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참여한 '윤보수'라는 미모의 여인이 촬영한 작품이다.

6주의 강의를 마치며, 학생이 낸 과제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감각과 지각. 희미한 피사체를 보면 우리는 이건지 저건지 헥깔리는때가 많다. 그것이 많은 경우의 수를 불러일으키며 상상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가능성을 두는 상황은 확실한 인식을 주는 것보다 좋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명확한 것에 대한 갈망을 하게 된다. 말과 생각 그리고 행위의 다면적인 논리속에서 혼돈이 온다. 그 혼돈은 불확실성이자 가능성에 대한 희미한 비전을 던저준다. 희미한 비전이라는 것은 다시 또 다른 가능성이라는 전제로 스스로에게 다가온다. 일종의 불안이다. 불안은 뭔가의 해결책을 가지고 인간에게 다가온다. 이루지 못한 로망과 가까이 다가옴에 대한 예지의 중간적도의 무게감 같은 것.

해질녘 느러진 태양의 그림자처럼, 멀리 보이는 걸음거리는 흐느적 거림으로 감지된다.  찾는다, 끄집어낸다. 이런 말들은 어디에다가 붙여놔도 어울린다. 생각을 끄집어내다, 나 안의 나를 찾다 뭐 많은 것들의 갈망에 대한 답을 바라는 행위이다. 사람이 뭔가를 한다는 것은 고독감의 잔상을 없애려는 의도에서 이다. 자신이 알던 모르던 결론은 그렇다. 오래 전부터 철학자들이 부짖었던 주제어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 고독감을 떨쳐버리기위해 모여서 서로 논쟁하고 부등켜 안았던 것이리라. 거울같은 자신을 바라볼 잣대가 없음에 목적없는 행위의 시도를 통해서 찾아가고자 한 것이다.

강의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강의장에는 왜 왔는냐고, 답한다. 배우려고. 왜 배우느냐? 필요해서. 왜 필요하나고.. 이런 물음과 답변의 번복은 몇번을 가지 않더라도 질문에 대한 답은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인간을 답을 찾고자 한다. 행위를 통해서 기대한다.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답을 원한다. 그 답은 정답이 없다. 다 맞을 수도, 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답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누가 무엇이라고 답을 주더라도 자신에게는 정답이 아니다. 답을 찾고자 헤메이는 이들에게 답은 있다. 하는 것이다. 하는 과정에 답은 나온다.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말한, 욕구에 대한 내뱉음은 우주를 향에 떠나갔다가 다양한 해답을 가지고 달려온다. 그러면 우리는 나에게 맞는 답만 챙기면 된다. 그 해결책은 스스로 해보는 것이며 강의장에 나온 사람들도 강사가 그들에게 어떤 해답도 던져줄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은 사진으로 말한다. 고독하다고, 불안하다고. 그러나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는 나! 나는 알고 있다. 그 스스로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그 불안의 원인은 나도 모른다. 과정에서 그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정답이든 해답이든 대리만족이든 관계없이 행위속에서 그 불안감이 해소되는 희열감을 맛본다. 그것이 성취감이며 그것을 이루며 잠시 즐거움을 느끼지만 식욕처럼 다시 원초적인 욕구는 생겨난다. 그럼 다시 음식을 챙겨먹고 그 먹은 만큼만 달음질쳐가는 것이다. step by step. 한 발짝씩 다가가는 것이다. 하나씩이 모여서 목마름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에게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한 답은 그에게 정확한  답이 될 수 없음이다.

가르치는 나,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막을 권한은 없다. 그냥 지켜보며 뒤에서 미소지을 뿐이다. 장하다고....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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