 눈동자는 경우 없이 자기 일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아버지를 표현한 듯하다. 턱수염이 많이 닮았다. 흐릿하고 제멋대로인 눈썹이 나와 같다. 가끔 아들은 그랬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경쟁력이 있다 라든가, 좋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그것이 독창적인 이미지를 두고 했다는 것을 내는 몰랐다. 이놈이 나를 추켜 주는가, 아니면 자식 생각에 내가 괜찮은 이미지인가를 생각하면서 약간의 김칫국을 마셨는데 며칠 전 자화상 사건으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나는 타인에게 독창적인 이미지로 인식되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남과 같은 생각과 행위는 거부한다. 블루오션적인 마인드에는 10년 전 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들아, 나를 바라본 그 시각처럼 앞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림은 그림 일뿐 너무 믿지 말자." 스스로 되 뇌이며 그림을 다시 본다.

'이게 나였나?'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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