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에게 인생을 묻다



지인의 돌잔치에 초대받아 갔다가 아기가 귀여워서 촬영을 했다. 보는 이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월척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큰 입을 쩍 하니 벌리고 하품을 할까를 생각해봤다.

나는 주인공에게 물었다.

“아가야! 그렇게 피곤하던?”

“생일이라고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엄마, 아빠 기분 맞춰주느라 저도 분주한 하루를 보냈어요. 저는 모유를 먹는데 엄마가 바쁘다보니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요. 손님들은 맛난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데 저는 인사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뭐에요. 제 나이에는 먹고 자는 게 전부잖아요. 그런데 남들 먹는 거 바라만 보고 있는 거 여간 힘들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하품을 하고 말았네요.”

이해할 만도 했다. 어린 아기가 첫 생일을 맞이해서 얼마나 어리둥절했겠는가? 그래도 너무 심하게 하품을 하기에 또 물었다.

“숙녀여! 그래도 아가씨인데 사람들 앞에서 하품을 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을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피곤한데 앞 뒤 가릴 여유가 있나요.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빠는 나를 안고 사람들에게 인사하느라 정신없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할 일 하는데 제가 하품을 하던 알게 뭐예요. 그리고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 제가 순간을 포착해서 몰래 하품을 한 거예요. 아저씨가 저를 찍지만 않았어도 완전범죄였지요. 아저씨! 미워요.”

그렇다. 첫돌을 맞은 아기가 본능적으로 느끼듯이 인생은 고뇌다. 그 고뇌를 얼마나 잘 견디고 순간순간을 활용해 적절하게 피로를 풀어 가느냐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나는 개작가였다. 개똥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 때도 나는 하품에게 인생을 물었다. "인생 살아가는 게 너무 피곤하지만 그래도 살만합니다. 뭔가 열심히 살았기에 이렇게 피로를 풀며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거니까요." 프레임 속 애견들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그래 지금 내가 피곤한 것은 삶을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라 이거지. 그렇다면 지금의 피곤을 즐길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하하하! 난 지금 너무 피곤하다.

나는 사진가이다.

인물사진을 주로 찍는다. 풍경사진이 기다림의 미학이라면 인물사진은 그 내면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매력이 있다. 가끔 생각지도 않은 명장면을 만나기도 한다. 이를 행운이라고 한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사진촬영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거기에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소통이다. 누구나 피사체와 소통을 한다. 그러나 나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피사체와 인터뷰를 한다. 묻기도 하고 답하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 나는 세상과 소통을 하고 스스로 세상 살아가는 답을 찾기도 한다. 어떤가? 내가 즐기는 사진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 가는 나만의 방식이...



포토에세이, 사진과 글의 절묘한 만남.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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