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나절, 아내와 한강으로 산책을 나갔다. 영동대교 밑에서부터 강변을 따라 잠실변까지 걸었다. 아내는 사진찍기에 좋은 곳이라며 나를 델꼬 다녔다. 따라가며 이곳 저곳을 찍으라고 손짓하면 나는 선택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선택적으로. 나름, 그녀의 눈썰미는 단수가 낮지 않았다. 석양의 꽃을 찍으며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어느새 어둑 어둑해졌다. 가로등이 켜지자 한강의 밤거리는 화려함과 오묘함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날 찍었던 사진은 나름 만족시켰다. 사진은 세상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노련한 선생처럼...

꽃이 지자 열매가 맺었다. 비교하지 않았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세상의 이치가 담겨 있었다. 양귀비 꽃잎은 화려하기 그지 없으나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은 후에는 더욱 고개를 쳐든 모습이 당당하면서도 저돌적이기까지 했다.

매직아워, 이쯤되면 진사들은 카메라를 꺼낸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가로등이 세상 사람들에게 불 밝히듯, 태양도 원초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로등이 더욱 밝아지면서 여명이 사라지고 밤이 되어 갔다. 그 시각의 그라데이션을 즐기기에 딱 좋았다.

사진찍기의 매력 중에 하나는 실수가 횡재가 되는 것이다. 장노출로 셔터스피드를 잡아 놓고 삼각대를 잡아채는 바람에 생긴 실수가 '나름 만족'의 장면을 만들어냈다. 현악기의 줄처럼 화려함을 더해주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의도적으로 했더라면 여러번의 시도에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기회는 선하게 살아온 나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해야하나? ㅋㅋ


밤은 깊어졌다. 노출을 억지로 올려 거짓하늘을 만들었다. 카메라의 메카니즘은 뭐든 만든다. 인공으로 안되는 것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카메라도 과시하고 있었다. 

한강을 빠져나와 도심으로 돌아왔다. 그림같은 장면 하나! 하늘과 전깃줄, 그리고 암갈색 벽면의 질감, 두 사람의 이미지가 두개로 나뉘어진 모습에서 인간의 양면성처럼 보였다. 사진은 항상 발견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나에게 다가온다. 

한강 잠실변을 걸으며 밤을 맞이하다.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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