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은 <0 & 1> 의 대비와 리듬 속에서 완성된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빛의 <유와 무>에 의존한다. 일상과 다른 여행지에서 밤은 저무는 것이 아니라 깊어간다. 서서히 숙성되는 김치의 알싸한 맛처럼. 여행지의 숙소 주변 분위기는 여행의 잔상을 좌우한다. 이번 여행의 기억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이유가 뭘까?

우선 병산 서원을 숙소로 한다. 서원 대나무 밭엔 달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듯 하다. 결국 이야기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마당 옆엔 마을에서 유일한  식당인 수퍼집이 있다. 그 곳의 메뉴판엔 닭도리탕이랑 안동찜닭 그리고 간고등어가 있다. 요리하는 아내와 수퍼를 지키는 남편 만이 있을 뿐이다. 닭 도리탕을 시키면 족히 한시간은 걸린단다.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동네를 찍는다. 구름사이로 달빛이 들락거린다.

어둑 어둑한 밤 사이로 드릴 소리와 나무 망치 소리가 들린다. 찾아가보니 공방에서 목공이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를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자신이 찍으면 잘 안나온다고 말한다. 그 말이 끝이다. 찍어달라고 하진 않으나 간절하다. 안으로 들어가 셔터를 누른다. 연신 곁에서 지켜보며 만족스런 표정이다. 친구하나를 사귀나하고 기대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공방을 지키는 그 목공은 사회성이 제로이다. 이 시각이후로 일행들의 즐거운 시간이다. 목공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시간을 허락한 거다.

닮도리탕이 다 됐다고 주인이 부른다. 그 이후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사진 찍는 즐거움 못지 않게 쫄깃거리는 토종 닭의 육질과 잘 익은 막걸리의 배합 속의 웃음소리 때문이다. 그 곳의 음식들은 무한 리필이다. 더 달라고 말하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인심좋은 아낙의 넉살 속에서 일행들의 밤은 깊어간다. 지금도 그때가 그립다. 이게 여행이다.

병산 서원의 저녁풍경, 밤이 깊어간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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