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업을 하면서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다.
풍경에 사람이 들어가지 않으면 흥미를 느끼지 않거나 촬영을 하지 않는다. 물론 사물을 촬영할때는 죽은 것이 아닌 생명체를 갖은 것으로 착각하고 찍는다. 그것이 나의 매력이다.

현란한 색깔들이 샤머니즘을 말한다.  칼라젤광에 묻어나는 머리결은 무당을 연상하나 그년의 로망은 순수


 본 작품은 샤머니즘을 말하고자 한다.
만든 작가의 생각이다.
거기에 나는 더욱더 임팩있는 느낌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보다는 어떤 흥미를 찾아낼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을 바라본다. 풍만한 가슴을 가졌다. 그러나 여성성이 눈매에 녹아 있다. 작품과 합하면 무당이요, 신들린 여성이다. 그러나 그 내면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소녀이다. 인간이 가진 양면성이라 본다. 아니 양면성이다.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만든 작가는 무당을 만들고,
이걸보고 미소지으며 생각하는 사진가는 샤머니즘의 치유를 말하고 있다.
이 여인의 삶속에 헝클어진 내면을 무당이 만져주길 바라는 것이다.

 "여인아! 무당의 마음도 아픈 가슴이거른 의지하지 말고 그대의 사랑하는   자에게 가슴을 묻고 행운스러운 삶으로 돌아가라."





탄생은 아침이다. 그대는 새벽빛의 냄새를 맡아보았는가? 여린 가슴의  그대의 볼에는 배려의 향기가 난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지향점을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달았음을 느낀다.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뒤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초심은 항상 우리를 비호하며 삶을 함께 살아간다. 그것이 없음은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작품은 탄생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여기에 이른 아침의 빛을 사용했다. 시작, 초심, 탄생, 걸음마와 같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그것을 표현했다. 가녀린 그녀의 허리는 섬세한 선의 쾌락에 도취되어 타인이 만질 수 없는 순수성을 그렸다. 첼리스트의 음악은 그의 마음을 들려준다. 아마도 그녀는 첼리스트의 얇은 손가락에서 번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통하여 세상에 새로이 탄생되는 인간의 시작을 알리고자 했을 것이다. 수줍은 그녀는 내색하지 않은 꼭 다문 입술에서 여성의 순결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여자는 여자로서 그 향기가 아름답다. 그녀의 아름다운 선이 작품에서 보여줬 듯, 그녀의 보여지는 이미지에서 나는 그녀의 내면과 작품에 대한 끈질지고 예리한 열정을 보았다.
 

 

Posted by 포토테라피스트 백승휴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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